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아들은 사람의 마음을 살핀다

June 11th, 2017

ICA Sunday Pulpit Message



♠ 서론

사람은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

 

▶약 1000년 전에 원효라는 중이 중국으로 공부하러 가고 있었습니다. 밤길에 피곤하고 지쳐서 길가에 있는 무덤가에 드러누워서 잠을 잤습니다. 잠을 자다가 중간에 목이 말라서 깼습니다. 손을 더듬거리다 보니까 물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시원하게 들이마셨습니다. 그리고는 잠을 푹 잘 잤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보았습니다, 자기가 마신 물이 바로 해골 바가지에 있던 구정물이었습니다. 거기서 그 스님이, 그 중이 깨달았습니다. 사람이 깨끗하고 더럽고는 사람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고 마음에 있구나 깨달았습니다. 중이니깐 석가의 가르침을 깨달은 것 입니다. 모든 것이 사람 마음에 달려 있구나.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를 깨달은 것입니다. 그래서 공부하러 갈 필요가 없겠구나 하고 자기나라로 돌아갔다고 합니다. 모든 일은 마음이 근원이다. 마음에서 나와서 마음으로 전달된다. 이제까지 이루어진 모든 일이 마음의 결과물이다. 좋은 마음을 가지면 즐거움이 오고 악한 마음을 얻게 되면 불행이 온다. 이것이 소의 석가, 불교의 가르침입니다. 이러한 불교의 가르침이 지구의 1/3을 장악한 것이죠. 일편(一便) 일리(一理)가 있습니다. 한동안 굉장한 베스트 셀러가 된 책이 하나 있죠 ‘Secret’ 이라는 책 입니다. 끌어당김의 법칙을 설명한 것입니다. 기대하고 원하는 것을 생각을 통해서 끌어오는 것입니다. 마음을 그렇게 먹는 것입니다. 어떤 마음을 먹어야 행복 할 수 있고 축복을 받을 수 있느냐 라고하는 것을 쓴 책이 ‘Secret’ 입니다.  또 성경 하나님의 말씀에도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무릇 지킬 만한 것이 있는데 꼭 너희 마음을 지켜라 생명의 근원이 바로 그 마음에서 나온다. 세상 사람들, 종교의 가르침, 심지어 하나님의 말씀에서도 마음의 중요성에 대해서 가르치고 있습니다. 오늘 사람의 마음에 대해서 보려고 합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사람의 마음을 중요하게 여기고 살피신다는 것입니다. 즉 우리가 찬양 드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마음을 전부 아시고 또 우리가 어떤 마음을 두어야 하는가 배워야 된다는 말 입니다.

 

1.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질문해보라.

 

