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보다 남을 더 축복하는 나

June 10th, 2018

ICA Sunday Pulpit Message



♠ 서론

▶ 오늘 제목은 ‘나보다 남을 축복하는 나’ 이다. 세상을 보게 되면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는 것들이 있다. 수증기 같이 뜨거운 열기는 아래에서 위로 올라간다. 2층집에 사시는 분들은 잘 아실 것이다. 1층은 시원한데 2층은 후덥지근하다. 우리의 찬송도 아래에서 위로 하나님께 올라간다. 우리의 기도도 아래에 있는 우리가 하늘 보좌에 계시는 하나님께로 상달되는 줄로 믿는다. 반대로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것들도 있다.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흘러내린다. 하나님의 축복도 보좌 하늘나라 위에서 이 땅 아래로 이루어진다. 하나님이 주신 응답이 위에서 아래로 임하게 된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에서 아래로 축복하시는 것이다.

▶ 우리가 서밋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서밋의 자리에 있는 사람이 다른 사람을 축복을 해줄 수 있다. 축복이라고 하는 말을 복을 빌어서 기도해주는 것이다. 그래서 위에서 아래로 복을 빌어주는 것이다. 오늘 본문에 보시게 되면 야곱이라는 하나님의 사람이 애굽의 왕 바로에게 축복하는 장면이 나온다. 야곱은 이미 나이가 많은 노인이다. 그러나 이 이집트의 바로 왕은 당시 초강대국의 세계 최고 권위자였다. 저 같으면 황공무지로소이다 사실 제가 죽은 줄 알았던 요셉 아들을 잘 건수해주고 총리까지 시켜줘서 감사드립니다 라고 인사를 드렸을 텐데 야곱은 두 팔을 벌려서 그 초강대국의 왕을 향해서 축복기도를 해주면서 나아갔다. 이것이 바로 서밋이다. 자기가 아닌 남을 축복을 하는 자가 서밋이라는 뜻이다. 오늘 본문 47장 뒤에 49장에는 자신의 열두 아들을 향해서 축복기도를 하는 장면이 나온다. 단순히 잘 먹고 잘 살라, 신앙생활 잘하라는 축복기도가 아니다. 첫째부터 열두째까지 그 심령을 꿰뚫어보고 그의 미래를 축복하는 기도였다. 엄청난 영적 통찰력을 가지고 기도했던 것이다. 야곱이 정말 대단했던 인물이었다. 하지만 야곱이 처음부터 그런 것은 아니었다. 어떻게 이렇게 남을 축복하는 서밋의 자리에 설 수 있었는가 살펴보겠다. 그래서 야곱의 생애를 볼 필요가 있다.

 

1. 누구나 자기만을 위해 살았던 때가 있다.

▶ 첫번째이다. 누구나 다 자기만을 위해서 살던 때가 있다. 야곱의 생애를 처음부터 살펴보게 되면 오직 자기가 받을 응답과 오직 자기가 받을 축복 만을 위해서 투쟁하는 것 같은 삶을 살아왔다. 한번 보겠다. 태어나기도 전, 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였다. 공교롭게도 뱃속에는 쌍둥이가 있었다. 태중에 있을 때부터 쌍둥이 형제보다 먼저 나오려고 그 형제의 발목을 복중에서부터 붙잡고 씨름을 했다. 결국에는 둘째로 태어나고 성장을 했다. 성장한 후에도 몇 초 차이로 먼저 태어난 형의 장자권을 가지고 싶어서 팥죽 한 그릇으로 가져가려고 시도를 하기도 했다. 결국에는 아버지 이삭을 속이고 장자, 형이 받아야 될 축복기도를 자기가 받았다. 아시다시피 그 일이 화근이 되어서 형 에서의 칼날을 피해 저 멀리 하란 땅으로 도망을 갔다. 어머니의 지도를 받아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도망가서 살게 되었다. 거기서 야곱은 외삼촌의 일을 도와주면서 만난 외삼촌의 딸을 마음에 들어 결혼하고 싶어했다. 오직 자기가 마음에 드는 아내를 얻기 위해서 14년간 무보수로 열심히 일을 했다. 결국에는 14년만에 자기가 원하고 사랑하는 아내를 얻고 말았다. 아내를 얻고 나서 깨닫고 보니까 오랜 세월 일을 했지만 자기가 벌어놓은 재산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외삼촌과 계약을 맺었다. 알다시피 자신의 양들과 염소들을 키워 재산을 늘려갔다. 시냇가에서 단풍나무를 사용해서 얼룩진 양과 염소를 만들려고 전심을 다했다. 이렇게 야곱은 생애에 거의 대부분 자기의 것, 내 응답, 내 축복을 위해서 애를 쓰고 노력을 했다. 야곱이 잘했다 못했다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모두 야곱처럼 자기만을 위해서 살아가고 있고 살던 때가 있을 것이다.

