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다락방의 사람들 (14) - 사람들 앞에서 신앙고백 하는 자

June 9th, 2019

ICA Sunday Pulpit Message



♠ 서론

▶ 아이들이 다투다 가도 아버지가 나타나면 다툼을 멈춘다. 아버지의 존재감 때문이다. 지난 주에 시카고 총회를 다녀왔다. 원로목사님들이 참석하셨다. 그러면 젊은 목사님들이 인사를 한다. 어르신 목사님들의 존재감 때문이다. 그만큼 존재감은 영향을 입힌다. 반대로 나의 존재감을 무시당할 때에 어떠한가? 기분이 나쁠 것이고 자존심도 상할 것이다. 심지어는 화까지 나게 될 것이다. ‘이 사람이 나를 봐도 인사를 안하네’ 이것이 존재감이 무시 당했다고 느껴질 때 이렇게 되는 것이다. 하물며 하나님은 어떻겠는가? 사실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가 살 수 있도록, 숨 쉴 수 있도록 공기를 주신 분이 하나님이시다. 여러분들이 지금 육신의 몸을 가지고 있다. 육신의 몸 안에서 스스로 작동하는 신체 기관이 많다. 대표적으로 심장이 계속 뛰고 있다. 수축과 압축을 반복하여 계속하는데 너무 힘들어서 심장을 잠시 멈추는 것이 되는가 안되는가? 심장이 멈추는 날 가는 것이다. 이것은 내 마음대로 안되는 것이다. 즉, 하나님께서 뛰게 하신다. 피 순환이 멈추면 피가 응고되어 곧 사망하게 된다. 피가 돌아가는 것도 하나님이 주시는 힘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신자이건 불신자이건 간에 하나님이 지금 은혜를 주고 있다는 증거이다. 그러한 은혜와 축복을 주시는 하나님에 대해서 얼마만큼 우리가 의식하고 있느냐 라는 것이다. 불신자들은 말할 것도 없다. 아직 하나님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에 헛소리를 하지만 문제는 구원받은 우리이다. 신앙생활을 잘 하던 잘하지 못하던 하나님께서는 끊임없이 일을 하시고 우리를 위하여 축복하고 계신다. 만남도 주시고 먹을 양식도 허락하시며 우리가 헤아리지 못하는 사이에 수많은 기적들을 베풀고 계신다. 그러니까 평범하게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 배후에 어마어마한 하나님의 은혜, 천사들의 활동이 어우러져 있는 것이다. 총회에 가서 여러 목사님들을 뵈니까 이런 저런 일들을 당하신 목사님들이 많았다. 하나님께서 끊임없는 은혜와 축복을 하고 계신 줄로 믿는다. 그러한 하나님의 존재감을 의식하는 것 만큼 우리가 받는 응답이 달라지게 된다. 엄위하신 아버지가 들어오실 때 우리는 다툼을 멈추게 된다. 경험과 연륜이 많으신 원로 목사님들을 볼 때에 인사함으로 그들의 존재에 대해서 반응한다. 육신의 눈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어마어마한 축복으로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존재감을 의식하게 될 때에 신앙고백을 바르게 할 수 있다. 내 앞에 있기 때문에 그분이 내 옆에 계시기 때문에, 전능자께서 내 뒤에 계시기 때문이다. 실상 하나님께서는 여러가지 것들을 통해서 그분의 존재하심을 우리에게 알리고 있다. 