▶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지금 어떠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 스스로 질문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정말 여러분들 예수님이 좋으십니까? 2000년전에 왔다 가신 분인데 좋으십니까? 결혼도 못해 본 남자인데 좋으십니까? 사람은 결혼을 해야 성숙해 진다고 하는데요 스스로 엄청난 능력으로 기적을 베풀기도 하고 시원설교를 했습니다만 갑자기 십자가에 못 박혀서 처형 된 사람입니다. 그것 때문에 그들이 따르던 조직과 단체가 무너졌습니다. 심지어 그의 심복들 조차도 예수님을 버리고 다 도망갔습니다. 전세계 대부분의 사람들이 유대인들 싫어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유대인 출신입니다. 예수님이 만든 기독교 때문에 세계에 전쟁, 테러, 종교분쟁에 실마리(端初)를 제공한 사람이 예수님 입니다. 우리가 교회 밖의 세상에 나가면 예수님 이야기하는 것 별로 안 좋아합니다. 그런데 그분 때문에 저와 여러분들이 정말 감사하고 감격하고 감동하고 있는가 질문해보자 이 말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그 분 한 분만으로 만족하고 충분하다 이런 마음이 있느냐? 그 분에 대한 존경과 신앙 때문에 그 분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과 같이 가족과 같이 여길수 있느냐? 그분의 명예 때문에 신자의 허물을 덮을 마음이 있느냐? 믿음의 식구들 잘 되는 것을 보고 기뻐하는 마음이 있느냐? 예수님의 계획, 비전에 동의하는 마음이 있느냐? 그분이 명령하신 것이 내 삶에 우선 순위가 되고 있느냐? 아니면 내 감정이나 자존심, 명예, 이익이 먼저이냐?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신세 한탄을 먼저 하고 있지 않느냐? 걱정을 먼저 하고 있지 않느냐? 예수님이 반기지 않는 줄 알면서 예수님이 기뻐하지 않는 줄 알면서 나 혼자 있을 때 나만의 놀이, 건강하지 않은 습관에 매여 있지는 않느냐? 그런 질문을 하나님 앞에서 던질 필요가 있습니다. 이런 모든 질문을 모아서 정리하면 세가지로 요약 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는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하나님께 아뢰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나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는 마음을 갖고 있느냐? 내 만남과 사건과, 내가 있는 현장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기고 있느냐? 나는 한계를 가진 연약한 인간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모든 것을 다스리는 전능자 이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렇게 맡기고 있냐는 말이죠? 두번째 질문은 이렇습니다. 하나님 말씀에 이렇게 되어있습니다. 너희가 먹던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라. 그리고 또 이런 말씀도 있습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이런 말씀 앞에서 내가 전심으로 모든 마음을 다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려고 하는 내 속마음이 있느냐? 또 하나님 말씀 소개합니다. 디모데전서 4장에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망령되고 허탄한 것 다 버려라. 오직 하나님의 일 경건한 일에 연습하고 훈련하라. 이런 영적인 훈련은 범사에 유익하고 금생(今生)과 내생(來生)에 약속이 있다. 신앙의 훈련이 너무 중요함을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내가 더 큰 응답 더 훌륭한 축복을 받기 위해서 내가 훈련 속에 있는가 그런 질문 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내가 정말 그리스도의 복음을 누리고 있느냐? 내가 그리스도 제자로 확립되어 있느냐? 지금 내가 교회 왔다 갔다 하는 것 말고 일꾼으로서 쓰임 받고 있느냐? 잘했다 못했다 말이 아닌 내가 그 질문 앞에 마음을 그대로 드려 보시기 바랍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우리의 마음을 살피시고 읽으시고 다 아십니다. 그때 하나님의 응답과 축복이 시작 됩니다. 우리의 마음을 감추면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우리 속마음을 다 보고 있는데 위장 돼있거나 계산 돼있으면 주님이 기뻐하지 않고 화를 내십니다.  

 

2. 하나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는 사람의 마음을 살피신다.

 

