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공로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은혜인가?

May 27th, 2018

ICA Sunday Pulpit Message



Uploaded by None on 2018-05-27.

♠ 서론

▶ 올해 1월 에서부터 결단한 인물들 8명을 살펴봤다. 그리고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할 수 있는 오해 8가지를 살펴보고 있다. 오늘이 그 마지막 8번째이다. 우리가 세상에서 불신자로서 살다가 교회에 처음 오게 되면 나도 모르게 세상에서 살던 방식으로 성경도 보고 신앙생활도 할 수 있다. 그러면 충돌이 오게 된다. 오해하기도 하고 착각하면서 시험도 들게 된다. 그러면서 교회도 떠나간다. 위에 보이는 사진은 30년 전의 저의 가족 사진이다. 학위를 취득해서 찍은 것이 아니고 제가 다니던 모교회에서 중직자학교를 수료하고 기념으로 찍은 사진이다. 저 때만 하더라도 교회에서 자체적으로 하던 신앙훈련을 귀히 여겨서 마치게 되면 저렇게 학사모와 가운을 입고 거창하게 졸업식 수료식을 했다. 물론 저렇게 옛날 사진을 보여주는 것은 그때 당시로 돌아가보자는 것이다.

저 때가 제가 집사 시절이었고 직장생활을 하던 때였다. 저 당시에 여선교회장을 하시던 김집사님이 계셨다. 한국 교회는 주일날 여선교회에서 항상 신경 쓰는 것이 목사님 물 갔다 놓는 것하고 항상 꽃을 준비하는 것을 중요시 했다. 김집사회은 물에 젖은 손수건, 목사님 물컵과 꽃꽂이를 항상 준비하였었고 꽃꽂이를 아주 잘하셨다. 매주 토요일 마다 싱싱한 꽃을 사서 자르고 정리해서 교회에 가져다 놓았다. 그런데 어느 한 여자 성도님께서 교회에 출석하게 되었다. 그분은 국제적인 플로리스트였다. 그분이 워낙 잘하니까 어느 날 그분이 꽃꽂이를 하셨다. 그것을 보고 여선교회 회장님이 화가 나셨다. 내가 해야 하는데 왜 이것을 당신이 했느냐고 물었다. 결국에는 싸우고 교회도 몇주간 나오지 않았다. 저 때 있었던 실화이다. 자기가 한 일, 봉사가 인정받아야 된다는 생각 때문에 남이 한 것을 무시하고 다툰 것이다. 그런 일이 종종 있을 수 있다. 또 한 번은 이 집사님이 저 집사님께 돈을 꾸어 주었는데 저 집사님이 갚 질 않았다. 돈을 꾸어준 집사님이 시험에 들어 교회를 나오지 않았다. 심방을 해서 상황을 여쭈어 보니까 돈을 갚지 않는 집사님이 목사님께 혼을 나야 되고 창피를 당해야 하는데 버젓이 교회에 출석해서 예배를 잘 드리고 있으니까 화가 난 것이다. 내게 금전적 피해를 준 저 사람은 교회도 나오지 말아야 하고 목사님께 인정도 받지 말아야 하고 혼이 나야 된다는 생각이 있던 것이다. 제 모교회가 시장 통 지하에 있었다. 시장에서 신발 장사를 하시던 젊은 집사님 내외분이 계셨다. 그런데 신발 장사가 잘 되지 않아서 가게 문을 닫았다. 망했다고 창피해서 교회를 나오지 않았다. 교회나 목사님한테 보고 없이 그냥 이사를 간 것이다.

