삭개오의 감사

November 19th, 2017

ICA Sunday Pulpit Message



♠ 서론 - 청교도들의 추수감사절

▶ 한국의 추석, 한가위 기억이 제게 있습니다. 미국에 오니까 역시 추수감사절을 지내고 있었습니다. 어느 한번은 미국 가정의 초대를 받아서 칠면조 고기를 먹었습니다. 고기가 퍽퍽했었지만 얻어먹었기 때문에 맛있다고 했었습니다. 그때 왜 미국 사람들은 추수감사절때 칠면조를 먹을까 생각했습니다. 물론 나중에 어떤 분이 쓴 글을 통해서 알게 되었습니다. 그 글의 제목이 ‘Pay a Pilgrims Thank’ 였습니다. 미국은 청교도 사람들이 아메리카 대륙에 와서 시작된 나라입니다. 그 청교도 사람들이 미국에 와서 고생을 많이 했었지만 감사를 어떻게 했는가에 대한 부분이 그 글에 나왔습니다. 감사를 하기 위해서 무언가를 지불했다는 것입니다. 도대체 어떤 일을 겪었길래 감사하지 않고는 배길 수 없었을까요? 마음이 평안 해서 또는 일에 성공해서 감사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보통 일이 잘되거나 번영하거나 성공하면 기쁘게 됩니다. 하지만 더 큰 감사나 감격은 내가 어려웠을 때나 고난을 당했을 때 그것이 해결될 때 나오는 것 같습니다.

▶ 1620년 12월 추운 겨울이었습니다. 110명이 배를 타고 왔는데 약 50명 정도 절반가량이 중간에 죽었습니다. 살아남았다는 사실에 대해서 그리고 건강을 지킬 수 있었던 것에 대해서 감사를 했습니다. 낯선 곳에 왔기때문에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눈에 보이는 나무를 베어서 오두막 일곱채를 지었습니다. 그 집에 들어가 모닥불을 피우고 추위를 피할 수 있었던 것에 감사했습니다. 일이 잘되고 성공을 해서 기쁘고 감사한 것이 아니었고 살아남을 수 있던 것에 감사한 것이었습니다. 비록 나무 집이었지만 추위를 이기고 보호 받을 수 있던 것에 감사했습니다. 그들이 도착한 곳은 Plymouth 라는 지역이었습니다.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들이 가지고 온 씨 종자를 뿌려봤습니다. 농사를 해 보려고 한 것입니다. 그런데 토질이 달라서 전부 실패 했다고 합니다. 오히려 미국 인디언 분들이 도움으로 받았던 옥수수 씨앗을 심었는데 그것이 열매를 맺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들에 뛰어다니는 칠면조를 잡아서 먹었습니다. 그 옥수수 몇개와 칠면조를 먹으면서 감사했다고 합니다. 칠면조가 특별히 맛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고 미국의 조상들이 그렇게 해왔기 때문에 그것을 기억하려 칠면조와 옥수수를 먹는다고 합니다. 여러분들이 미국에 살면서 칠면조와 옥수수를 먹을 때 처음에 고생하신 분들이 이렇게 시작하면서 하나님께 감사했구나 라고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때 고생을 해서 이것이 이어져 내려오는 것이구나 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1. 삭개오의 외적 모습(눅19:1-2)