▶ 오늘 마태복음 15장의 내용입니다. 마태복음 15장 초반에 보면 바리새인, 서기관이 등장 합니다. 예루살렘에서 멀리서 예수님을 찾아 온 것 입니다. 그때에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예루살렘으로부터 예수님께 나아와 질문 합니다. 왜 이렇게 공사가 다망하신 종교 지도자들 바리새인, 서기관들이  멀리 예수님이 있는 곳까지 왔을까요? 지난 주 마태복음 14장을 봤죠? 오병이어의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예수님이 물 위를 걷는 기적도 보여 주셨습니다. 찾아오는 병자들을 물리치지 아니 하시고 다 치유해 주시는 기적을 발휘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명성이 실사(實査) 오른 것입니다. 이에 비례적으로 예수님에 대한 적대감도 고조 되었습니다. 예루살렘으로 파견 된 이 종교 지도자의 대표단의 목표는 무엇일까요? 예수님의 설교나 예수님의 메시지를 교정해 주겠다는 마음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의 다른 제자들을 더 잘 지도해 주어야겠다는 마음은 아니었습니다. 오늘도 본문에서 보시면 왜 손을 안 씻고 밥을 먹느냐라는 말이 아니다. 손을 안 씻고 밥을 먹으면 건강에 해로우니깐 앞으로 조심해라는 말이 아니다. 왜 손 씻고 먹으라는 유전, 전통을 깨느냐는 말입니다. 전통과 유전을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에 너희는 죄인이다라고 말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시비, 꼬투리를 잡아서 비난하고 정죄하려는 마음이 가득한 것입니다. 그런 속마음이 커져서 나중에는 예수님을 잡아 죽이기까지 한 것입니다. 결국 무슨 말 입니까? 이렇게 엄청난 기적을 일으키고 많은 사람이 쫓는 예수님, 나사렛 예수는 목수의 아들이지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야라는 마음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 내 인생 모든 문제의 해결자 이심을 믿지 않는 불신의 마음이 가득한 것입니다. 그 속마음을 바로 이야기 한 것이 아닙니다. 너 이거 잘못했지 저거 잘못했지라며 위장된 마음, 감추어진 마음, 계산된 마음이 속에 있던 것입니다. 여기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희들의 마음이 내 게서 멀리 떨어져 있구나 그러면서 비유를 통해서 결론을 내려 주십니다. 18절 19절에 말씀합니다. 입에서 나온 말이 마음에서 출발한 것이다. 손 안 씻고 음식을 먹는 것이 더러운 것이 아니라 이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감추어진 마음이 불신의 마음이었습니다.  그것을 예수님이 혼내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이방 여인 하나가 소란을 일으킵니다. “내 딸이 귀신 들렸습니다.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도우소서”라며 소동을 일으킵니다. 예수님은 아무 반응 하지 않았습니다. 제자들이 다급하여 이 사람을 어떻게 해달라며 보고를 합니다. 이때 예수님이 대답 합니다. 나는 이방 사람 접촉하지 않는다. 나는 이스라엘 백성을 찾아다닌다. 그럼에도 불구하도 이방 여인은 더욱더 적극적으로 주님의 도움을 구합니다. 이때 예수님께서 갑자기 너무 심각한 말씀을 하십니다. 모욕적인 말을 합니다. 어떻게 주인이 만든 음식을 자녀들에게 줘야지 개에게 주겠느냐 하십니다. 이 말의 뜻은 이방 여인은 너는 내 자녀가 아니라 개라는 말입니다. 여러분은 이런 말을 들으면 어떻겠습니까? 장로고 집사고 내려놓고 나가는 사람이 90%일 것입니다. 어르신의 말, 부모님의 말, 권위자의 말, 쓴 소리, 경책을 받아들이는 사람이 거의 없다. 현대 교회, 21세기 교회의 모습입니다. 속마음이 어떤 것입니까? 사실상 목사님, 부모님이라 하지만 속마음으론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쓴 소리를 아무에게나 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사람이기에 하는 것입니다. 약한 양심이 많이 있습니다. 귀신들린 이방 여인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집안에 있는 개들도 주인의 자녀들이 먹다 남은 부스러기 흘려진 것 받아 먹지 않습니까?”라고 예수님께 답했고 이때 예수님께서 “너의 믿음이 크도다” 믿음을 인정하시고 믿음을 칭찬 하셨습니다. 바로 그 순간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귀신들린 딸이 치유 된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역 현장에 난입했던 이상한 여자의 기록이 지금까지 성경에 기록되어 우리에게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인은 무슨 마음을 가졌을까요? 딸의 고통을 안타까워하는 마음을 갖고있었습니다. 소리를 지르며 소란을 피울 만큼 간절한 마음을 갖고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개라고 비유적으로 표현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 만이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졌기 때문에 붙잡은 것입니다. 예수님이 아니고는 절대 안된다는 확고부동(確固不動)한 마음을 가졌던 것이었습니다. 나사렛 예수라 하지않고 다윗의 자손이요 라고 했습니다. 유대사회에는 성경말씀들을 다 가지고 있습니다. 앞으로 우리 구원하실 메시야, 구원자, 다윗의 자손으로 오는 것을 다 알고 있었습니다. 상대방을 향하여 다윗의 자손이요라는 말은 당신은 그리스도요 , 메시야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신앙고백을 하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믿는 마음을 갖고 있었던 것입니다.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당신이 아니면 안됩니다, 당신은 유일한 분이십니다. 그 믿음의 마음을 갖고있던 것 입니다. 예수님의 모욕적인 언사에도 끝까지 주님을 붙잡은 것입니다. 이런 마음을 주님이 받으신다는 이야기 입니다. 사람이 무시를 당하거나 거절을 당하거나 인격적으로 하대를 받을 경우에는 그 속마음이 드러납니다. 