 

1. 하나님은 많은 것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알리셨다

▶ 자연 만물은 어떠한가? 동물과 식물들의 신비한 세계를 보라. 지구에 있는 대자연을 살펴보시기 바란다. 잠깐 말씀드렸던 인체의 신비를 보라. 더 나아가서 우주, 천체의 모습을 보라. 완벽히 작동하고 있다. 설계도가 없이는 불가능하다. 만든 자, 주인이 없다 라고 설명할 수가 없다. 자연만물의 설계자, 만든 자가 반드시 있다. 하나님이 보여주고 계신다. 아직 인생의 철이 없을 때는 그것을 볼 여지가 없다. 일단 먹고 살아야 되니까 그것을 생각할 여지가 없다. 이해는 간다. 정신차리고 보게 되면 더듬을 수가 있는 것이다. 큰 충격이나 사건을 통해서 자신을 돌아볼 기회가 생긴다. 내 인생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주인을 보라는 하나님의 시그널이다. 그래서 로마서 1장에 보게 되면 자연을 통해서 하나님의 신성, 하나님의 계심을 볼 수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이신 줄로 믿는다. 또, 인류의 역사를 통해서 그분의 살아계심을 볼 수 있다. 한사람, 한사람, 개인이나 나라와 민족, 국가의 흥망성쇠를 보라. 참 신기하다. 복음이 단절되었을 때에 복음이 끊어졌을 때에 재앙이 임했다. 인류가 하나님의 은혜를 거절했을 때에 심판이 임했다. 참 신기하다. 앞으로도 마찬가지이다. 마태복음 24:14절에 있는 것처럼 복음이 전파되는 날, 끝까지 전달되는 날에 끝이 온다고 했다. 자연의 만물이나 인류의 역사를 넘어서 성경에 실제적으로 구체적으로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기록하고 있다. 이 성경이 위대한 사람들의 글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이 증명된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4000-5000년 전에는 인류에게 문자가 없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시대를 선사시대, 역사시대로 나눈다. 그러함으로 4000-5000년 전에 모세오경은 사실상 후대에 기록된 설이지 역사 기록이 아니다 라고 한다. 우리가 알고 있기로는 모세오경은 모세 당시에 모세가 체험하고 모세가 쓴 기록이다. 그런데 4000-5000년 전에 인류에 문자가 없었으니 그러므로 창세기, 출애굽기, 민수기는 후대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설화이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다 라는 말이다. 일리가 있는 말이다. 이런 사상과 가르침이 신학교에서도 있었다. 근대에 불신자 과학자들을 통해서 드러났다. 유물들을 통해서 드러났다. 4000-5000년 전에 이미 인류에게 문자가 있었음이 드러났다. 정말로 시간이 지나면서 그리고 과학이 발전하면서 그동안 성경을 부정했던 모든 것들이 뒤집히기 시작한 것이다. 성경의 하나님의 말씀이 그대로 증명이 되기 시작된 것이다. 더 확실한 것은 예언된 말씀이 인류 역사에 그대로 적중한 것이다. 영원을 다스리는 하나님이 아니고는 기록할 수 없는 말씀이다. 하나님이 살아 계셔서 모든 것을 주관하고 계신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믿지 않는다. 증거가 있고 증명이 되어서 믿지 않는 것이 아니라. 시편 14에 적힌 것처럼 “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는도다…” 이러는 것이다. 증거는 차고 넘치지만 부정하고 싶은 것이다. 살아 계시면 큰일나니까, 천국에 가지 못하는 것을 확신 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을 면하지 못할 것을 알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살아 계신다. 이미 모든 것을 통해서 그분의 계심을 존재하심을 우리에게 알려주셨다. 하나님의 말씀, 성경이 증거이다. 

 

