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능자의 말씀을 따라가는 나

August 12th, 2018

ICA Sunday Pulpit Message



♠ 서론 - 제품 설명서, 내비게이션, 관광안내원

▶ 물건을 사면 제품 설명서가 포함되어 있다. 요즘에는 구입자, 소비자가 직접 조립해서 만드는 물건들이 많다. 그 안에 제품 설명서를 잘 읽고 그 순서대로 잘 따라가면 모든지 잘 조립할 수 있다. 그런데 제품 설명서를 잘 보지 않고 대충 그림만 보고 조립하다가는 다시 풀고 다시 조립해야 하는 수고를 할 수 있다. 요즘에는 차에 내비게이션이 달려있다. 지시하는 대로 잘 따라가면 목적지에 잘 도착할 수 있다. 또 단체로 해외 여행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깃발을 들고 관광 안내원이 선두해서 안내를 하며 돌아다닌다. 그런데 관광 안내원을 잘 따라가지 못하면 길을 잃는 낭패를 당할 수 있다. 그리고 어려서부터 부모님의 말씀을 잘 따라 행하는 자녀들은 칭찬을 받는다. 그랬듯이 하나님의 성도는 하나님의 말씀을 잘 따라가야 된다. 왜냐면 하나님의 말씀은 전능자의 말씀이기 때문이다. 사람의 말과 달라서 하나님의 말씀을 잘 기억하고 따라가게 되면 반드시 응답과 축복 받게 된다. 그래서 오늘 설교 제목이 ‘전능자의 말씀을 따라가는 나’이다. 어떻게 전능자의 말씀을 따라가는 것이 좋겠는가? 오늘은 많은 믿음 중에서 엘리야 선지자를 볼 것이다.

 

1. 모세와 견줄 만큼 시대적인 하나님의 종이었던 엘리야 (왕상18:1~46; 왕하2:1~15; 마17:3~4)

▶ 첫번째이다. 엘리야는 도데체 어떤 분이었는가? 모세와 견줄 만한 하나님의 시대적인 종이었다. 성경을 보면 그의 행적이 나온다. 구약성경 열왕기상 18장을 보면 유명한 사건이 나온다. 갈멜이라고 하는 산에서 850명의 우상숭배자들과 대결을 벌였다. 하늘에서 누가 불을 끌어당기는지 대결을 했다. 850명의 우상선지자들이 하루 종일 애를 썼지만 하늘에서 불이 내려오지 않았다. 그런데 엘리야가 기도하니까 하늘에서 불이 임했다. 그리고 기도하니까 하늘 문이 열려서 비가 내렸다. 오랫동안의 가뭄을 그치게 하는 단비였다. 마치 하늘 문을 열고 닫을 만한 능력이 그에게 나타난 것이다. 열왕기하 2장에 보면 엘리야 선지자가 죽음을 보지않고 하늘로 승천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때 하늘에 불말과 불병거가 동원되어진다. 회오리 바람을 타면서 하늘로 올라간 것이다. 마치 무슨 중국 무협영화 같지만 실제 일어난 일이다. 엄청난 하나님의 능력이 임한 것이다. 그리고 신약성경 마태복음 17장을 보면 제자들 앞에 예수님이 나타나셔서 예수님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나타내기 위해 자신의 몸을 변화시켰다. 예수님의 몸과 옷이 영광 가운데 빛이 났다. 제자들이 깜짝 놀랐다. 그때 예수님과 함께 두 선지자가 등장했다. 모세와 엘리야였다. 놀란 베드로가 집 3채를 짓겠다고 했다. 하나는 주님을 위해서 또 다른 하나는 모세, 그리고 마지막으로 엘리야를 위해서 짓겠다고 했다. 예수님과 모세와 엘리야 셋이서 긴밀하게 대화하는 모습을 보고 베드로가 그렇게 말한 것이다. 즉,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최측근에 모세와 엘리야를 대동했던 것이다. 즉, 하나님께서는 모세와 엘레야를 대등하게 취급하셨다. 한마디로 엘리야는 하나님의 대단한 종, 엄청난 사역자 였다.

