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셉이 내린 결단

March 11th, 2018

ICA Sunday Pulpit Message


녹취록 : MS Word (Korean) , PDF (Korean)

주보 : 


♠ 서론 – 나 혼자 만이라도… 

▶ 우리가 지금 8주에 걸쳐서 결단했던 분들을 보고 있다. 오늘은 마지막 요셉에 대한 스토리이다. 그래서 제목이 요셉이 내린 결단이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이런저런 경험을 많이 한다. 혹시 사방팔방이 막혀있을 때가 있다. 내가 어떠한 것으로도 해결할 수 없을 문제가 올 때가 있다. 이때 보통 낙심하거나 좌절하다가 기절하는 사람이 있다. 또는 고민을 하고 하나님의 이유를 찾다가 결단을 하는 사람도 있다. 17살 어린 요셉이 이런 상황이었다. 어린 요셉이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이미 벌어져 있는 상황에 놓여있었다. 사랑하는 아버지 한분에 어머니가 4분이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의 친모는 일찍 돌아가셨다. 이복형들이 10명이나 되었고 요셉 자신은 가장 막내였다. 특별히 아버지께서 자신을 사랑해주시는 것은 좋은데 그것 때문에 이복형들이 시기와 질투를 한 것이다. 요즘말로 왕따를 당한 것이다. 밖에 있는 다른 사람이 아니라 가족이 그랬다. 가족 안에서 불화만큼 큰 스트레스는 없다. 세상에서 조금 힘들고 세상이 나를 실망시킨다 하더라도 집에와서 안식을 얻고 위로를 받게 되면 새로운 힘을 얻을 수 있다. 그래서 누구든지 집에서는 평안과 안식, 위로를 얻으려고 한다. 요셉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런데 친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셔서 외로운 상황에 있었다. 가족안에서 불화가 심해졌고 그래서 요셉은 아버지로부터 받은 신앙 덕분에 하나님께 깊게 기도를 많이 했다. 그래서 그런지 하나님이 주시는 꿈을 두번이나 꾸게 되었다. 심상치 않고 범상치 않은 꿈을 두번이나 꾸니까 가족들에게 보고를 했다. 형들은 화를 내고 우리가 너의 종이 되라는 말이냐 하며 구박하고 혼을 내었다. 요셉은 잘 지내보려고 솔직하게 보고를 드린 것인데 상황은 갈수록 악해졌다. 요셉은 생각을 많이 했다. 우리 모두 아버지가 믿는 하나님 여호와를 믿는 사람이 아닌가? 나도 믿고 형들도 믿고 또 어머니들도 믿었다. 그런데 눈에 보이는 상황은 그것이 아니었다. 하나님을 믿고 섬기는 사람들이 정말 저것밖에 안될까? 아버지가 나를 조금 더 사랑한다고해서 막내동생인 자신을 괴롭히고 조롱하며 미워할 수 있을까? 아무리 이복형제이지만 형제들끼리 견제를 하고 어떻게 하면 죽일까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이 과연 옳은가? 기도를 많이 했던 요셉은 굉장히 센시티브하게 다가온 것이다. 하나님 앞에서 이것은 아니다. 그래서 나 혼자만이라도 하나님 앞에 서자. 나만이라도 하나님께 기도하고 믿음을 갖자. 이렇게 요셉이 결단을 내린 것이다. 그리하여 어린 요셉은 나름 결단을 해서 하나하나 문제를 넘어서게 된 것이다.

 

1. 요셉이 내린 결단

▶ 첫번째이다. 요셉에게 여러 문제들이 터졌다. 그때마다 그가 내린 결단을 곱씹은 것이다. 나는 어떤 일이 있어도 하나님을 바라보겠다. 나는 어떤 상황에 처할지라도 하나님을 믿겠다. 왜냐하면 우리 조상의 하나님 그리고 내가 배운 하나님은 선하시고 전능하실 뿐만 아니라 완전하신 분이시다. 선하신 하나님께서 나를 선하게 인도하신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바꾸실 수 있다. 완전하신 하나님께서는 그의 역사가 완전할 것이다. 할아버지 아브라함, 이삭, 야곱을, 즉 우리 선조들을 부르시고 우리 조상들을 축복하신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나의 하나님이 되신다. 그 여호와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신가? 모든 세상만물을 만드신 분, 창조주이시다.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절대주권의 하나님이시다. 인간의 상상을 넘고 생각을 초월하는 위대하시고 존귀하신 하나님이시다. 그 하나님께서 나를 선하게 대우하신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나를 지켜보고 계신다. 그분이 나에게 허락하신 일은 완전하시다. 이 사실을 알고 깨달았던 것이다. 성경은 지금도 선포하고 있다. 시편 145편을 보면 “여호와께서는 만유를 선대하시며 그 지으신 모든 것에 긍휼을 베푸시는도다” 말씀하고 계신다. 나훔 1장 7절에는 “여호와는 선하시며 환난 날에 산성이시라 그는 자기에게 피하는 자들을 아시느니라” 모든 것을 긍휼하게 선하게 대우하시는 하나님께서 나를 알고 계신다.