무시를 당한다는 것이 영어로 무엇 입니까? Disregard, Look down on,. 거절을 당하다Refuse, Reject를 당하는 경우가 있죠, 청혼을 했는데 너와 결혼을 하기 싫어 이런 경우가 Reject 입니다. 인격적으로 하대를 받는 경우, 내 속마음이 드러납니다.  꼭 20년 전의 일입니다. 이 맘 때의 일입니다. 1997년 5월 오클라호마에 있는 신학교를 막 졸업하고 목사 안수를 받았습니다. 이제 흥분도 되고 감사도 되었습니다. 이때 딸 둘 아들 하나 아이들 셋을  차량 모빌에 태우고 U-Haul 트럭을 몰고 텍사스 달라스로 내려왔습니다. 오클라호마 시골에서 달라스 큰 도시로 내려 온 것입니다. 미국에서 살려고 다음달인 6월에 달라스에 있는 신학교에 입학 신청을 했습니다. 학생 신분을 유지하기 위해서 였습니다. 달라스에 있는 신학교를 갔더니 입학처에 로버트라는 신사분이 저를 도와 주셨습니다. I-20를 내고서 입학 허가를 받아야 되는데 로버트라는 분이 제가 오클라호마 신학교를 졸업하고 목사 안수를 받고 다시 신학교를 온다니 저를 배려 해 준 것입니다. 아직 이민국에서 I-20가 나오지 않았고 입학 허가 결정이 안 났는데  와이프와 아이들이 있으니까 신학교 기숙사에 들어와 살 수 있도록 배려해 주었습니다. 시간이 지나 이민국에서 I-20 서류가 통과가 되지 않았습니다. 당연히 신학교 입학이 안되고 학교 기숙사에서 나와야 합니다. 당연히 입학처에 있는 로버트의 잘못이 아닌데 아직 어린 아이들과 밖에 어디에 나가야 살아야 되는지에 대한 다급함 때문인지 로버트에게 화를 내고 언성을 높였습니다. 그 분은 묵묵히 저의 항의를 들으시며 저에게 사과를 했습니다. 시간이 지나 달라스에 살게 되었습니다. 학생들 다락방, 말씀운동, 성경공부를 쭉 하다가 신학교에 말씀운동, 성경공부 모임이 만들어졌습니다. 생각이 났습니다. 신학교 입학처의 로버트씨에게 잘못했던 일이 생각이 났습니다. 성경공부를 마치고 사무실로 가서 사과 해야겠다는 마음으로 찾아갔습니다. 마음을 먹고 찾아갔는데 로버트씨는 그만두고 그 곳에 없었습니다. 제 마음이 무거워 졌습니다. 시간이 지나서 생각이 들었습니다. 입학이 되던 안 되던 하나님이 하시는 일인데 하나님의 주권을 믿지 못하는 속마음이 드러난 것 입니다. 목사 안수를 받은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순간적으로 인정하지 못했던 것 입니다. 일이 안되어지니 그 마음이 툭 튀어 나왔던 것입니다. 그리고 로버트씨가 배려를 해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사람에 대한 진정한, 깊은 감사의 마음이 없던 것이었습니다. 진짜로 고마웠다면 얼굴을 붉히며 항의를 할 수 없는 것입니다. 특히 일이 잘 안될 때, 거절 당하고, 무시 당한다고 느낄 때, 시간이 지나고 나면, 일이 끝나고 나면, 응답 받고 난 후에 본 마음, 속마음이 드러납니다. 이런 부분이 많이 있는데 성경의 한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다윗 왕의 맞아들 암놈이 있었습니다 다윗 왕에겐 많은 아내가 있었는데 그때 다른 아내로부터 낳은 딸 다말이라고 하는 이복 여동생이 있었습니다. 암놈이라고 하는 장남이 이복 누이를 연모했다고 합니다.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상사병에 걸려 자리에 누웠습니다. 꾀를 써서 다말을 범했습니다. 성경은 기록하되 암놈이 다말을 범하고 난 뒤 다말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랑하는 마음인 줄 알았는데 일이 끝난 후 속마음이 드러난 것입니다. 즉 거절을 당하던 내가 그것을 성취하던 소원을 이루던 일이 끝나고 나면 속마음, 진짜 마음이 드러납니다. 우리는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나님께서 드러나게 하신 겁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즉각 보고를 해야 합니다. 나의 지금 상태를 하나님께 자백해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자백하면 하나님은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의 죄를 사하실 것이다. 그리고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하실 것이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연약합니다. 그때 드러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때 보고하시면서 새로운 힘과 능력, 믿음을 달라고 기도하시면 됩니다. 마음으로 하시면 됩니다. 마태복음 15장 본문에 보시면 이방 여인의 딸을 치료한 이후에 삼일동안 예수님을 따라다니던 무리들 또 한번 기적을 베푸십니다. 지난주에 보았죠. 마태복음 14장 오병이어의 기적을 예수님이 일으키셨습니다. 마태복음 15장에 또 예수님을 따라다니던 무리들에게  칠병이어의 기적을 베푸십니다. 이들에게 왜 또 이런 기적을 예수님이 베푸셨을까? 삼일 동안 따라다니던 무리들의 무슨 마음을 보셨을까? 그들은 이런 마음을 가지고 있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통해 나타난 기적과 소문에 대한 호기심의 마음을 가지고 따라왔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계속 듣다 보니 그의 말씀을 사모하는 마음을  가졌을 것입니다. 삼일 동안 이제 배고프고 지칩니다. 생각이 났겠죠. 지난번에도 오병이어의 기적을 보여 주셨는데 이번에도 기적을 나타내지 않겠느냐라는 믿음의 마음이 있었던 것 입니다. 우리의 필요를 기적으로 응답해 줄 수 있는 믿음의 마음을 그들이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계속 버티고 있었던 겁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그가 살아 계신 것과 그가 그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 지니라. 그 마음을 보시고 기적으로 역사 하신 겁니다. 제자들은 신기하죠 분명히 오병이어의 기적을 나타냈음에도 불구하고 똑같은 불신의 마음을 나타냅니다.  먹을 것이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줄 것 이 없습니다. 지난번에 기적을 베풀어 줬는데 이번에도 기적을 나타내십니까? 물어보지 않았습니다. 무리들은 믿음을 가지고 있었는데 제자들은 그런 믿음이 없었습니다. 여러분들의 필요를 주님께서 끝까지 채우실 것입니다. 기적을 일으키시는 주님께서 여러분의 기도를 듣고 또 기적을 베푸실 것 입니다. 그런 믿음을 주님은 기뻐 하십니다.