▶ 그런데 신약성경 야고보서 17장을 보면 이런 기록이 나온다.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 엘리야라고 하는 위대한 선지자가 우리와 같이 일반 사람들하고 생각, 마음, 열정이 똑같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성경을 자세히 보면 엘리야 선지자가 위기가 왔을 때 두려워서 자살하려고 까지 했다. 그렇다면 그에게 나타난 능력은 엘리야 자신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우리와 똑같은 엘리야에게 하나님의 엄청난 능력이 함께 했는가 질문해야 한다. 여러분들이 다 똑같은 사람들이다. 여러분도, 저도 엘리야와 같이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는 자격을 갖추고 있다는 뜻이다.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난다고 생각해보면 감사하고 기쁘고 흥분 될 것이다. 여러분들에게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길 바란다. 자녀들 때문에 골치를 앓고 있다면 여러분들에게 자녀를 변화시킬 수 있는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면 되는 것이다. 남편, 아내 때문에 속상하다면 하나님의 능력이 임해서 배우자의 심령을 변화시킬 수 있는 증거가 나타나면 되는 것이다. 내가 직장 생활을 하거나 비지니스를 하고 있는데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면 직장에서 승진하고 사업도 형통하게 되는 것이다. 몸이 연약한 사람에게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면 강건하게 되고 몸에 질병이 있다면 하나님의 능력이 임해서 치유되면 되는 것이다. 엘리야도 우리와 똑같은 사람인데 어떻게 하나님의 능력을 누렸는가? 오늘 그 답을 찾고 돌아갸셔야 한다.

 

2.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전능자의 말씀을 따라갔던 엘리야 (왕상17:1, 2, 8, 18:1)

▶ 두번째이다. 엘리야는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전능자의 말씀을 따라갔기 때문에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했던 것이다. 오늘 본문 열왕기상 17장에 눈여겨볼 장면이 나온다. 1절을 보시면 엘리야가 너무나 당당하게 아합 왕 앞에 나타나서 선언을 한다. “내가 섬기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 말이 없으면 수 년 동안 비도 이슬도 있지 아니하리라 하니라” 그 중동 지방은 비가 오지 않는 건조기가 있다. 그때는 비가 내리지 않지만 새벽마다 이슬이 많이 맺히기 때문에 농작물이 그나마 재배가 된다. 엘리야가 선포를 했다. 내 말이 떨어지지 않으면 이슬 마저도 없을 것이다. 가뭄이 올 것이다. 재앙이 올 것이다. 지금 엘리야가 왕 앞에 나타나서 심판 적인 메세지를 던지고 있는 것이다. 물론 하나님께 받은 메세지이지만 그것을 가감없이 던졌다. 저 같으면 무서워서 아뢰옵기 황공하오나 왕이시어 앞으로 어려운 시대가 올 것입니다 라고 말했을 것 같다. 그런데 엘리야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내가 섬기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 말이 없으면 수 년 동안 비도 이슬도 있지 아니하리라 하니라” 그런데 다음 2절에 보면 이 일이 있고 난 다음에 하나님께서 다시 엘리야에게 말씀을 주셨다. 3절에 “너는 여기서 떠나 동쪽으로 가서 요단 앞 그릿 시냇가에 숨고 그 시냇물을 마시라 내가 까마귀들에게 명령하여 거기서 너를 먹이게 하리라” 하나님이 처음에는 엘리야로 하여금 아합 왕에게 당당하게 나가서 강력한 메세지를 선포하게 하셨다. 그리고 나서는 엘리야로 하여금 그릿이라는 시냇가에 숨으라고 말씀을 주셨다. 엘리야 입장에서는 어떤 모양새인가? 당당하게 나갔다가 숨어 지내라고 하는 것이다. 우리 같으면 하나님께 반박할 수도 있다. 우렁차게 선포하게 하시더니 지금 도망가면 비참하고, 비겁하고 나약한 사람으로 보여질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여전히 엘리야를 향하여 숨으라고 하셨다. 만일 엘리야가 자신 개인의 욕망을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달리 반응했을 것이다. 아닙니다, 내가 기도를 많이 해서 아합 왕과 결전을 벌여서 승리함으로 이스라엘 민족사에 내 이름을 남기겠습니다 라고 했을 것이다. 그러나 엘리야는 나타나서 말해라 그리고 숨어서 잠잠하라 두가지의 명령과 말씀을 다 따라갔다. 많은 이들이 나타나라는 말씀에는 쉽게 순복할 수 있다. 그러나 숨으라는 명령에는 몇명이나 순종할 수 있겠는가? 내가 사람들 앞에 등장하고 모든 일을 수고하고 애써서 주인으로부터 칭찬을 받는 일은 어렵지 않지만 너는 뒤에 가서 잠잠하라는 말은 따르기가 쉽지 않다. 하나님이 왜 이렇게 하셨는가? 하나님은 엘리야에게 중요한 것을 깨닫기를 원했던 것이다. 주 하나님 앞에서 용기보다 더 중요한 것이 말씀을 따라가는 순복이다. 엘리야는 이것을 잘했다. 그러면 왜 앞뒤가 맞지 않았던 말씀들을 잘 따라가고 순복했는가? 