▶ 또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시다. 시편 50편에 말씀하고 계신다. “전능하신 이 여호와 하나님께서 말씀하사 해 돋는 데서부터 지는 데까지 세상을 부르셨도다” 해 돋는 데서부터 해 지는 데까지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보시고 부르시고 알고 계시고 다루시고 계신다. 전능하신 하나님인줄 믿는다. 유명한 스바냐서 3장 17절에 나온다.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 그리고 그는 완전하신 분이다. 시편 18편에 보시게 되면 “하나님의 도는 완전하고 여호와의 말씀은 순수하니 그는 자기에게 피하는 모든 자의 방패시로다” 주위의 모든 사람이 하나님을 모르고 하나님을 알지만 제대로 누리지 못하는 사람이 있더라도 나 혼자 만큼은 이 하나님을 믿고 누리자. 그런 결단을 실제로 한 것이다. 그리고 그런 생활을 산 것이다. 창세기에 보시면 그의 삶이 자세히 기록되어있다.

 

2. 요셉이 만난 문제

▶ 두번째이다. 요셉이 만난 문제 속에 그의 결단이 오롯이 나와있다. 우리는 요셉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알고 있다. 중요한 세가지 사건을 보겠다. 아까 말씀 드렸다시피 이 요셉은 형들로부터 시기를 많이 당했다. 얼마나 미워했냐면 그 요셉을 죽이려까지 했다. 그래서 실제로 이복형들이 요셉을 구덩이에다가 던졌다. 물구덩이에 빠져서 질식사를 시키려했는데 때마침 물구덩이에 물이 다 말라서 실패를 했다. 이복형제들 가운데 동정심이 있었던 유다라는 형이 있다. 유다 형의 자손으로 메시아가 나왔다. 유다가 꼬맹이를 죽여서 뭐하느냐 차라리 팔자 라고 다른 형제들을 설득했다. 목숨을 구하게 하는 그의 선한 처분이었다. 길을 가던 미디안 상인들에게 은 20냥을 받고 요셉을 팔았다. 가족 형제들에 의해서 인신매매를 당한 것이다. 하늘이 놀라고 땅이 흔들거리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제가 애들이 3명이 있는데 첫째와 둘째는 이쁘니까 내버려두고 막내는 골치 썩이니까 팔아버리자고 사모와 상의를 해서 막내를 팔았다고 생각해보라. 하나님을 믿는 그 요셉의 형제들 가족들이 그 일을 버린 것이다. 우리가 그 당사자라면 어떻겠는가? 영원히 잊지 못할 상처가 남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요셉이 구덩이에 빠질 때도, 노예 상인들에게 팔릴 때도 그 어떤 대항을 하거나 싸우지 않았다. 멍청해서 또는 지능이 떨어져서 그렇게 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 자신을 완전히 맡긴 것이다. 이런 상황이 벌어진다면 보통사람은 난리가 났을 것이다. 이복동생이 아무리 미워도 그렇지 그렇게 할 수 있는가? 내가 뭘 특별히 잘못한 것이 뭐가 있는가? 어째서 날 이렇게 대우하는가? 너희들이 그렇게 하고 잘 살수 있을 것 같은가? 천벌을 받을 것이다. 내가 기필고 원수를 갚을 것이라. 보통사람들은 이렇게 할 것이다. 그러나 요셉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마치 털 깎이는 양처럼 가만히 자신은 맡긴 것이다. 그러나 믿음 하나를 가지고 있었다. 모든 상황을 하나님이 지켜보고 계신다. 하나님이 나를 선하게 인도하시고 완전하게 응답할 것이다. 그리고 노예로 팔려갔다.