▶ 우리는 지금 복음을 알고 있으니까 웃을 수 있다. 그 당시에 당사자들은 굉장히 심각해 했었다. 여선교회장쯤되면 나보다 더 잘하는 전문 플로리스트가 왔으니까 하나님의 축복이 아니겠는가 저 사람이 할 수 있도록 내가 양보하고 길을 터주어야지 라는 생각이 들어오지 않았던 것이다. 저 사진에 보이는 두 아이가 선미와 선애인데 선미는 첫째 아이였기 때문에 사랑을 많이 받았다. 최고로 입히고 먹이고 유치원도 비싼 곳에 보냈었다. 그때 돈 들여서 예수전도단의 킹스 키즈라는 프로그램까지 보냈었다. 그런데 애기 둘이 있을 때 옆에서 보게 되면 선미가 선애를 때리고 있었다. 내가 계속 집중을 받고 부모님의 사랑을 받았는데 동생이 태어나니까 엄마, 아빠의 관심이 동생한테 간 것이 마음에 불편했던 것이다. 네가 태어나서 내가 이렇게 됬다는 것이다. 플로리스트와 여선교회장님이랑 똑같은 것이다. 갑자기 네가 튀어나와서 내가 할 일을 빼앗아가고 목사님의 관심 못 받게 하고 이것이 똑같은 것이다. 돈을 못 갚았으면 불러서 위로하고 하나님께 재물의 축복을 받도록 같이 기도하자고 품을 수 있다. 복음, 구원을 다 오해하고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장사하다가 망했으면 더 교회 나와서 간절히 부르짖고 목사님께 축복기도를 받는 것이 맞다. 내가 하던 일이 망하니까 창피하고 자존심 상하니까 성도들 얼굴 보지않고 도망간 것이다. 제가 지금 미국교회를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고 옛날 한국 교회이야기를 하고 있다.

 

1. 세상에 있는 종교와 하나님이 주신 복음에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 첫번째이다. 세상에 있는 종교하고 하나님이 주신 복음에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이 차이를 모르니까 오해하고 착각해서 스스로 무너졌다가 교회를 떠나가는 것이다. 세상의 종교는 사람의 행위, 공로가 기준이 된다. 그런데 복음을 깨닫은 사람들은 알고 있다. 아무리 잘나도 도토리 키 재기이다. 아무리 착하게 살아도 하나님을 만족 시킬 수 없다. 그래서 하나님이 구원의 길을 보내신 것이다. 그 구원의 은혜, 하나님이 이루신 행위를 기준으로 삼는 것이다. 꽃꽂이를 잘하는 저 사람도 구원이 필요하고 꽃꽂이를 하다가 멈춘 나도 그리스도가 필요하다. 세상에서는 행위 중심, 공로중심으로 살다가 교회 오니까 이것이 다르다. 세상에서는 공로를 세우면 칭찬을 받거나 또, 공로를 세우지 못한 경우에는 도리어 비난을 받는 것이 세상이다. 정죄하기도 하고 처벌하기도 한다. 이것이 초대교회에도 일어났다. 사도행전 11장에 보면 베드로 목사님이 고넬료 외국사람한테 복음을 전했다. 하나님이 역사하셔서 거기에 복음의 문이 열리고 구원의 은총이 임했다. 굉장한 하나님의 역사였다. 그 소식을 들은 초대교회 사람들이 베드로에게 대들었다. “유대에 있는 사도들과 형제들이 이방인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 함을 들었더니 베드로가 예루살렘에 올라갔을 때에 할례자들이 비난하여 이르되 네가 무할례자의 집에 들어가 함께 먹었다 하니” 이렇게 싸웠다. 옛날 종교 방식 그대로 교회에 가지고 온 것이다. 원래는 어떻게 반응을 했어야 하는가? 우리 주님께서 모든 족속으로 만민에게 땅끝까지 가라고 했는데 그 하나님의 언약이, 그리스도의 약속이 이루어졌구나 얼마나 감사한가 이렇게 나왔어야 했다. 베드로 목사님이 이 일에 쓰임을 받으셨군요 축하 드립니다 이렇게 나왔어야 했다. 그런데 무할례집에서 식사를 하고 같이 시간을 보냈으니 이것은 율법에 어긋난 것이다 하며 정면으로 반박했다. 알다시피 이 초대교회, 마가다락방 교회에 이 때부터 성령의 역사가 단절되기 시작했다. 사도행전 12장에 보시면 안디옥 교회가 일어나는 배경이 나온다.