 

3. 어떠한 상황에서도 전능자를 향한 깊은 집중의 시간을 가진 엘리야 (왕상17:5~6; 약5:17)

▶ 그것은 바로 세번째 엘리야가 어떠한 상황속에서도 하나님께 집중하는 시간의 중요성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엘리야가 이 부분을 아주 잘했다. 이렇게 해서 엘리야는 일생에 있어서 가장 소중한 시간,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의 시간, 하나님께 집중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평소에 엘리야가 하나님과 깊은 교제의 관계에 집중하는 것을 늘 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평소에 주위를 단절하고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하는 것이 익숙해 있지 않았다고 한다면 그릿 시냇가에 숨어서 하나님께 집중하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주님을 바라보는 집중의 시간이 너무도 중요하다. 그때 하나님의 능력을 신뢰할 수 있고 어떠한 상황이라도, 어떠한 말씀도 따라갈 수 있는 믿음을 갖게 된다.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었던 엘리야가 가지고 있던 비밀이 이것이었다. 오늘 저와 여러분들 모두 하나님께 집중하는 비밀스러운 시간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란다.

▶ 여러분들 천로역정이라는 작품을 아시는가? 성경 다음으로 많이 읽히고 팔렸다는 작품이다. 존 번연이라는 사람이 썼다. 존 번연은 평소에 주님과 교제하는 시간, 하나님께 집중하는 시간을 소중하게 여겼던 사람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존 번연에게 감옥에 들어가야만 되는 순간이 찾아왔다. 꼼짝 못하는 불행한 시간이었다. 그러나 존 번연에게는 좋은 기회였다. 감옥에 밀실에서 완전히 주님만 바라보는 시간을 가졌던 것이었다. 자의적으로, 타의적으로 하나님께 집중하다가 하나님의 영감과 아이디어를 받아서 천로역정이라는 작품이 일순간에 나왔다. 그가 평소에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어둡고 외로운 감옥 시간에 모든 것을 이기고 주님만 바라볼 수 있었던 것이다. 이와 같이 엘리야가 평소에 하나님과 깊은 교제가 있었기 때문에 그릿 시냇가에서 외로운 시간을 유익하게 보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 누림 때문에 나타나라, 숨어라 라는 말씀에 순복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쉽게 따라갈 수 있는 믿음을 갖기를 바란다. 거침없이 막힘없이 제한 없이 하나님의 말씀 따라갈 수 있는 믿음을 갖기 바란다.

▶ 이런 온전한 엘리야의 순복이 있으니까 하나님의 응답이 나타났다. 4절에 보면 하나님의 세밀한 약속을 주시고 계신다. 까마귀를 통해서 너를 먹이겠다. 5-6절에 보면 하나님이 그대로 응답하셨다. 까마귀는 성경에서 부정한 새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따라가는 엘리야가 아니었다면 이왕이면 비둘기로 해주시지 왜 부정 타는 까마귀냐고 말할 수 도 있었을 것이다. 왜 하필 하나님이 까마귀를 사용하셨을까? 하나님은 우리 인간의 고정관념을 깨뜨리기 원하신다. 어떠한 상황 속에도 말씀을 따라가는 순복의 믿음을 키우려고 하시는 것이다. 성경에는 그런 예가 종종 나온다. 엘리야와 대단한 종이었던 모세를 성장시킬 때 어디에서 성장시키셨는가? 유대인의 적들이었던 애굽 왕 바로의 공주 밑에서 자라나게 했다. 앞뒤가 잘 맞지 않다. 초대교회를 보라. 초대교회가 부흥이 되니까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할 시간표가 되었었다.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는 자로 어떠한 자를 하나님이 사용하셨는가? 초대교회를 가장 많이 핍박하고 성도들을 가장 많이 박해했던 바울을 하나님이 선택하셨다. 하나님의 말씀을 어디든지 따라갈 수 있는 그 믿음을 보이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가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곳에 가 있으면 까마귀를 통해서 먹이시는 초자연적인 응답이 있을 줄로 믿는다. 반드시 인도하신다. 사실적인 방법으로 또는 초현실적인 방법으로 하나님은 역사하신다.