▶ 청교도인들은 이렇게 감사를 했는데 오늘 성경본문에는 삭개오라는 사람이 나옵니다. 이분이 어떠한 사람이고 어떠한 상태에 있었고, 또 어떻게 예수님을 만났고 감사 했는지 보겠습니다. 아시다시피 이 때 당시는 로마가 유대를 정복하고 전 세계를 지배했던 시기입니다. 그래서 로마를 떠나서 살 수 없고 로마를 피해서도 살 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인 이스라엘 사람들과 로마사람들은 관계가 좋지 않았습니다. 바로 그 때 이런 정치적인 상황을 잘 이용했던 사람이 삭개오였습니다. 나름 성공해서 부자라고 나와있습니다. 세금을 걷어드리는 세리의 장, 우두머리였다고 소개 되어있습니다. 돈이 있으니까 권력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로마의 총독, 군인들도 세리장 같은 사람들을 보호하고 어려워 했다고 합니다. 로마가 이스라엘을 지배하면서 세금을 잘 거둬드려야 로마가 잘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 일을 바로 세리들이 했었습니다. 물론 그렇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반민족주의자인 세리를 아주 안 좋아했습니다. 옛날의 한국도 일본에 지배를 당할 때 일본에 빌붙은 사람들을 굉장히 싫어했습니다. 옛날 독일과 프랑스의 경우도 실제로 그런 일이 벌어졌습니다. 독일의 나치가 유럽을 정복하고 프랑스를 공격했을 때 일부 프랑스 사람들이 나치 쪽에 도움을 주었던 적이 있다고 합니다. 나중에 세계대전이 끝나고 나라가 회복이 되면서 정리를 했을 때 여자고 남자고 전부 다 잡아서 처형했다고 합니다. 같은 백성, 같은 민족이면서 왜 적군에게 도움을 주었냐는 뜻입니다. 징역을 선고하여 감옥에 보낸 것도 아니고 전부 처형했습니다. 여자들은 머리를 완전히 밀고 옷을 벗겨서 창피하고 수치스럽게 시내를 걷게끔 했다고 합니다. 죄는 바로 독일군을 협조했다는 것입니다. 그런 비슷한 상황이 바로 세리들에게도 적용이 되는 것입니다. 자신의 동족인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세금을 걷어서 로마 사람들에게 가져다 바쳤던 것입니다. 로마 사람들은 좋아했습니다. 유대인의 세리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백만원을 걷어서 오십 만원을 바치고 오십 만원을 챙겼습니다. 로마사람들은 그것을 용인하였고 이스라엘 사람들은 화가 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세리들을 보기만 해도 저주를 하고 같이 다니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 당시에 이스라엘에는 거지들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그 거지들도 세리들이 주는 돈은 받지 않고 도로 던졌다고 합니다. 그리고 세리의 집 근처 길을 걷지 않고 돌아다닐 만큼 아주 싫어했다고 합니다.

 

2. 삭개오의 내적 상태(눅19:3-4)

▶ 그것이 삭개오였습니다. 돈도 많고 로마 권력으로부터 인정을 받는 부분이 있지만 마음속에는 갈등과 고민이 많았을 것입니다. 같은 민족을 배반했다고 하는 갈등과 마음의 고통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을 착취하니까 하나님의 말씀인 율법을 어겼다는 신앙적인 깊은 고뇌도 있습니다. 돈을 벌기 위해서 로마와 손을 잡았기 때문에 이스라엘 사회로부터는 격리를 당하고 불편한 관계에 있었습니다. 사회적인 단절, 그리고 계속되는 로마의 돈 요구에서 오는 부담감이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그러는 중에 이스라엘 사람들은 한가지 생각이 있었습니다. 중요한 의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대로는 안된다. 성경에 약속한대로 그 누군가가 와서 새로운 질서, 새로운 평화, 새로운 시스템이 갖춰져야 한다. 어려움과 고난과 역경을 해결할 메시아가 올 것이다.’ 그래서 이것을 메시야 대망 사상이라고 표현합니다. 신앙적인 갈등, 사회적인 고민을 갖고 있던 삭개오도 당연히 이런 의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동네에서 들리는 이야기는 메시아가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나사렛 청년 예수가 바로 메시야 라는 것입니다. 병든 자를 고치기도 하고, 죽은 자를 살리기도 하고, 물고기와 떡을 가지고 수 천명을 먹였다고 하는 이러한 뉴스들이 계속 들려왔습니다. 과연 그가 나의 깊은 고민과 갈등에 빠진 이 시스템을 해결할 메시아가 맞을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3. 그의 참된 감사

