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아들은 세상의 도전을 받는다

August 20th, 2017

ICA Sunday Pulpit Message



♠ 서론

도전과 응전Challenge and Response

▶ 저희 집사람은 지금 한국에 있습니다. 병원 치료를 받으면서 한국에 있는 동안 옛날 이웃들을 만날 기회가 있었습니다. 30년 전쯤 입니다. 옆에 통역하는 선애가 아주 어렸을 때 입니다. 저희가 살던 아파트가 5층이었는데 공무원 아파트 였습니다. 1층부터 5층까지 각개 각층의 공무원들의 가족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1층 저희 집에는 국세청 공무원, 2층에는 관세청 공무원, 3층에는 시청 공무원 등등 공무원들이 살았습니다. 선교나 선애가 어렸을 때여서 아주머니들이 대신 아이들을 봐주시곤 했습니다. 그때 제가 직장을 그만두고 전도사로 교회에 봉사할 때여서 밖으로 저희 집사람과 신방을 나가니까 저희 아이들을 이웃 아주머니들이 많이 봐주셨습니다. 그 아주머니들이 아직까지 저희 아내와 서로 연락을 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어떤 분은 한 20년만에, 어떤 분은 10년만에, 어떤 분은 30년만에 아주머니들끼리 모였습니다. 그리고 아주머니들의 동생들과 가족들까지 모였던 것 같습니다. 우리 집사람이 오신 분들을 분석 했습니다. 교회 다니시는 분도 있고 성당, 절에 다니시는 분도 있고 종교가 없으신 분도 있었다고 합니다. 어떻게 할까 고민 중에 지난주 우리 교회 강단 말씀을 생각해보았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친다. 하나님인 아들들인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을 배운 대로 현장에 전한다.’ 그래서 그 말씀에 의지해서 차분하게 절에 다니시는 분께 전했다고 합니다. 옆에서는 왜 여기까지 와서 교회 질이냐고 농담 반 진담 반 하시는 아주머니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절에 다니시는 분이 예수님을 영접했다고 합니다. 말씀을 전하던 저희 집사람도 놀랐고 주위 분들도 놀랐다고 합니다. 신앙이 좋고 나쁘고 관계없이 받은 말씀을 붙잡고 우리의 삶 가운데에 적용하면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줄로 믿습니다. 목사가 설교를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여러분들은 믿음 가운데 이것이 이번주 나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이다 라고 받게 되면 그게 응답이 됩니다.

▶오늘의 제목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세상의 도전을 받는다.’ 아놀드 토인비(Arnold Joseph Toynbee) 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이 쓴 불멸의 저작 ‘역사의 연구’에 보시게 되면 ‘도전과 응전’이라는 단어를 썼습니다. 그 책은 이런 내용입니다. 자연조건이나 환경이 지나치게 좋은 것 보다는 어렵고 열악한 환경에서 문명 문화가 일어난다고 합니다. 여러분들도 한번 기억을 살려보세요. 세계사를 기억하고 보면 세계 문명의 발상지로 떠오르는 것이 있습니다. 전세계 문명의 발상지 하면 잉카, 메소포타미아, 또는 이집트 문명이 있습니다. 그 중에 이집트 문명을 예로 들었습니다. 원래 이집트 문명을 일으킨 사람들은 아프리카 사람들 이라고 합니다. 아프리카 북부지역에서 수렵생활을 했던 사람들 입니다. 언제부터인가 기후가 변화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강우 전선이 높아져서 유럽 쪽으로 올라갔습니다. 그래서 아프리카지역이 사막이 되었습니다. 거기에 살던 사람들은 선택을 해야 했습니다. 그 자리에 남아서 수렵생활을 해야 하는가, 아니면 수렵생활을 집어치우고 농경이나 유목생활을 해야 하는가, 아니면 거주지역 생활 환경을 다른 곳을 옮겨야 하는가 선택해야 하는 운명에 놓였습니다. 그 자리에 남아서 조상이 했던 것처럼 수렵생활을 했던 사람들은 다 사라졌다고 합니다. 생활방식을 유목민으로 바뀐 사람들은 아프리카에서 살아남게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독사, 해충이 우글거리는 나일강 변, 아프리카 북부 쪽으로 이사를 갔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 지역에서 유명한 이집트 문명이 발생했습니다. 나일강 변이 원래 물이 많아서 농사짓기는 좋습니다. 하지만 매년 범람이 되니까 생활 터전이 전부 다 무너지고 초토화가 됩니다. 매년 시련과 역경을 겪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언제 물이 넘치는지를 예측하기 위해서 천문학과 태양력을 발견했다고 합니다. 강물이 넘치고 난 다음에는 논의 경계가 없어지기 때문에 잘 측정하여 구분하기 위해 기하학이 발전시켰다고 합니다. 강물의 범람을 막아야 하기때문에 댐 사방공사를 발전시켰습니다. 공사를 자주 하다 보니까 도르래, 수레까지 다 만들었다고 합니다. 이런 기술들이 다 모여서 지금까지 미스테리로 남은 피라미드를 지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자연과 환경이라고 하는 어마어마한 도전, 역경과 시련이 왔지만 그것을 통해서 발전을 시켰습니다.