▶ 오늘 1부 예배 때는 창세기 24장을 봤다. 아브라함이 나이가 많아서 아들 이삭의 며느리를 구하려던 참이었다. 아브라함이 자신의 충성스러운 종에게 명령을 했다. ‘내 아들 이삭의 아내를 구해와라’ 주인의 아들, 이삭의 신붓감을 구하기 위해서 멀고 힘든 여행을 갔다가 임무를 완성하고 돌아왔다. 그러면서 하나님께 기도를 했다. 가로되 나의 주인 아브라함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합니다. 나의 주인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의 인자와 성실을 끊이지 아니하셨음에 감사합니다. 우리 주인이 섬기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나를 길에서 인도하사 내 주인 동생의 집까지 이르게 하셨나이다. 아브라함의 종은 주인 아브라함의 명령에 순복했다. 그리고 인도하신 하나님을 신뢰하며 갔다 온 것이다. 결국 이삭의 신부감을 구해서 도착했다. 이처럼 우리가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 말씀을 따라가게 되면 하나님이 반드시 한걸음, 한걸음 인도하셔서 도착하게 하신다. 말씀 따라가길 바란다. 그러면 하나님이 한걸음, 한걸음 인도하신다.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한걸음, 한걸음 인도하셨다.

▶ 한 시대의 유명한 전도자인 빌리 그래함이라는 목사님이 있다. 그 빌리 그래함 목사님과 동역했던 킴 윅스라는 한인 여성이 한 분 계셨다. 눈이 안보이는 맹인이었다. 한국전쟁 때 실명해서 장님이 되었고 미군 중사의 도움으로 미국에 오게 되었다. 인디애나 주립대에서 공부를 하고 오스트리아에 유학을 가서 성악을 배워서 훌륭한 성악가가 되었다. 그리고 그녀가 예수님을 믿고 나서는 가는 곳곳마다 간증을 했다. 그것을 빌리 그래함 목사가 보고 함께 동역을 한 것이다. 킴 윅스라는 분이 간증했다.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나를 인도해주신다. 나를 이끌어주시고 인도해주시는 분들이 100m전방 앞에 뭐가 있다고 말한 적이 없다. 단지 발 앞에 물이 있으니까 건너라고 말해 주신다. 바로 발 앞에 계단이 있으니까 발을 올리세요 라고 말한다. 나를 인도하시는 분을 내가 믿고 한걸음씩, 한걸음씩 인도를 받는다. 그리고 결국 목적지까지 가게 된다. 하나님이 우리를 인도하시는 방법도 이와 똑같다. 우리는 10년, 20년 앞을 모른다. 그런데 오늘 무엇을 해야 할지 한걸음, 한걸음 인도하신다. 그렇게 믿음으로 순종해서 오늘 한걸음을 띄게 되면 내일도 인도받게 될 것이고 결국 내 생애를 통해서 하나님이 약속하시고 계획하신 뜻을 완전히 이룰 것이다. 즉, 엘리야에게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가느냐 아니면 멈추느냐가 이슈였다. 엘리야에게 초자연적인 방법을 통해서 응답하신 것처럼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한걸음, 한걸음 인도 받게 되면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역사가 나타난다. 그것을 믿으시고 그것을 체험하시기 바란다.