▶ 그런데 가까운 집 앞에 그 분이 지나간다는 것입니다. 보고 싶어서 나무에 올라갔습니다. 즉, 주보에 있는 것처럼 겉모습은 세리의 장이었고 부자라는 외적인 모습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내적으로는 깊은 갈등과 고민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분을 보고 싶었던 것입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예수라고 하는 사람이 세리와 창기, 즉 죄인들의 친구라는 별명까지 가지고 있었습니다. 더군다나 열두 제자 중에 세리였던 마태를 불러서 사도로 세웠다는 소식까지 들었습니다. 온 이스라엘 사람들이 다 싫어하는 세리를 불러서 제자로 삼았다는 것입니다. 삭개오도 자신이 세리였기 때문에 관심이 갔을 것입니다. 과연 그가 누군가 보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삭개오는 키가 작았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 있었기 때문에 그 안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지나가는 길목을 생각했다가 나무에 올라갔습니다. 기관장 정도 되면 나무에 쉽게 오르지 못합니다. 체면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삭개오는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습니다. 인생에 단 한번인 기회일 것만 같았습니다. 사람들 속에 있던 예수를 보기 원했습니다. 평소에 가지고 있던 기대를 가지고 찾아갔습니다. 그러다가 예수님과 눈이 마주쳤습니다. 일대 일로 마주쳐 얼굴과 얼굴을 보게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 중에서 나를 예수님이 직접 보고 말씀하셨습니다. 많은 말이 필요 없습니다. 인사 또는 통성명이 필요 없었습니다. 바로 삭개오의 마음을 꿰뚫어 보셨습니다. 왜 너는 뽕나무에 올라가 나를 보려고 하느냐 있느냐 묻지 아니하고 바로 말씀하셨습니다. 삭개오의 관심과 궁극적인 기대를 읽어 내셨습니다. ‘삭개오야, 속히 내려와라’ 계속 위에 있을 필요가 없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인사하는 것이 아니고 바로 내가 너의 집에 머물겠다고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세리의 집 근처에 가지도 않습니다. 사람들은 수군수군하며 왜 죄인인 세리의 집에 가는지 의아해했습니다. 그런 상황적 사실을 알고 있던 삭개오로서는 놀랄 수 밖에 없고 자신의 마음을 알아준 예수님에게 감사했습니다. 예수님이 많은 말씀을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삭개오는 기쁘고 즐겁게 영접했다고 했습니다. 내 관심과 기대를 알아주셨습니다. 다른 사람은 나를 다 버려도 그 분은 나를 받아 주셨습니다. 여기에 감사하고 감격했던 것입니다. 세리들의 집, 온 이스라엘이 싫어하는 집, 인사조차 하지 않는 사람, 거지조차 싫어하는 사람. 모두가 거절하는 그 세리의 집에 유하겠다고 예수님이 공언하신 것입니다. 얼마나 고맙겠습니까? 여러분들 중에 가장 고마운 분이 누구십니까? 물질을 주시는 분, 지식을 주시는 분, 시간을 같이 내주시는 분들 다 고맙습니다. 진짜로 고마운 것은 나를 알아주는 사람입니다. 나도 내가 죄인인 것을 아는데 의로우신 그분이 나를 찾아오신 것입니다. 메시아라고 소문이 들리는 그분이 죄인인 내 집에 오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말씀하시고 구원이 임했다고 선포해준 것입니다. 내가 네 집에 함께 하겠다. 여기에 삭개오가 감사했던 것입니다. 의로우신 분이 내 집에 왔다고 한다면 이것은 큰 일입니다.

▶ 조선시대 일입니다. 난리가 터져서 왕이 신하들과 못 알아차리게 옷을 바꿔 입고 급히 도망을 갔습니다. 시골로 숨어들었습니다. 어느 농사꾼 촌부의 집에 당도하여 하룻밤만 재워달라고 했습니다. 농부가 보니까 점잖은 사람들이었기때문에 별 저항없이 들어와서 하룻밤 지내라고 했습니다. 밤늦게 온 것을 보니 식사를 한 것 같지 않아 식사도 대접했습니다. 편안한 이부자리도 제공을 하고 아궁이도 때워서 정성껏 대접했습니다. 왕과 신하들이 하룻밤만 재워달라고 했지만 다음날도 안 갔습니다. 그럼에도 시골에 사는 농부가 정성껏 끝까지 대접을 했습니다. 세월이 지나서 난리가 해결이 되고 그 왕과 신하들은 궁으로 돌아갔습니다. 국가 조정이 안정이 되니까 왕이 그 사람에게 감사의 표현을 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그 농사꾼 촌부를 찾아서 데려오라고 명령을 했습니다. 농부가 궁으로 와서 왕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왕은 농부에게 돈이나 땅이나 벼슬이 필요한가 물어봤습니다. 그 농부는 필요 없다고 했고 다른 한가지를 부탁했습니다. 며칠 후에 열리는 자신의 환갑 잔치에 한번 더 방문해주셔서 같이 식사대접을 받아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그렇게 부탁을 하고 헤어졌습니다. 며칠 후에 그 촌부 집에서 환갑 잔치가 열렸습니다. 그런데 왕과 신하들이 방문을 해줬습니다. 그리고 그 촌부 집에 왕이 왔다 갔다고 소문이 퍼졌습니다. 돈 많은 사람들과 권력을 탐하던 사람들이 그 집에 찾아와서 잘 보이려 선물을 놓고 갔습니다. 빠른 시일에 부자가 되었습니다. 세상의 왕이 내 집에 방문만 하더라도 그런 일이 일어납니다.