▶ 저에게도 하나님께서 가난을 경험하게 하신 적이 있다. 그래서 고등학교를 올라갈 때 상업고등학교로 올라가야 되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상업고등학교만 졸업하면 바로 취직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즉, 내가 내 돈을 많이 벌어야겠다는 추구의 일환 이었을 것이다. 결국에는 제가 공무원이 되었다. 공무원은 월급이 뻔하다. 공무원 중에서 돈을 조금 많이 받으려면 승진을 해야 해서 승진에 목을 매기도 했다. 그러다가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한 것이다. 이렇듯 누구나 다 자기만을 위해서 살던, 살았던 때가 있는 법이다. 자기만을 위해서 살 때는 다른 사람이 잘 보이지 않는다. 주위의 것이 가볍게 보이거나 눈에 띄지 않는다. 주위 사람이나 가까운 사람을 향해서 함부로 이야기하거나 막 대할 수도 있다. 자기중심적으로 살게 되면 아무래도 그러한 경향이 있다. 이렇게 야곱이 살아왔는데 어떻게 변화 되었는가?

 

2. 하나님의 사람이 맞다면 누구나 자신의 것을 내려놓을 때가 있다.

▶ 두번째이다.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의 사람이 맞는다면 누구나 자신의 것을 내려놓을 때도 있는 법이다. 야곱의 생애를 보고 있다. 야곱은 자신의 것을 내려 놓는 여러 사건들을 경험하게 된다. 일단 20년동안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고생을 많이 했다. 양치는 일에 육신적인 고된 일을 경험했다. 그리고 주인 되는 외삼촌 라반의 눈치를 보느라 정신적인 고난도 있었을 것이다. 일을 하다 보면 내가 쉬고 싶을 때 쉬지 못한다. 주인의 눈치를 보고 내 마음대로 내 시간을 갖거나 밥도 먹기가 쉽지 않다. 자신의 자존심 같은 것들을 내려놓아야 한다. 이거 해라 저거 해라 시키면 해야 한다. 20년간을 고생한 것이다. 그리고 나선 여러 우여곡절끝에 여러가지 사건 뒤에 간신히 외삼촌 집에서 나왔다. 많은 사람들과 많은 재산을 가지고 고향으로 금의환향을 하려고 했다. 고향으로 내려가는 길에 소식 한 편을 전해 들었다. 형 에서가 군사를 데리고 마중을 나온다는 것이다. 무기를 갖춘 군사 400명을 이끌고 온다는 것이다. 사실상 에서와 야곱은 쌍둥이 형제이지만 원수가 되어서 헤어졌다. 장자권을 사기를 쳐서 빼앗아갔다. 실제적인 축복기도 마저도 빼앗아갔다. 형 에서가 복수하는 것이 당연하다. 마음이 답답하고 두렵고 떨리기 시작한 것이다. 모든 것을 잃을 수 있는 위기의 순간이 온 것이다. 그것이 유명한 얍복강가에서 기도한 야곱이었다. 하나님의 기적과 같은 은혜로 형 에서의 마음을 돌려놓았다. 형 에서의 칼을 내려놓고 형과 아우 간에 뜻 깊은 포옹으로 모든 것을 해소하게 되었다. 그것도 잠시, 형 에서의 칼을 피하였지만 얼마 있지 않아서 야곱의 딸 디나가 다른 동네에 구경을 갔다가 강간을 당하는 치욕스러운 사건을 당했다. 얼마나 아프고 힘들었겠는가. 디나의 오빠들이 자기 여동생을 범한 세겜 땅의 사람들을 속여서 무참히 복수를 했다. 아버지한테 허락을 받지 않고, 하나님한테 기도를 하지 않고 무참히 복수를 자행했다. 문제는 그 뒤의 일이다. 세겜 땅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대동단결해서 1대 전쟁이 벌어지는 계기가 되었다. 전쟁이 터지게 되면 야곱의 전 가족은 몰살 될 수 있다. 이것 역시 하나님의 은혜로 간신히 넘어갔다. 벧엘 땅이라는 동네에 이르렀는데 갑자기 또, 4명의 아내 중에 가장 사랑하는 아내 라헬이 죽어버리고 만다. 그래서 요셉과 베냐민은 어머니 없이 어렵게 성장하게 된다. 조금 있다가 네 명의 아내 중에 태어난 가장 큰 아들 루벤이 서모와 통간하는 일어 벌어진다. 아버지 야곱으로서는 충격적인 일이다. 얼마 있지 않아서 가장 사랑하는 아들 요셉마저 동물에 의해서 죽임을 당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대충 야곱의 생애를 보게 되면 아브라함과 이삭 또는 요셉보다는 끔찍한 일을 많이 당했다. 하나님이 이런 고통을 왜 야곱에게 허락하셔야만 했을까 질문할 수 있다. 하나님이 과연 무서운 분이기 때문에 그렇게 하셨는가?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중요한 내용이다. 마음으로 들으시기를 바란다.