2. 하나님의 존재를 의식하여 신앙고백한 자들

▶ 이러한 어리석은 불신자와는 달리 성경의 인물들은 하나님의 살아계심, 하나님의 역사하심,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그대로 의식했다. 알고 있었기 때문에 제대로 바르게 신앙 고백할 수 있었던 것이다. 당연한 일이다. 본 것을 봤다고 말하고 체험한 것을 체험했다고 말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들은 것을 들었다고 말하는 것이다. 당연한 것이다. 그게 성경의 인물이고 믿음의 영웅들이다. 그런 성경의 인물들이 꽉 차있다. 그래서 하나님의 존재하심, 살아계심, 역사하심을 알았던 믿음의 인물들이 신앙고백을 바르게 했는데 그것을 조금 살펴보겠다. 요셉을 잘 아신다. 형들의 시기와 질투 때문에 노예로 팔려갔다. 고생길이 훤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던 요셉은 그 가정의 총무가 되었다. 숨 돌릴 만하게 된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로 보디발 주인의 모든 것을 관리하는 관리자가 되었다. 용모가 준수하고 아담했던 이 요셉을 주인의 아내가 자꾸 유혹을 했다. 요셉이 그 유혹을 거절하면서 한 말이 있다. 창세기 39:9 이다. “이 집에는 나보다 큰 이가 없으며 주인이 아무것도 내게 금하지 아니하였어도 금한 것은 당신뿐이니 당신은 그의 아내임이라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 ‘어찌 이 큰 일을 행하여 주인께 죄를 범하리까’ 라고 말하지 않았다. ‘내가 어찌 큰 악을 향하여 하나님께 죄를 범하겠습니까’ 라고 말했다. 주인 여자가 윙크해서 아무도 모르게 나쁜 짓을 할 수 있다. 주인마저 속일 수 있겠지만 하나님이 보고 계신다는 말이다. 요셉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바로 옆에 계심을 의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요셉이 축복받은 사람이다. 창세기 45장에 보게 되면 나중에 총리가 된다. 쌀, 먹을 것을 구하러 왔던 이복형제들을 만나게 된다. 오늘 1부 예배 때 잠깐 살펴봤는데, 이런저런 우여곡절 끝에 자신의 신분을 밝힌다. ‘제가 요셉입니다. 당신들이 노예로 팔았던 요셉입니다.’ 형제들은 기겁을 했다. 요셉이 말했다. “당신들이 나를 이 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사실상 원한이 맺히고 상처가 될 수 있었던 것이지만 그 모든 것을 하나님의 손 안에서 바르게 본 것이다. 하나님이 보내시고 하나님이 나를 세우시고 하나님이 여기까지 인도하셨음을 신앙 고백한 줄로 믿는다. 우리가 봐도 얼마나 멋진 요셉인가. 이런 믿음의 은혜가 저와 여러분들에게 있기를 정말로 축원한다.

▶ 다윗 이야기를 안할 수가 없다. 골리앗을 만났다. 골리앗의 거대한 체격과 엄청난 무기 앞에서 어떻게 고백하는가? 사무엘상 17장에 보시면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고백한다.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 그러면서 ‘내가 너를 필히 죽여버리니’ 라고 하지 않았다. “오늘 여호와께서 너를 내 손에 넘기시리니…” 라고 말했다. 하나님이 내게 붙였기 때문에 네 목을 벨 것이다 라고 말했다. 그리고 골리앗 뒤에 있는 블레셋 군대에게도 똑같이 말했다. “블레셋 군대의 시체를 오늘 공중의 새와 땅의 들짐승에게 주어 온 땅으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 줄 알게 하겠고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에게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넘기시리라” 믿음이 대단하다 이것을 떠나서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늘 생활화 했다는 이야기다. 골리앗이 이스라엘이 믿는 여호와 하나님을 모욕했다. 사울 왕을 비롯해서 이스라엘 군대가 전진을 못하고 있었다. 치욕의 순간, 위기의 순간이었다. 그런 모든 환경을 뛰어넘어서 하나님이 지금 살아계심을 신앙 고백하였다. ‘함께 할 것이다 역사할 것이다 인도할 것이다’ 라고 신앙 고백하는 것이다. 다윗은 알았다. 여호와 하나님이 내 앞에 있다는 것을 알았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옆에 계시고 뒤에도 함께 계신다는 사실을 알았다 나중에 사무엘상 24장에 보게 되면 자신을 평생 추격하던 사울 왕을 엔게디 동굴에서 코앞에 마주하게 된다. 사울 왕이 다윗을 쫓아가다가 지쳐서 동굴 안에서 수면 중에 있었다. 여기에서 사울 왕의 목숨을 끝냄으로 비참한 도망자의 삶을 끝낼 수 있었다. 그런데 다윗이 어떻게 하는가? 내가 당신 사울 왕을 죽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죽이지 아니함을 증거로 보여주었다. 칼로 사울 왕의 옷 끝자락을 살짝 베었다. 그러면서 한 말이다. 죽이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가. 이는 여호와께서 기름부음 받은 자이기 때문에 그렇다고 했다. 지금 사울 왕의 어떠함, 상태에 기준을 두지 않았다. 직위, 포지션만 왕이지 귀신에 들리고 다윗을 쫓아다니느라 국정에 소홀했던 왕이었다. 제사장을 모시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예배 드리고 제정신이 아니었다. 영적 문제에 사로잡혀서 아무것도 못하고 있었던 왕이었다. 왕의 자격도 없고 실질적인 왕도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번 여호와께서 기름부음을 주고 택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의 손 안에 있음을 자각한 것이다. 대단한 것이다. 자신의 유익 앞에서도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철저히 인지했던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다. '종 다윗은 내 마음에 합한 자로다.’ 대단한 것이다. 이런 하나님의 사람들이 많아지게 될 때 분위기와 문화가 바뀌는 것이다. 아무쪼록 우리 기성세대는 조금 흉내 내다가 갈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우리 후대들은 이러한 멋진 삶을 살 수 있기를 바란다.