▶ 요셉은 하나님의 은총 속에서 노예생활을 잘하니 승진을 했다. 그런데 억울한 일이 벌어졌다. 억울하게 감옥에 들어간 것이다. 왜 감옥에 들어가게 되었는가? 자신의 요구대로 응하지 않자 반대로 상대를 죄인으로 몰아간 사모 때문에 그랬다. 자신의 요구가 채워지지 않게 되면 돌변하는 것은 사랑이 아니다. 사실 요셉이 차분하게 자초지종을 주인에게 설명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았다. 실제 상황을 제대로 보고하게 되면 주인은 요셉의 말을 받아드렸을 것이다. 왜냐하면 주인 보디발은 요셉이 어떤 사람인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를 이야기하게 되면 주인 보디발은 화가 단단히 나고 주인의 가정이 파탄 났을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 속에서 주인의 인정과 총애를 한몸에 받았던 요셉은 사실을 말하지 않고 감옥에 들어간 것이다. 결국 하루 아침에 죄인이 되었다. 하지만 그때도 가만히 있었다. 보통사람이 할 수 없는 생각과 행동을 요셉이 해냈다. 아무 죄 없이 무고하게 감옥에 간 것이다. 억울하지만 한가지 믿고 있던 바가 있었다. 하나님은 선하시고 전능하시며 완전하시다는 것을 알고 믿고 누리고 있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못한다. 당장 양단간에 결판을 내야 한다. 이것은 이러하니 누가 잘못한 것이다 라고 끝을 보려고 하는 강력한 욕구가 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개입할 틈이 없는 것이다. 하나님이 역전시킬 기회를 안주는 것이다. 저와 여러분들은 오늘부터 요셉의 믿음을 배우기를 원한다. 내가 행동을 잘해보자라는 뜻이 아니다. 내가 실수를 한다 한들 하나님이 보고 계신다. 내가 손해를 보고 양보를 한들 하나님이 보고 계신다.

▶ 또 문제가 생겼다. 감옥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니까 일이 잘 풀렸다. 감옥의 죄수가 인정을 받고 거기에서 리더가 되었다. 사람은 얼굴을 보면 안다. 사람은 대화를 해보면 안다. 사람과 식사를 하면 안다. 그 사람의 일거수일투족을 보면 안다. 그 사람의 중심이 무엇인지 보여진다. 그 사람의 실력이 가늠된다. 그러니까 감옥에 있는 사람이 요셉한테 묻고 카운셀링은 받은 것이다. 감옥 안에 고위직 공무원이 두명 같이 있었는데 요셉이 다 도와줬다. 한사람을 향해서 너는 어렵게 될 것이다 라고 정확히 말했다. 또 다른 사람한테는 일이 잘풀려서 나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요셉의 말대로 그대로 이루어졌다. 감옥에서 요셉의 도움을 받고 나갔던 사람이 나가서 요셉을 도와줘야 하는데 잊어버렸다고 나와있다. 마치 버림을 당한 꼴이 되었다. 보통사람은 어떻겠는가? 은혜를 잊어버렸다고 해서 저주하거나 원망을 할 것이다. 요셉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여러가지 불이익과 억울하며 원망스러운 상황에서도 요셉은 감정적으로나 언행적인 면에서 흔들리지 않았다. 그것이 감정을 잘 속여서 그런 것인가? 표정관리를 잘해서 그런 것인가? 아니다. 요셉은 하나님을 신뢰하고 모든 일을 의뢰하고 맡겼던 것이다. 오랜세월 여러가지 일들 속에서 요셉은 흔들리지 않고 하나님을 믿고 맡겼던 것이다.