▶ 물론 성경에는 이것 해라 저것 하지 말아라 라는 명령이 많이 기록되어있다. 그래서 우리는 남을 위해 선행도 베풀어야 되고 또, 타인을 위해서 돕는 공로도 세워야만 한다. 그런데 그것을 가지고 그 기준을 가지고 다른 사람을 비교하거나 정죄하거나 비난하는 것은 복음이 아니다. 여기에는 이유가 있다. 왜냐하면 복음을 통해서 깨달으면 우리의 성품, 행위, 공로를 가지고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거나 만족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것을 통해서는 구원 받을 수 없다. 우리가 착하게 살고 선행을 베풀어야 하는 것을 맞는데 그 행동을 가지고는 하나님 앞에 나올 수 없을 뿐더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릴 수 없다. 그래서 에베소서 2장은 말씀하고 계신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우리는 행위로 자랑할 수 없다는 말이고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 없다는 이야기이다. 우리의 행위, 이사야 64장에도 똑같이 기록되어 있다. “무릇 우리는 다 부정한 자 같아서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으며 우리는 다 잎사귀 같이 시들므로 우리의 죄악이 바람 같이 우리를 몰아가나이다” 하나님이 보실 때는 그렇다는 것이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만족하게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다. 그래서 히브리서 11장에 말하고 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교회에 와서는 행위도 좋고 선행도 좋은데 믿음이 기준이 되어야 되는 것이다. 무엇을 믿는 것인가? 하나님의 은혜를 믿는 것이다. 나는 절대, 결코 구원 받을 수 없는 존재인데 하나님이 은혜의 선물로 구원을 베풀어주신 것이다. 나는 반드시 지옥에 가야 하는데 하나님이 은혜로, 선물로 천국을 보장해 주신 것이다. 이것을 정말로 깨닫게 되면 하나님이 보내주신 구원의 길, 그리스도가 너무나 좋게 되는 것이다. 미치도록 좋아지는 것이다. 자기보다 더 흠모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그분을 전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진짜 하나님의 은혜를 알게 되어지면 감사하고 찬송하게 된다. 그리고 나서는 그분의 선하심이나 그분의 위대하심을 말하게끔 되어있다. 바울은 이 고백을 한 것이다.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하나님이 이루신 일을 알게 되는 것이다.