 

3. 하나님의 아들들인 우리는 무엇을 위해 기도해야 하는가?

 

▶ 우리는 무엇을 위해서 기도하고 마음을 두어야 하느냐?: 결론적을 말하면 불신의 마음을 버리고 믿음의 마음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바리새인, 서기관을 보십시오. 오래 신앙생활한 바리새인 입니다. 성경말씀에 정통한 서기관입니다. 체험을 중요시 했던 사두개인들 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이 누구인지 못 알아봤습니다. 불신의 마음으로 가득해서 정죄하고 죽이기까지 했습니다. 신앙의 경력이 오래된 것으로 되는 것이 아닌 것을 보여준 것입니다. 그리고 잘하고 싶은 마음 모두 있죠. 잘하려고 하는데 안 되는 체질을 딱 가지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26장에 보게 되면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다고 합니다. 말씀을 들었는데 현실 앞에서는 무너지는 것입니다. 기도하고 싶은데 연약한 육신 때문에 안 따라 가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고백하고도 주님을 배신하고 도망 갔던 제자들, 마음에 원함, 열정이 중요하지만 그것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내 것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것으로 되는 줄 믿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믿음을 주셔야 되고 하나님이 능력을 주셔야 합니다. 하나님이 믿음과 능력을 주시지 않으면 하고 싶어도 안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 믿음을 달라고 구하고 능력을 달라고 기도해야 되는 것입니다. 오직 성령이 임하시면 되는 줄 믿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영광을 위하여 쓰임 받기를 결단하는 기도의 마음,  땅 끝까지 증인이 될 줄 믿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믿음과 능력으로 시작하게 되면 신앙경력이 살아나서 유익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믿음과 능력을 주신다면 열정도 큰 바탕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나아가고 하나님께 영광을 나타낼 수 있는 것 입니다. 천하의 누구도 안되지만 하나님이 주시면 됩니다.

 

♠ 결론

기도는 언제든지 새로 시작할 수 있는 리셋 버튼이다.