▶ 하나님이 야곱에게 주시고 싶은 축복과 응답이 따로 있다. 그런데 야곱은 그것 말고 자신의 것, 다른 것을 계속 쥐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은 사건을 터뜨려서 내려놓게 만든 것이다. 하나님의 뜻과 계획, 하나님의 응답과 축복은 보지 못하고 자기 것을 끊임없이 붙잡고 있는 영적 무지함과 완고함을 깨뜨리려다 보니까 할 수 없이 이런 사건 사고를 일으킨 것이다. 어린 아이에게 어머니가 좋은 것을 주려고 하는데 손에 쥐고 있는 것을 놓치 않는다. 꼭 이러한 형국과 같다. 여러분은 원숭이를 잡는 법을 아는가? 인도네시아, 미얀마 쪽의 원주민들은 아주 손쉽게 원숭이를 잡는다고 한다. 물론 덫을 놔서 잡는다. 코코넛이나 단단한 흙더미 또는 나무에 구멍을 낸다고 한다. 원숭이 손이 들어갈 만큼 작게 구멍을 뚫어서 거기에 곡물, 음식물들을 채워 놓고 그냥 기다린다고 한다. 원숭이들이 오면 음식 냄새를 맡고 그 구멍 속으로 손을 넣어서 음식을 붙잡는다. 곡식을 붙잡고 주먹 쥐고 있으니까 손이 안 빠져 나오는 것이다. 원숭이는 그 사실에 당황하면서 이 손을 놓치 않는다고 한다. 음식을 포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덫을 만든 원주민이 웃으며 다가와도 음식을 쥔 손을 놓치 않는다고 한다. 손에 쥔 음식을 놔야만 손이 빠지고 도망 갈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음식에 미련을 버리지 못한 원숭이는 결국 원주민에게 잡혀 최후를 맞이한다고 한다. 자기의 것을 붙잡고 있는 이것을 놓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야곱에게 이러저러한 내려놓음의 사건을 허락하신 것이다. 내가 간절히 기도해서 받은 축복, 하나님이 한번 치면 날아갈 수 있구나. 14년 동안 고생해서 얻은 아내, 역시 하나님이 데려 가시면 끝나는 구나. 내가 벌어놓은 모든 재산과 재물, 종들도 전쟁 한번 나면 끝나는 구나. 조금씩 바뀌게 되는 것이다. 차츰 생각이 바뀌게 되는 것이다. 조금씩 중심이 바뀌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모든 사건들을 통해서 야곱은 서서히 바뀌고 변화되기 시작했다.

 

3. 하나님의 시간표 속에서만 서밋이 될 수 있다.

▶ 오늘 세번째 결론이다. 하나님의 시간표 속에 있을 때만 서밋이 될 수 있다. 세계 초 강대국 황제 바로를 위해서 축복을 빌었던 야곱, 자녀들의 미래를 바라보고 기도했던 야곱, 전 가족이 애굽의 특별 지역인 고센 땅에서 잘 살게 되었다. 그것이 하나님의 인도에 의해서 그렇게 된 것이다. 자기와 자기의 애씀과 노력과 관계 없이 하나님의 시간표 속으로 들어오니까 이 축복을 받은 것이다. 자기가 애굽의 이민신청해서 온 것이 아니다. 하나님과 동행했던 아들 요셉 덕분에 오게 된 것이다. 오늘 본문 창세기 47장에 보면 아들 요셉이 자신을 이끌어 바로 왕 앞에 서게 했다. 요셉의 인생 시간표 즉, 하나님의 시간표 속으로 들어가니까 이러한 축복을 받고 누리게 되는 것이다. 바로 왕을 향해서 축복을 하며 기도했던 야곱이 고백을 했다. 저는 나그네이다. 무슨 뜻인가? 세상을 향한 나의 집착을 벗어났다는 뜻이다. 이 땅, 이 세상은 잠시 나그네처럼 잠시 머물렀다가 가는 곳임을 알게 된 것이다. 이 땅에서 얻은 사람과 재물을 잘 관리하다가 가는 청지기 임을 안 것이다. 그리고는 영원한 본향 천국으로 간다는 사실을 알았다. 나그네라고 하는 것을 이런 깊은 깨달음 뒤에 하는 고백인 것이다. 그러면서 나는 우리 조상들 보다 나이가 많지 않다고 했다. 짧은 인생이었지만 험악한 삶을 살았다고 고백했다. 자기만을 위해서 살다가 조상들과 비교하여 보니 부족한 삶 이였음을 고백하는 것이다. 자기가 아닌 남들, 조상들과 비교하다 보니 나는 낮아질 수 밖에 없음을 고백한 것이다. 내가 생고생을 했다 자수성가를 했다 라는 뜻이 아니다. 나는 하나님의 다루심을 받은 자이다. 그렇게 고백을 한 것이다. 하나님의 많은 것들을 체험하고 나서 깨달았다는 것이다.