▶ 그러면 오늘 그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서 행하신 하나님의 공로를 다시 한번 확인하겠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서 이루신 공로가 무엇인가? 그것이 복음이다. 그분이 이 땅에 성육신, 인간의 몸으로 오셨다. 그리고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셨다. 이 세가지가 그분이 하신 공로이다. 성육신 했다는 말은 창조주가 피조물로 왔다는 말이다. 우리의 눈높이에 맞추어서 오신 것이다. 즉, 무한하신 분이 우리를 만나기 위해서 제한을 받아 낮아지신 것이다. 그것은 바로 겸손함의 극치이다. 저희 가족은 밤 10시에 10시기도를 한다. 그때 저와 사모는 사위나 딸의 눈높이에 맞추어 예배를 드린다. 찬송도 제일 쉬운 찬송을 부른다. 그리고는 성경구절 중 제일 중요한 것 그리스도 3직, 인간의 근본문제 3개만 밤낮 적는다. 수준에 맞추려고 하기 때문이다. 저는 사실 할 일이 많다. 우리 교회에서 사찰집사나 부교역자가 없기 때문에 제가 다 일을 해야 한다. 주보편집부터 프린팅까지 다 해야 한다. 핸디맨이 오면 저와 말을 해야 하고 잔디를 깎으러 오면 제가 다 감시하고 체크도 써줘야 한다. 다음 날에 할 것도 많다. 그런데 왜 그런가? 눈높이에 맞추어서 해야 한다. 예배를 드리지 않으면 또 금방 세상으로 돌아간다. 눈높이에 맞춘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주님이 내려오신 것이다. 우리를 위해서 하신 일이다. 십자가는 또 무엇인가? 우리를 위해서 희생하신 공로이다.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에 대신 감당해주시고 우리를 해방 시켜주신 공로이다. 그리고 죽음을 통과하셨다. 그래서 성경에 보게 되면 ‘죽음처럼 강한 사랑은’ 이런 말이 나온다. 자신이 대신 희생하신 것이다. 그것은 바로 사랑의 극치이다. 그리고는 부활하셨다. 왜 죽으신 분이 부활하셨는가? 사탄이 가지고 있는 사망 권세를 깨트리려고 부활하신 것이다. 그리고 우리에게 승리의 권세를 주셨다. 능력의 극치이다. 겸손함의 극치, 사랑의 극치, 능력의 극치를 이루어 내신 것이다. 이 세가지의 일을 하신 분을 그리스도라고 말한다. 이 그리스도의 일을 하신 분이 바로 예수님 이시다. 이 예수님이 그리스도의 일을 완성하신 유일한 분이시다. 구원의 대 역사를 이루셨다. 바로 예수님을 나의 그리스도로 인정하고, 구원자로 모실 때 영원한 구원을 받는다. 마귀와 함께 영원한 지옥 불에 들어가야 되는데 영원한 하나님의 아들이 된 것이다. 이것이 얼마나 큰 공로이신가? 얼마나 위대한 업적인가? 예수님은 그리스도이다. 예수님은 내 인생 모든 문제를 해결하신 그리스도 이시다.그 예수님이 성령으로 나와 함께 하신다. 실제적으로 이 땅에 우리를 만나기 위해서 재림하실 것이다. 여러분들이 이것을 계속 신앙고백 할 때, 여러분 개인과 가정과 가문에 흐르는 영적 저주와 재앙이 무너져 내려간다. 그것이 복음이다. 지난주에 살려봤던 것처럼 복음은 교제이다. 지속적인 관계를 맺을 때 복음의 능력이 풍성해진다. 교회에 다니는데 자꾸 문제가 생기면 하나님이 사인을 보내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교제하고 관계를 지속하고 누리자고 하시는 것이다. 여러분은 딱 하나만 하시면 된다. 신앙고백을 하시면 된다. 이 문제를 해결하신 그리스도 이십니다. 그리스도께서 주인되시기에 이 문제 역시 인도하실 것입니다. 그러면 흑암이 떠나가고 문제가 해결이 된다. 전혀 엉뚱한 곳에서 응답이 물고 들어온다. 참 놀랍다. 그것이 바로 복음의 능력이다. 승리하기를 바란다. 종교와는 완전히 반대이다. 

 

2. 지나고 보면, 하나님의 은혜로 시작하여 하나님의 은혜로 마무리됨을 알게 된다.