▶ 오늘 본문의 베드로이다. 예수가 그리스도 라고 전도를 했다. 기득권 자인 유대인, 유대교인들이 고발한 것이다. 종교 법정에 세웠다. 그래서 베드로와 제자들이 체포되어 심문 당하고 있는 것이다. ‘왜 이단인 예수의 이름을 들먹이느냐. 왜 신성 모독 죄로 십자가에 처형된 예수의 이름을 증거하느냐.’ 종교 법정을 하시는가? 일반 민사 법정보다 무서운 것이 군사 법정이다. 대령쯤 되면 부하들의 생사권을 가지고 있다. 무시무시하다. 그런데 군사법정보다 무서운 것이 종교 법정이다. 출교, 파문으로 확정이 되면 끝이 나는 것이다. 차라리 죽는 것이 날 정도로 모든 것이 단절되고 모든 것이 끊어지는 것이다. 비참한 생각이 들게 하는 것이 종교 법정이다. 종교 개혁을 일으켰던 마틴 루터가 떨었던 이유도 바로 그런 분위기 때문에 그렇다. 그런 곳에 지금 베드로가 출두해 있는 것이다. 이 베드로가 지금 말하고 있다. "너희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알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고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사람이 건강하게 되어 너희 앞에 섰느니라 이 예수는 너희 건축자들의 버린 돌로서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하나님께서 천하 인간에 모든 사람을 구원할 이름은 이분 밖에 없다고 하나님 앞에 신앙 고백한 것이다. ‘너희가 죽인 예수는 하나님이 보내신 아들이요 그리스도이시다 그분이 부활의 권능으로 이 앉은뱅이를 치유한 것이다.’ 왜 예수를 전하지 말라고 했는데 왜 전했는가 라고 묻는 그 앞에서 너희들이 왜 그렇게 명령했느냐 따지는 것이다. 유일한 구원자의 이름이시다. 하나님 앞에서 한 베드로의 신앙고백이다. 그 다음 사도행전 5장에 보면 초대교회에 끔찍한 일이 벌어진다.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헌금을 떼먹고 들어왔다. 베드로가 말했다. “…이 일을 네 마음에 두었느냐 사람에게 거짓말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로다” 라고 말했다. 베드로는 알고 있었다. 엄청난 초대교회의 역사가 하나님의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자신의 개인의 경건과 권능으로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것이 아님을 알고 있었다. 하나님께서 충만함을 부어주셔서 성령이 이끌어가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자신에게 손해나 피해, 위기가 올 수 있음을 알고도 하나님의 존재감을 의식하고 있는 자들이 마가의 다락방 사람들이었다. 하나님을 향한 신앙고백은 모든 것을 초월하는 것이다. 여건, 상황, 계산이 상관이 없다. 그런 마가다락방 사람들의 대표자가 바로 베드로였다. 사람들 앞에서, 반대하는 사람들 앞에서, 대적하는 사람들 앞에서, 이단으로 정죄하는 사람들 앞에서 베드로가 바르게 신앙 고백을 한 것이다. 이런 교회를 하나님이 축복하시고 이런 마가의 다락방 사람들을 하나님이 사용하셨다. 모든 문제 앞에서, 모든 사람들 앞에서, 모든 장소 앞에서 이런 고백이 있기를 축원한다.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여러분들을 칭찬하신다. 다른 사람들이 받지 못하는 축복들을 하나님이 여러분들에게 부어주신다.