▶ 야곱의 고백처럼 모세도 동일한 고백을 했다. 시편 90편 10절이다.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이 땅에서의 삶이 나그네와 같기 때문에 그런 고백을 한 것이다. 내 것을 내 것으로 붙잡으려 했던 이 세상에서의 삶이 하나님이 나를 다루시는 기간임을 깨달았던 것이다. 바울 역시 같은 고백을 했다. 빌립보서 3장을 보면 나의 모든 것을 도리어 해로 여긴다고 말한다. 나의 좋았던 모든 것을 잃어버린다고 고백한다. 왜냐면 가장 고상한 분 그리스도를 얻기 위해서이다. 허무하게 살라는 말이 아니다. 염세주의로 살라는 말이 아니다. 산속에서 살라는 말이 아니다. 이 땅을 정복하고 지배하지만 나는 진짜의 것을 가지고 있다. 나는 모든 것을 관리하다가 후대에게 넘겨주고 진짜의 것을 잡으러 간다. 서밋의 응답을 누렸던 사람들은 다 이런 고백을 했다.

 

♠ 결론

▶ 우리는 야곱처럼 생고생을 하고 뒤늦게 깨달을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나를 대신해서 모든 것을 잃어버리신 분이 계신다. 나를 대신해서 모든 것을 내려 놓으신 분이 따로 계신다. 그것이 누구신가? 바로 십자가에서 다 잃어버리고 십자가에서 다 내려놓으신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래서 이 분 속으로 깊고도 깊게 들어가면 하나님의 인도가 저절로 나온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의 시간표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다투거나 싸우지 않았는데 서밋의 자리에 이르게 된다. 이것을 세상 사람들이 모른다. 하나님이 작전을 그렇게 세우신 것이다. 그래서 목사들이 시원찮게 보이게 만들고 교회가 형편없게 보이도록 하나님이 만들어 놓은 것이다. 교회의 집사가 더 거짓말 하고 교회의 장로가 더 사기치는 것을 많이 만들었다. 여러분의 잘못이 아니다. 하나님의 작전이고 모략이고 전략이다. 왜나면 함부로 아무나 못 오도록 하신 것이다. 하나님이 택하신 자만 알게 끔 만들어 놓으신 것이다. 지구상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교회와 목사를 쳐다보며 다시는 교회에 안 간다고 하게 만든 것이다. 그 어마어마한 하나님의 작전을 꿰뚫고 오신 분들이 바로 여러분이다. 그리스도를 보고 복음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러면 여러분의 모든 것이 그리스도처럼 보여지게 되고 그리스도처럼 생각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 그리스도처럼 싸우지 않고 승리하게 된다. 그리스도와 같이 남을 위해 헌신하고 축복해도 손해가 아님을 알게 된다. 이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서밋의 삶이다. 

▶ 기도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제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오늘 야곱의 생애를 보면서 깨닫습니다. 단 한번의 인생에서 내 것만을 추구하고 몸부림 쳤습니다. 어마어마하고 놀라운 하나님의 축복을 모두 놓쳤습니다. 그것을 바라보고 그것을 찾아내기 위해서 오늘 내 것을 내려 놓습니다. 나의 자존심을 내려놓습니다. 나 중심의 생각과 마음을 내려놓습니다. 나를 대신해서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내려놓으신 그리스도를 붙잡습니다. 내 인생에 주인이 되어 주옵소서. 그리스도께서 내 손을 잡아 주옵소서. 그리스도의 말씀하는 것을 듣게 하옵소서. 주님이 이끄시는 현장으로 가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서밋의 응답을 찾아내게 하옵소서. 나보다 남을 축복하는 야곱의 승리를 보게 하옵소서. 영원을 바라보며 미래를 꿰뚫어볼 수 있는 영적인 통찰력을 주옵소서. 세상의 어떤 성공자도 축복할 수 있는 영적 서밋이 되게 해 주옵소서. 그리스도 복음 때문에 남을 배려하게 하옵소서. 그리스도의 존귀하신 이름 때문에 남을 축복하며 살리게 해 주옵소서. 주님께서 나를 자상히 여겼던 것처럼 나도 남을 칭찬하고 축복하며 이끌어 주옵소서. 나의 인생 전체를 주 예수 그리스도께 의뢰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