▶ 두번째이다. 지나고 보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시작되었고 결국에는 하나님의 은혜로 마무리 됨을 알게 된다. 오늘 성경 본문 고린도전서 15장 10절에 바울이 고백한다.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라고 나와있다.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게 되어지게 되면 진짜 맡길 수 있게 된다. 그러면 늘 두려워 하고 공포에 떨던 사람도 영적인, 내적인 여유를 갖게 된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시작해서 하나님의 은혜로 진행되다가 하나님의 은혜로 마무리 된다. 복음을 깨달으면 그렇게 된다. 복음을 깨닫는 것 자체도 하나님의 은혜로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로 그리스도의 복음을 깨달을 수 있는 줄로 믿는다. 골로새서 1장 6절에 말씀하신다. "이 복음이 이미 너희에게 이르매 너희가 듣고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날부터 너희 중에서와 같이 또한 온 천하에서도 열매를 맺어 자라는도다“ 사실 복음은 복잡한 것이 아니다. 매우 단순하고 쉬운 것이다. 그런데 세상사람들이 이해를 못한다. ‘끝났다’ 이 한마디를 이해하지 못한다. ‘다 이루었느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내 인생의 주인으로 신앙고백하고 모시게 되면 여러분의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문제가 사실은 끝난 것이다. 염려 하지 않아도 된다. 돈이 떨어졌는가? 굶으면 된다. 계속 굶게 되는가? 그러면 순교하면 된다. 사자 굴에 떨어졌는가? 잡아 먹히면 되는 것이다. 불 가운데 떨어졌는가? 타 죽으면 되는 것이다. 이것이 안되는 것이다. 끝났기 때문에 순교를 하던 부활을 시키던 그것은 하나님의 몫이다. 복음 가진 사람을 끝났구나 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하실 일이 있으면 하나님이 돈을 주신다. 인생에 내가 해야 될 사명이 있게 되면 불 가마나 사자 굴에서 건져 내신다. 이 복음의 비밀을 깨달을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또 한가지 은혜로 될 수 있는 것이 바로 로마서 3장에 기록 되어있다. 하나님의 은혜로 죄인인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의인이 된 것이다. 로마서 3장 24절에 말씀하고 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아무런 요구조건 없이 하나님의 은혜로 의롭게 된 것이다. 법적으로 영원히 하나님 앞에 의인이 된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그래서 지옥에 가지 않고 천국을 보장 받은 것이다. 천국 가기 전에 기도응답 받으면서 세계복음화 하다가 가는 것이다. 여러분들은 하나님 앞에서 의인 인줄 알고 믿고 누리셔야 한다. 내가 나 자신이 의인이 아님을 안다. 겁 많고 두려움 많고 실수 많이 하고 죄 짓는것 자기 자신이 안다. 그런데 내 주인이 누구인가? 흠 없고 점 없고 죄 없으신 그리스도가 내 주인이다. 하나님이 나를 볼 때 종을 보겠는가? 주인을 보겠는가? 의로우신 그리스도를 보기 때문에 내가 의인이다. 그리스도 때문에 의인이다. 이것을 여러분이 누리셔야 한다. 그래야 응답을 받을 수 있다. 정죄감에 눌리게 되면 응답 받지 못한다. 내가 과연 응답 받을 수 있을까? 내가 축복을 받아도 되는가? 이런 생각이 양심의 가책 같은 생각 같지만 딱 걸리는 것이다. 나는 응답 받으면 안되는 사람이고 축복 받을 사람이 못돼. 이렇게 사단이 생각을 걸어서 축복의 통로를 차단시킨다. 여러분들에게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의가 법적으로 영원히 들어와 있기에 천국 열쇠를 갖게 된 것이다. 기도해서 하늘 문을 여는 것이다. 이것을 못 알아 들으니까 천국을 침노하라고 노골적으로 기록해 놓은 것이다. 그러면 다 바뀐다.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고 하나님의 응답을 받고 만남의 축복을 받고, 내가 하나님의 일에 쓰임을 받고, 사람이 바뀐다. 그 사람이 아닌 것 같이 성품도 바뀌게 된다. 굉장히 매력적인 사람으로 바뀐다. 하나님의 은혜 때문에 그런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가 없이 나는 응답 받으면 안돼 나는 축복 받을 사람이 못돼 라고 한다면 막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에 맡기시기를 바란다. 하나님의 은혜에 내버려 두시기를 바란다. 하나님이 손대신다. 그것이 가장 정확하고 가장 강력한 치료방법이다. 다시 한번 말씀드린다. 사람이 말하고 내가 말하게 되면 더 덧나게 되어있다. 완전히 맡기기를 바란다. 하나님의 은혜가 임해야 한다. 바뀐다. 그것을 재창조의 역사라고 한다. 또 한가지,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다. 에베소서 3장 7절이다. “이 복음을 위하여 그의 능력이 역사하시는 대로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을 따라 내가 일꾼이 되었노라” 교회 봉사와 헌신, 전도와 선교, 사역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가 없으면 피곤하게 되고 지치게 된다.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게 되면 이것이 기쁨이 되어지고 신나게 된다. 하나님의 은혜로 하게 되어지면 함께 다른 사람을 살리게 된다. 깨달음도, 의로움도, 하나님의 사역도 하나님의 은혜로 가능한 것이다. 이것을 체험, 경험해 보게 되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되는 것이구나 라고 알게 되고 고백할 수 있다. 인간의 공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이다. 그렇다면 문제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야 한다. 

 

3.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는 나만의 방법을 가진 자는 절대 축복 속에 있게 된다.