▶ 만 왕의 왕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삭개오의 집에 방문하셨습니다. 구원을 하나님만 주실 수 있는데 그분이 하나님의 구원이 임했다고 선언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이다 라고 하셨습니다. 구원을 받았다는 것은 의롭다 함을 받았다는 말이고 아브라함의 자녀는 믿음의 자녀라는 말입니다. 아브라함이 받았던 영육간의 축복을 받게 될 것이라는 것을 선언한 것입니다. 여기에 삭개오가 감사와 감격을 했습니다. 삭개오는 다른 사람들처럼 병을 치유하기 위해서 뽕나무에 올라간 것이 아닙니다. 돈이 필요해서 올라간 것이 아니라 근본적인, 내적인, 깊은 기대와 갈등과 관심, 고민이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그것을 예수님이 알아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복이 임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셨습니다. 여기에 감사와 감격을 한 것입니다. 구원받은 것에 대해서 감사한 것입니다. 여러분도 이런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아무도 해결해줄 수 없는 자기만의 비밀스러운 고민이 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삭개오처럼 부족함이 없어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삭개오처럼 자기만 가지고 있는 아픔이 있습니다. 그 아픔 속에 들어오시겠다는 것입니다. 그 갈등하는 마음의 집에 들어오겠다는 것입니다. 버림받아 수치스러운 마음에 들어오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 만이 여러분을 아시고 들어오시겠다는 것입니다. 2017년 추수 감사절 예배를 드리면서 기억하실 것 하나는 나를 이해하고, 나를 품어주고, 나를 인정해 주실 분은 예수님 밖에 없습니다. 자녀가 나를 만족시키지 못합니다. 남편이나 아내가 나를 궁극적으로 만족시키지 못합니다. 목사가 영적인 만족을 주지 못합니다. 도움이 되고 참고는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영원하신 예수님만이 진짜로 나를 알아주시고, 나를 찾아오시고, 나를 축복해주시는 분이십니다. 그것이 삭개오와 예수님이 통했습니다.

▶ 삭개오가 마음의 문을 열었습니다. 증거로 자신의 재산 절반을 가난한 자에게 주겠다고 했습니다. 혹시 주변 영혼들, 이웃들, 가족들 중에 가난한 자가 있다면 돕겠다는 것입니다. 돈 자랑을 하는 것이 아니라 주변에 있는 영혼들을 돌보고 배려하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것을 받으셨습니다. 10절에 보면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칭찬의 말, 위로의 말을 하는 것은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 입니다. 우리가 돈, 경제적으로 도움을 주는 것도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영혼의 필요를 내가 감당해주면서 그 사람을 돕겠다는 말입니다. 여러분들이 진정 하나님을 향해서 감사할 수 밖에 없을 정도로 은혜가 임하고 이렇게 인도받으시면 됩니다.