 

3. 요셉이 찾아낸 축복

▶ 세번째이다. 이러한 요셉의 믿음을 보고 하나님이 요셉을 축복하셨다. 하나님은 전능하신 능력으로 요셉의 모든 사건과 상황을 축복과 응답으로 바꾸셨다. 요셉이 그것을 잘 따라가면서 다 찾아낸 것이다. 노예로 갈때도 하나님이 요셉을 형통케 만들었다. 요셉이 외로울 틈이 없도록, 노예로 힘들어 할 틈이 없도록 하나님께서 함께 하셨다. 요셉이 신세를 한탄하고 낙심하며 좌절할 틈이 없도록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복을 주신 것이다. 다른 말로 표현하게 되면 요셉은 하나님 한분만으로 만족하고 행복했던 것이다. 즉, 영적 서밋의 자리에 선 것이다. 정말로 하나님이 함께 해버리면 내가 먼저 행복해진다. 내가 행복해지게 되면 일이나 다른 사람들도 멋지고 아름답게 보인다. 내가 하나님으로 행복해지게 되면 그 어떤 일들 속에서도 하나님의 섭리가 보인다. 여러분들이 그렇게 되시기를 바란다. 특별히 부부끼리는 배우자가 멋지고 아름답게 보일 수 있도록 성령충만 달라고 기도하길 바란다. 전능자가 함께 하시기 때문에 그렇다. 나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분이 나와 함께 하시고 내편이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내가 노예 일을 하지만 하나님이 승진을 시키셔서 가정 총무로 만든 것이다. 감옥에 들어가서도 감옥에 있는 다른 사람을 살리는 것이다. 원수같은 이복형제들과 다시 만났을 때도 그들을 안심시키고 그들을 살리는 것이다. 이복형제들이 요셉을 쳐다보고 나서 다 놀라했다. 죽는 줄 알았던 이복형제들에게 요셉이 뭐라고 했는가? 형들은 안심하라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형들보다 앞서 보낸 것 뿐이다. 결국 요셉은 모든 일과 만남을 하나님의 축복 속으로 형통함으로 바꾸었다. 모든 일들이 잘 풀렸다. 처음에는 힘들게 시작했지만 끝은 아름답게 마무리되는 것이 형통하게 되는 것이다. 그것을 기능 서밋이라고 한다. 열심히 헌신하고 봉사 할 것처럼 했지만 시험들고 나간 사람 많다. 저와 여러분들은 그렇게 하지 마시고 조용하고 아무 표시나지 않지만 지속적으로 하나님 앞에 복 받으면서 헌신할 수 있기를 바란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내가 행복하고 내 일이 잘 되는 것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을 살리는 것이다. 내 주위에 친구도 있고 원수도 있을 수 있다. 모두를 살리는 것이다. 그때 현장의 분위기가 바뀌는 것이다. 문화를 바꾼다고 해서 그것을 문화 서밋이라고 한다. 요셉이라는 인물은 믿음의 결단을 한번 해서 영적, 기능, 문화 서밋에 자리에 이르렀다. 모두가 불신앙할 때 나만이라도 하나님 믿고 따라가보자. 이 요셉의 믿음과 결단이 여러분의 것이 되기를 축원한다.

 

♠ 결론 – 하나님은 요셉 한 사람을 통해 … (렘 5:1)

▶ 결론이다. 하나님은 요셉 한 사람을 통해서 가족, 애굽, 기근 재앙에 빠진 전세계를 살려냈다. 오늘 성경 본문에 읽은 것처럼 어렸을 때 꿈을 꾼 요셉의 꿈이 이루어 진 것이다. 사람들은 나를 시기하고 주변 상황은 어렵게 돌아갔지만 결국 하나님은 나를 선하게 대하셨다. 요셉이 그것을 누린 것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으로 나의 형편을 역전시키셨다. 완전하신 하나님께서는 요셉을 최후의 승리자로 완전한 승리를 얻게 하셨다. 요셉이 내린 결단과 요셉이 가진 믿음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시고 축복하신 것이다. 여러분들도 그렇게 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렇게 고백하시고 그렇게 사시길 바란다. 그러면 우리도 요셉처럼 노예로 팔려가서 생고생을 해야 하는가?