▶ 이 믿음의 인물들이 어마어마한 신앙고백을 했는데 성경에는 이 믿음의 영웅들보다 더 뛰어난 신앙고백을 한 분이 계신다. 사람으로 오신 예수님이시다. 그분의 일거수일투족 말 한마디, 한마디를 유심히 살펴보길 바란다. 요한복음 4장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신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 양식은 안 먹으면 죽는다. 양식이라고 하는 것은 죽고 사느냐 문제가 달려있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 아버지가 보내시고 이루시려는 일 때문에 나는 산다고 했다. 하나님의 아들이 하나님 아버지를 당연히 그렇게 생각하겠지 이렇게 말할 수도 있겠지만 제가 누누이 말씀드리지만 예수님은 100% 완벽한 사람이셨다. 자신의 개인의 능력을 사용한 적이 한번도 없다. 비둘기 같은 성령의 임재하심을 입고 오직 성령의 권능을 따라 말씀 사역하시고 기적을 베푸신 줄 믿는다. 철저히 아버지께 의존한 것이다. 왜 이렇게 하셨는가? 왜 사람으로 오셨는가? 저와 여러분 때문에 그렇다. 하나님의 아들들로 구원받은 여러분들이 똑같은 길을 갈 수 있도록 길을 열어 놓으신 것이다. 요한복음 5:17에 또 말씀하신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시매” 아버지가 움직이면 자신도 움직이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면 예수님도 기뻐하신다는 말이다. 하나님이 슬퍼하시면 예수님이 눈물을 흘리신다는 말이다. 아버지와 밀착 동행하는 것이다. 요한복음 5:19절에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들이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나니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그것을 아들도 그와 같이 행하느니라” 철저히 하나님 아버지의 그늘 속에 있다는 말이다. 철저히 하나님 아버지의 계획 속에 있다는 이야기이다. 즉, 오직 하나님 아버지께만 집중하고 있다는 것이다. 요한복음 14:10절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은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서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그분이 내 안에 계시고 내가 그분 안에 있다는 뜻이다. 요한복음 10:30절에 많은 논란이 있는 그 고백을 하셨다.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하신대” 신성모독죄인가 따지는 말이 아니다. 완전히 그분의 임재를 누리고 있다는 이야기이다. 하나님의 아들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가장 완벽한 모델이 되어주신 것이다. 무슨 모델인가?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모델, 하나님이 동행하시고 역사하신다는 모델. 완전히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말씀하시고 움직이셨다. 오직 하나님 앞에서. In front of God 이라고 표현한다. 신학교에서 배운다. Coram Deo 라고 배운다. 그런 의미를 가진 단어이다. 가장 완전하고도 완벽한 모델이 되어 주셨기 때문에 우리가 그분의 비밀을 누리게 되면 하나님의 함께하심을 우리도 체험할 수 있다. 그것을 우리로 누리게 하시려고 그분이 그렇게 하신 것이다. 아버지와 동등됨을 취하지 않은 것이다. 스스로 낮은 자리에 들어간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만 우리의 주인이 되어주시고 그리스도가 되신 것이다. 그분이 이제는 성령으로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에게 성령충만을 받으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어떻게 성령충만 그리스도의 충만을 받겠는가? 어떻게 하나님의 임재를 누릴 수 있겠는가?