▶ 마지막 세번째이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은혜를 지속적으로 받아 누릴 수 있겠는가?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는 나만의 방법을 가진 자는 절대축복 속에 거하게 된다. 절대축복이 무엇인가? 절대 사라지지 않는 축복이다.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이다. 복음 때문에 주신 하나님의 복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회복된 에덴의 복이다. 성령 안에서 아브라함에 주셨던 복이다. 이런 복이 밀려오면 하나님의 일을 감당할 수 있게 된다. 방법을 말씀드리겠다. 개인적인 규례를 세우시기를 바란다. 누가복음 4장에 보면 예수님의 자기의 규례에 대하여 기록 되어있다. “예수께서 그 자라나신 곳 나사렛에 이르사 안식일에 늘 하시던 대로 회당에 들어가사 성경을 읽으려고 서시매” 자신의 습관대로 하셨다는 말이다. 정해진 날에, 정해진 장소 회당에 꼭 들어가서 성경을 읽으며 은혜를 받았던 예수님 이셨다. 바울도 마찬가지이다. 사도행전 17장에 나온다. “바울이 자기의 규례대로 그들에게로 들어가서 세 안식일에 성경을 가지고 강론하며” 라고 되었다. 자기만의 습관이 있었다는 이야기이다. 영적인 습관, 규례를 만들어야 한다. 매일 지속하는 자기만의 방법을 만들어야 한다. 성경을 읽는 것도 좋고 성경을 쓰는 것도 좋고 주일 강단 말씀을 다시 보는 것도 좋고 성구를 암송하는 것도 좋고 찬송하는 것도 좋다. 나만의 방법을 가지고 있으면 지속적인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고 절대적인 축복을 받게 끔 되어있다. 또 다른 표현으로는 영적인 도구를 만들라 라고 할 수 있다. 마가복음 1장에 보시면 예수님께서 새벽기도를 하고 계신다. “새벽 아직도 밝기 전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 새벽마다 하나님 아버지의 얼굴을 구하고 주님의 음성을 듣는 그의 삶은 예수님이 가지고 있었던 영적인 도구였다. 다 같은 말이다. 나만의 규례, 나의 영적도구. 또, 내가 갖춘 삶의 시스템 이라고도 말한다. 시편에 보게 되면 아침과 낮과 밤마다 하나님께 기도하는 삶의 시스템을 가지고 있던 다윗이 소개되어 있다. 시편 5편이다. “여호와여 아침에 주께서 나의 소리를 들으시리니 아침에 내가 주께 기도하고 바라리이다” 시편 42편에 또 말한다. “낮에는 여호와께서 그의 인자하심을 베푸시고 밤에는 그의 찬송이 내게 있어 생명의 하나님께 기도하리로다” 시 63편에 말씀하고 있다. “내가 나의 침상에서 주를 기억하며 새벽에 주의 말씀을 작은 소리로 읊조릴 때에 하오리니” 만왕의 왕이 되시고 최고의 이름을 가지신 그리스도가 자신의 규례를 가지고 있었고, 지상의 최고 왕인 다윗이 자신의 영적 도구를 가지고 있었다. 하나님께 최고로 쓰임 받은 최고의 사도 바울이 자신의 삶에 시스템을 가지고 있었다. 최고의 신분과 권세와 축복을 누린 사람들이 전부 자신 만의 영적인 툴을 가지고 있었다.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는 자기만의 방법을 가지고 있었다는 뜻이다. 흔들리지 않고 바뀌지 않는 자신의 툴을 시스템으로 만들 때 하나님은 부으신다. 하나님의 능력이 은혜로 여러분에게 임할 줄로 믿는다. 선물로 주실 줄 믿는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약속하신 것이다. 받으시고 누리시기를 바란다.

 

♠ 결론

▶ 결론을 맺겠다. 남의 공로를 인정하고 격려하라. 나는 하나님의 은혜로 시작하리라. 하나님의 은혜로 말씀을 깨닫고 하나님의 은혜로 의인의 축복을 누리며 하나님의 은혜로 주의 일, 교회 일을 하리라. 이 결단이 여러분의 결단이 되기를 축원한다. 이 결단이 여러분에게 이루어지기를 원한다. 하나님의 은혜가 여러분의 인생을 주장할 수 있기를 축원한다.

▶ 기도합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은혜를 깨닫고 은혜를 누리게 하옵소서. 종교의 틀을 깨트리고 복음 속으로 들어가게 해주옵소서. 나를 내려놓고 하나님의 은혜 속으로 들어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