▶ 오늘 마지막 키를 전달한다. 우리가 꼭 왕따를 당해야 하는가? 그것이 아니다. 치유를 받을 것이 많은 사람은 그렇게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어떻게 부르셨는가 우리가 확인하고 점심을 드셔야 한다. 오늘 요셉의 인생 스토리를 본 것처럼 몇가지가 드러났다. 요셉이 은 20냥에 팔려갔다. 누구에게 팔려갔는가? 누가 팔았는가? 형들이 팔았다. 그리고 억울하게 고난을 당했다. 죄가 없는데 감옥에 들어갈 만큼 억울한 고초를 당했다. 그리고 요셉이 많은 사람을 도와줬는데 그 도움을 준 사람으로부터 거절 당했다. 형제들에 의해서 골육에 의해서 팔려갔다. 죄가 없는데 고난을 당했다. 보디발의 집을 흥하게 만들고 감옥에 있는 사람을 도와줬는데 거절을 당했다. 무언가 겹치는게 있는가? 무엇과 겹치는가? 팔려가고 억울하게 고난을 당하고 사람들로부터 거절을 당했다. 누구의 삶과 많이 겹치는가? 어느 분의 인생과 평행이론이 되는가? 예수님이 자기의 동족으로부터 은 30냥에 팔렸다. 예수님은 자기 죄가 없는데 두들겨 맞고 채찍에 찢기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다. 예수님이 수많은 사람들의 병들을 고쳐주었다. 5000명, 7000명을 먹이셨다. 죽은자까지 살려주셨다. 하나님의 나라의 말씀을 전해주셨다. 그런데 그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수님을 거절하셨다. 요셉의 생이 그리스도의 생과 겹친다. 요셉은 완벽하게 총리로 거듭났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증거로 완벽하게 부활하셨다. 요셉에게 찾아온 모든 사람들은 쌀을 얻어 구원을 받았다. 총리가 된 요셉을 찾아간 사람들이 구원을 받았던 것처럼 만왕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사람들마다 영원한 구원을 받게 된 것이다. 이 요셉이 훗날 오실 메시아의 생애를 알았겠는가? 몰랐겠는가? 오신다는 것은 알았지만 그분의 생에 대한 것은 아무도 모른다. 무슨 말인가? 하나님의 성령께서 요셉 속에 들어가서 그리스도의 삶을 살아내신 것이다. 하나님은 요셉 한사람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인지를 보여주신 것이다.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요셉속에 누가 사신 것인가?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다. 여러분들이 어려운 일을 겪든 안 겪든 간에 내 삶을 통해서 그리스도가 보여지고 그리스도가 증거된다고 한다면 서밋의 자리에 이르는 것이다. 내 인생 속에 그리스도가 사신다고 한다면 하나님의 축복이 요셉처럼 나타나게 되어있다. 그때 영적 서밋, 기능 서밋, 문화 서밋의 축복을 내가 찾아내고 나를 통해서 수많은 사람을 살려내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의 결론은 그리스도이다. 여러분이 그리스도를 아는가? 저와 여러분이 그리스도에 대해서 먼지만큼도 알지 못한다. 만약 먼지만큼이라도 안다고 한다면 여러분으로부터 흑암이 무너지게 되어있다. 겨자씨만한 믿음이라도 가지면 산을 들어 바다에 빠뜨린다고 되어있다. 오늘 하나님 앞에서 거룩한 긴장과 함께 결단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스도를 알게 하여 주옵소서.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에서 살아가게 하옵소서. 그리스도께서 내 인생을 살아주옵소서.

▶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내가 사실 하나님의 존재는 알고 있지만 그리스도의 비밀을 눈꼽만큼도 먼지만큼도 모르고 있음을 자백합니다. 모든 것에 시작이고 과정이며 결론인 그리스도를 제가 잘 모릅니다. 그리스도를 통해서 나타난 하나님의 선하심, 전능하심, 완전하심을 제가 아직 잘 모릅니다.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더하셔서 깨닫고 알게 해주옵소서. 그래서 진실로, 정말로, 사실적으로 요셉이 찾은 축복들을 제가 경험하고 싶습니다. 존귀하신 하나님, 하나님께서 나를 위하여 그리스도를 보내주심을 믿습니다. 우주보다 크신 주님께서 2미터도 안되는 이 땅 가운데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셨습니다. 나를 위하여 오셨습니다. 내가 알기도 전에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심으로 모든 고통과 저주, 심판을 대신 당하셨습니다. 나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시고 나를 하나님의 자녀로 불러주심을 감사합니다. 모든 만물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창조되었음을 믿습니다. 내가 바로 그리스도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그리스도의 의한 그리스도의 존재임을 고백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게 하시고 그리스도께서 이루시는 구원의 길을 마음 속에 체득하게 하옵소서.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감으로 세상을 정복하는 축복을 받게 하옵소서. 내 안의 계시는 그리스도의 비밀 때문에 나를 만나는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축복을 전달 받게 하옵소서. 나를 통하여 모든 사람을 살리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