 

3. 내 속에 그리스도를 채우라

▶ 말씀, 기도, 전도이다. 선지자 말씀, 제사장 기도, 왕 되신 전도. 여러분들이 말씀, 기도, 전도로 여러분을 채우시게 되면 그리스도로 채우게 되는 것이다. 증거가 있는가? 증거가 있다. 요한복음 6:63이다.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 예수님의 말씀을 우리가 받을 때 우리의 영혼이 살아나는 것이다. 오늘의 말씀을 붙잡을 때 그리스도의 영광이 우리 영혼 속으로 들어오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권능이 우리를 지배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우리 속에 우리는 영혼이 있고 생각과 마음, 육신이 있다. 이것을 채우는 것이다. 그리고 기도이다.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한다. 빌립보서 4:6-7이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여러분들이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게 되면 여러분의 생각과 마음 속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것이다. 여러분이 정말로 기도하게 되면 여러분의 생각과 마음 속에 채워지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이 생각과 마음이 평안 해야 모든지 일이 된다. 이번 총회 때 조금 늦게 오신 분이 계신다. 뒤늦게 와서 허겁지겁하셨다. 차에 핸드폰을 놓고 와서 다시 나갔다. 차에 없어서 다시 돌아왔는데 왼손에 들고 계셨었다. 본인이 들고 있는데 생각과 마음이 급해서 왔다 갔다 한 것이다. 한 예이다. 생각과 마음에 평안이 있어야 응답이 와도 깨닫고 응답이 없어도 하나님의 시간표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마태복음 28:19 이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가라고 하셨다. 내 육신 몸이 가는 것이다. 전도의 축복을 통해서 내 몸, 내 삶 속에 그리스도가 채워지는 것이다. 그래서 말씀과 기도와 전도를 하게 될 때 전격적인 모든 부분에 그리스도가 채워지는 것이다. 말씀과 기도, 전도가 집중 훈련의 한 코스라고 생각하시면 큰 오산이다. 우리는 메시지를 듣는다. 교회가 없고 나를 도와줄 자가 아무도 없어도 살아남을 수 있는 비밀이 있다. 그것이 말씀, 기도, 전도이다. 이 비밀을 누리게 되면 내가 무인도에 떨어져도 전도 받을 사람이 온다. 그리스도의 언약을 가진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이 모든 것을 움직이기 때문에 그렇다. 돌아가실 때 말씀 하나를 붙잡고 돌아가시기 바란다. 마태복음 10:32이다.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시인할 것이요” 예수님이 직접 말씀하신다. 오늘 설교가 너무 어렵거나 잘 모르겠다고 하시는 분은 이 성경 구절 하나 붙잡고 돌아가셔서 일주일 동안 승리하실 수 있다. 사람 앞에서 나를, 예수 그리스도를 시인하게 되면 나 또한 하늘에서 너를 시인할 것이다 말하셨다. 예수님께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시인한다고 하셨다. 아버지가 계신 곳, 천국 영생의 세계에서이다. 하나님이 인정한다는 말이다. 절대 상급을 받는 비밀이다. 천국 영생의 영원한 세계 속에서 절대 상급을 받는 비밀은 사람들 앞에서 제대로 신앙고백을 하는 것이다. 깨닫기 바란다. 여러분 심령에 믿어지기 바란다. 승리할 것이다. 

 

♠ 기도

▶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사람들 앞에서 신앙고백하게 하옵소서.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과 함께 하는 것과 인도하시는 것을 확신하게 하옵소서. 이 믿음의 비밀이 우리 후대에게 전달되게 하옵소서. 하나님의 나라 임하게 하옵소서. 이번 일주일 동안 승리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