 

▶ 우리는 이렇게 결론을 잡아야 합니다. 늘 말하는 그런 기도가 아닌 정말 기도를 통해서 축복 받아야 하는구나. 그래서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는 언제든지 새로 시작할 수 있는 리셋 버튼임을 믿고 확정 하시기 바랍니다. 예레미야 33장에 말하고 있습니다. 시위대에 뜰에 갇힌 예레미야 입니다. 군인들에게 붙잡혀서 감옥에 갇혔습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답답한 상황입니다. 이때 하나님의 말씀이 임했습니다. 일을 지어 성취하는 나 여호와가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그리하면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알려주겠다. 아무것도 할 수 없고 답답한 상황이지만 진짜로 기도하게 되면 새로 일을 하나님이 하십니다. 기도하면 하나님이 인도 하십니다. 우리의 믿음을 성장시키고 능력 가운데 쓰임 받게 하십니다. 기도입니다. 로마가 세계를 지배할 당시 세계를 대표하는 두 분의 어머니가 계셨습니다. 한 사람은 참회록을 쓴 성 어거스틴의 어머니 모니카 여사 입니다. 그 당시 또 다른 한 어머니는 네로황제의 어머니 아그리피나 입니다. 아그리피나는 자신의 남편 클라우디우스 황제를 죽였습니다. 그리고 자기 아들 네로를 황제로 앉혔습니다. 그러나 결국 그녀는 자식인 네로에게 암살당해 죽습니다. 그러나 모니카 여사는 아들 어거시틴을 위해 기도하는 어머니였습니다. 아들이 계속 방탕하고 방황할 때 눈물로 어머니는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이 시간표가 왔습니다 하나님이 어거스틴의 마음을 바꿨습니다. 하나님 앞에 서게 만드셨습니다. 그래서 성 어거시틴은 사도 바울 이후에 최고의 신학자가 됩니다. 위대한 인물들 뒤에는 위대한 어머니가 꼭 있었고 그 위대한 어머니 뒤에는 믿음과 기도가 있었습니다. 우리가 정말로 기도를 시작하면 사람의 마음도 바꾸십니다. 영원히 말씀 속으로 들어가게 만듭니다. 언약을 믿음으로 붙잡게 만듭니다. 주님의 말씀을 경청하게 만듭니다. 말씀을 사모하는 마음을 갖게 만듭니다. 예배를 통해 말씀 듣는 일에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사람이기 때문에 말씀 듣는 일에 우선순위를 두면 주변 사람들이 보게 됩니다. 엄마, 아빠가 예배에 생명을 걸면 자녀들이 그 것을 보게 됩니다. 아무리 목사라고 하지만 설교를 하지만 예배에 대한 생명을 걸지 않으면 자식들이 예배를 오지 않습니다. 제가 아이가 다섯인데 낳은 아이가 셋, 입양한 아이가 둘인데 최소한 제가 낳은 아이들 세명이 예배에 잘 나오지 않는다면 빨리 눈치 채시기 바랍니다. 김태성 목사가 말은 설교를 하는데 중심으로 믿음이 없는 목사 구나 판단하시면 딱 맞습니다. 목사님 아들, 딸들이 대예배만 나오고 오후예배는 나오지 않는다면 절반의 믿음만 가지고 있다고 보시면 맞습니다. 이 말은 목사가 기도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마음을 갖고 진짜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사람 마음도 바꾸십니다. 진짜로 기도하게 되면 하나님의 나라, 교회를 위해서 봉사하고 사역하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제 입에서 나온다고 한다면 교회봉사는 주님의 몸을 다르게 생각하는 겁니다. 정말로 기도하게 되면 교인들과 성도들의 관계가 제자의 관계로 바뀌게 됩니다. 몸의 지체가 성도들 입니다. 서로 연합하고 연락하고 유기적인 관계로 성숙해지는 것입니다. 전도자나 목회자의 보호자, 동역자, 식주인이 되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성도들 안에서도 사명에 눈 뜬 성도들이 있습니다. 그런 분들께서 모여 팀이 되어서 서로 기도하고 싶은 마음이 생깁니다. 복음 전하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제자 찾아 세우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기도하면 이런 역사가 일어납니다. 우리 마음을 다 살피시고 읽으시는 주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그리스도이심을 고백합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인 우리도 사람의 마음을 중요하게 보고 믿음의 마음이 일어나기 위해서 참된 기도를 하기를 축원합니다.

▶ 기도합니다. 존귀하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드립니다.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능력과 믿음을 얻게 하여 주옵소서. 실제적인 열매를 얻게 하여 주옵소서. 응답을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