▶ 그리고 삭개오는 만약 토색한 것, 사기친 것이 있다면 네 배로 갚겠다고 했습니다. 허풍을 친 것이 아니고 레위기에 있는 율법의 말씀을 따르겠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겠다는 말입니다. 내 마음의 문을 열고 가난한 자들을 돌보아주며 하나님의 뜻인 말씀대로 살겠다는 신앙고백입니다. 자신을 무시하고 거절했기 때문에 자신의 동족인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악한 감정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돈 생각에 사로잡힌 사람이었습니다. 그 돈과 사람의 관한 생각이 치유가 된 것입니다. 감사하는 마음이 생긴 것입니다. 참된 감사는 진정한 생각에서부터 시작이 됩니다. 하나님이 나를 단 0.1초도 붙잡아 주지 않게 되면 눈에 보이지 않는 신경이 끊어져서 즉사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한번 불어버리면 모든 재물이 사라집니다. 내가 건강히 살면서 일하고 하나님께 예배드릴 수 있게 해주신 것에 대한 감사가 나와야 합니다. 생각하게 됩니다. 그래서 think 와 thank의 어원이 같다고 합니다. 즉, 무엇을 생각하냐 에 따라서 감사 여부가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잃어버린 것, 상처받은 것만 계속 생각하게 되면 감사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내게 주신 것을 생각하면 감사가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의 인생은 헛되고 무상하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불교입니다. 사람은 살면서 도리를 지켜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유교입니다. 그러나 인간이 받은 은혜를 생각하게 된다면 그것이 복음이고 기독교입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은혜를 생각하게 되면 감사하게 됩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입니다. 범사에 감사해야 기뻐하는 마음, 베푸는 마음이 나올 수 있습니다. 이것이 감사의 고백이고 표현이 되는 것입니다. 깊은 은혜 속에 깊은 생각을 하게 되고 감사할 수 있는 것 입니다.

▶ 우리는 찬송가 405장 ‘나 같은 죄인 살리신’ 많이 알고 부릅니다. 그것을 지으신 분이 John Newton 이라는 분입니다. 이분의 원래 직업이 노예 상인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주님을 만나고 바뀌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게 된 것입니다. 죄인인 나를 살리신 것입니다. 노예 상인으로서 악한 짓만 하고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나를 부르신 것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즉각 회개하고 평생 전도하는 삶을 살았다고 합니다. 여러분들에게 그리스도안에서 감사가 회복되기를 축원합니다. 그러면 세상 성공이 아닌 하나님의 성공이 임합니다. 정말로 감사하고 기쁨이 넘치게 된다면 행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 행복 속에서 벅찬 감격의 노래를 부를 수 있게 됩니다.

 

♠ 결론 -우리의 감사제목(눅19:9-10)

▶ 여러분들이 결론을 맺어야 합니다. 오늘의 결론은 누가복음 19장 9절과 10절이 감사제목이라고 되어있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예수님께서 여러분과 여러분의 집에 임하셨음을 믿습니까?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을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심령과 가정에 함께 하십니다. 그렇게 되면 아브라함의 자손이 됨으로 아브라함이 받았던 영육간의 축복을 보장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어떻게 찾을 수 있습니까? 10절이 답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이심에도 불구하고 인자라고 표현하셨습니다. 인간의 몸으로 오셨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인간의 육신을 가지고 있는 우리와 똑같이 되셨다는 이야기입니다. 본을 보이신 것입니다. 육신을 가지고 있는 너희들도 나를 따르라는 뜻입니다. 우리들이 하나님의 자녀로서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사는 무엇입니까?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사람을 살리는 일에 여러분의 몸을 드리시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최대의 감사 표현입니다. 가난한 영혼들을 하나님이 주신 복을 가지고 나눌 때 그것이 최고의 감사가 되는 것입니다. 왜 물질로 도와줍니까? 그 영혼을 살리기 위해서 입니다. 그것이 우리를 자녀로 부르신 이유입니다. 여러분의 생애가 사람을 살리는 인생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것으로 시간을 드리고, 물질을 드리고, 기도를 드려서 그 사람이 살아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여러분을 만난 이유입니다. 삭개오를 찾아온 이유입니다. 여러분들에게 찾아온 예수님을 향해서 감사의 표현을 바르게 함으로 평생 하나님의 축복을 누릴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 기도합니다. 존귀하고 지존하신 하나님 아버지, 귀한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아버지가 되셔서 우리를 구원해 주심을 감사합니다. 2017년 추수감사절을 맞이했습니다. 강단을 통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아무도 나를 챙겨주지 않지만 당신만이 나를 챙겨 주시는 분임을 고백합니다. 이해하실 뿐만 아니라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선포해 주심을 감사합니다. 그리고 생각하게 하셔서 무엇을 향하여 우리의 마음을 드려야 할지를 알게 하셔서 감사합니다. 사단에게 영혼을 빼앗긴 자를 살리게 하옵소서. 사단에게 경제를 빼앗겨서 가난한 자들을 살리게 하여 주옵소서. 사단에게 비전을 빼앗겨서 불행한 자들에게 참된 미래를 제시하게 하옵소서. 우리의 감사를 받아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