▶ 텍사스 달라스에 유명한 신학교가 있다. DTS라는 신학교이다. 여기에 아름다운 간증 일화가 있다. 지금은 유명하고 부흥된 신학교로 알려져 있지만 처음 초창기 때는 어려움을 많이 겪었다. 1924년 빚 때문에 학교 문을 닫을 상황이 되었다. 어려움이 닥치자 늘 그랬던 것처럼 설립자이신 루이스 쉐퍼 박사님은 자신의 방 문을 잠그고 기도를 했다. 모든 동역자들이 따로 회의를 하지 않고 다 같이 모여서 기도 하기 시작했다. 하나님, 이 학교를 닫아야 합니까, 팔아야 합니까 깊은 집중 기도에 들어갔다. 그 박사님 옆에는 해리 아이언사이드라고 하는 전도자도 함께 기도를 했다. 한사람, 한사람 기도하다가 해리 아이언사이드 박사님이 기도할 차례가 되었다. 주님, 당신은 모든 산과 언덕, 모든 가축들을 소유하고 계신 부자가 아니십니까? 그 가축들 중에 얼마를 팔아서 돈을 보내주시어 이 학교 빚을 무사히 갚게 하시고 학생들을 계속 양육하게 하옵소서. 말씀 붙잡고 기도한 것이다. 시편에 보시면 모든 천상천하 가축들이 여호와의 소유에 있다고 되어있다. 이렇게 기도하는 중에 그 사무실 바깥에서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카우보이 모자를 쓴 한 사람이 그 신학교 사무실 안으로 들어왔다. 자기를 소개하면서 말했다. 저는 달라스에 있는 카우보이이다. 오늘 마차 두대에 내 가축들을 잔뜩 싣고 시장에서 팔았다. 원래 저는 그 돈을 다른 곳에 투자할 계획이었지만 왠지 모르게 내 마음과 생각 속에 이 돈을 더 보람되게 쓰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 돈을 신학교에 기부를 할 테니까 하나님께 쓰임 받게 해달라고 하며 그는 그렇게 기부를 했다. 이 돈을 받아달라고 한 것이다. 사무실의 여직원이 깜짝 놀라서 급하게 학장실로 달려갔다. 기도하는 학장 사무실은 문이 잠겨있었다. 문을 두드리려고 하는 중에 그 안에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라고 소리가 들려왔다. 기도가 끝난 후에 여직원이 노크를 하고 들어가서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그 쉐퍼 학장이 카우보이를 만나서 인사하고 간증을 듣고 기부금을 잘 받았다. 그리고 쉐퍼 박사님은 다시 학장실로 들어와서 옆에 같이 기도했던 해리 아이언 사이드에게 하나님께서 지금 가축을 팔아서 이 수표를 보내주셨다고 말을 했다.

▶ 실화이다. 우연인가? 하나님은 정확 하시고 세밀 하시다. 그리고 우리에게 지극히 고마우신 분이시다. 하나님의 말씀, 전능자의 말씀을 따라가게 되면 하나님이 놀라운 체험을 주신다는 것이다. 여러분들이 말씀 따라가시기 바란다. 그것을 붙잡고 기도하시고 선택하시면 된다. 오늘 엘리야가 그 부분에 아주 능수능란했다. 형편, 사정 상황에 개의치 않았다. 하나님의 말씀은 단순히 교리가 아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그 말씀을 이루시기 때문에 그 말씀을 붙잡고 따라가며 기도하는 것이다. 주일날 여러분이 모여서 강단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기를 바란다. 말씀을 따라가라.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에게 체험케 할 것이다. 죽은 자를 하나님이 살리실 것이다. 가난에 묶여있는 자들은 하나님이 부유케 하시고 인간관계가 틀어진 자들을 하나님께서 살리실 것이다. 병든 자를 일으키실 것이고 낙심한 자에게 소망을 주실 것이다. 그 비밀은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따라가는 곳에 있다. 성경 두 군데를 살피고 결론을 맺겠다.

 

♠ 결론 - 하나님의 영원하신 말씀이 내게 주시는 메시지가 되게 하라. (시1:1~3; 시119:105)

▶ 시편 1편과 119편이다. 시편 1편에는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묵상은 곰곰이 생각하고 다시 리뷰하고 해석한다는 말이다. 말씀을 내 것으로 만든 다는 뜻이다. 그렇게 하게 되면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내 체질, 기호, 상황과 맞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붙잡으면 따라가시기 바란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형통케 하는 응답을 주실 것이다. 까마귀를 통해서도 하나님이 기적을 베푸실 것이다. 시편 119편은 어떠한가?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이 고백이 여러분의 것이 되기를 축원한다. 영원하신 하나님의 영원하신 말씀을 연약한 내 작은 삶에 붙잡는 것이다. 내게 주신 음성으로 붙잡으시기를 바란다. 그 뒤의 일은 하나님을 책임을 지실 것이다. 승리하기를 축원한다.

▶ 기도합니다. 살아계신 하나님, 존귀하신 하나님, 지금도 내 기도에 일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의 말씀, 전능자의 말씀 따라가는 믿음을 주옵소서. 이것을 위해서 주님과 깊은 집중의 시간을 누리게 하시고 어느 상황이든지 어느 곳에든지 주의 말씀을 따라가는 믿음의 힘을 기르게 하옵소서. 초자연적인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게 하옵소서. 이 모든 것이 주의 능력 안에서 이루어졌다는 것을 고백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