▶중국 쪽으로 옮겨보겠습니다. 중국에는 황하 문명이 있었습니다. 이 중국 거대한 땅에는 큰 강 두개가 발견되는데, 북쪽에 있는 황하강이 있고 남쪽에는 양쯔강이 있습니다. 양쯔강 쪽은 기후가 좋고 강물의 흐름도 완만하기 때문에 농토가 비옥해서 살기가 좋다고 합니다. 하지만 황하는 북쪽 추운 지역으로 흐른다고 합니다. 그래서 황하강 유역은 겨울만 되면 배가 다닐 수 없을 만큼 꽁꽁 언다고 합니다. 여름에는 장마 때문에 황하강이 범람하여서 사람들이 많은 피해를 입었다고 합니다. 중국의 문명이 일어난 곳은 살기 좋은 양쯔강이 아니라 황하강 유역에서 중국 문명이 일어났습니다. 자연이라고 하는 어마한 도전이 왔을 때 인간은 그 앞에서 응전을 하여 살아남은 것입니다. 아까 잉카, 마야 문명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것은 반대 현상입니다. 화려한 문명을 이루었지만 소리소문없이 마야 문명은 사라졌습니다. 너무 오랫동안 외부의 적이 없었기 때문에 평탄한 시간이 너무 오래 갔었습니다. 그리고 갑자기 외적의 침입이 와서는 그 시련을 살아남지 못하고 사라졌습니다. 이것을 도도새의 법칙이라고 합니다. 도도새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새 입니다. 그 인도의 조그만 섬에 사는 도도새는 먹이가 사방에 널려있고 천적이 없어서 애써서 날아 오를 필요가 없었다고 합니다. 포르투칼 선원이 이 섬에 도착해서 본 것이 도도새 입니다. 날 줄도 모르고 사람이 와도 쳐다보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포르투칼 말로 바보, 멍청이라는 뜻의 도도라고 새 이름을 지었다고 합니다. 섬에 사람들이 들어올 때 동물도 들어왔습니다. 유입된 동물들 때문에 도도새가 그 섬에서 멸종 됬다고 합니다. 소위 토인비가 이야기 했던 도전과 응전의 역사가 이것을 증명하고 있는 셈입니다. 혹시 우리 가운데 시련이나 어려움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더 강하게 더 오랫동안 축복하시려고 숨겨진 계획 인줄 믿습니다. 언제나 좋고, 언제나 문제가 없고, 언제나 시련과 고통이 없다고 한다면, 평소에 어려움을 통해 단련되지 않았다면, 쉽게 사라져 버릴 수 있습니다. 작은 시련에도 죽어서 없어지는 멍청한 도도새같이 되지 않기를 축원합니다.

 

1. 예수님이 당시 현장에서 받으신 도전

▶첫번째입니다. 예수님께서 당시에 그분이 있던 현장에서 받으신 도전입니다. 오늘 15절에서 22절까지 읽었습니다. 22장 끝까지 보시면 3번의 도전을 받으셨습니다. 첫번째입니다. 바리새인들과 헤롯 당원들이 합작해서 예수님을 공격한 것입니다. 헤롯 당원들은 헤롯왕이 있는 로마의 사람들입니다. 즉, 친 로마파입니다. 바리새인들은 어떤 파입니까? 로마의 반대파 입니다. 그러니까 민족주의 인 셈입니다. 그래서 종교적, 정치적 견해가 사실 서로 다른 팀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올무에 걸리게 하려 할 때는 같이 합작을 하여 팀이 되어 공격을 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 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대적하는 데에는 서로 원수라도 합하여 집니다. 그러면서 이야기를 합니다. 예수님은 참되신 분이시고 대단한 분이시라고 칭찬을 밑밥으로 깔았습니다. 그들이 무언가 배우려고 온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곤경에 처하게 하려고 질문을 던졌습니다. 이 로마의 황제 가이사 시져가 우리 나라를 붙잡고 있는데 우리가 그들에게 세금을 내야 하는가 말아야 하는가를 물어봤습니다. 로마에게 세금을 내야 된다고 답을 한다면 어떻게 됩니까? 예수님은 친 로마파라고 하면서 반대파들이 일어났을 것입니다. 내면 안된다 라고 말을 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친 로마파 사람들이 일어났을 것입니다.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게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때 예수님께서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내가 입장이 정리가 안돼서 연구 볼 테니 시간을 좀 줄래?’ 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무식한 자들이여 어찌하여 나를 시험하느냐’ 라고 폐부를 찔렀습니다. 그러면서 정확하게 그 분의 입장을 표현하셨습니다. ‘동전을 가지고 와라. 무슨 그림이 있느냐?’ ‘가이사 황제 그림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주고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쳐라.’ 라고 했습니다. 명언을 하신 것입니다. 그들의 올무에 걸리게 하려는 계략을 뛰어넘어서 정확한 진리를 설명한 것입니다. 곤경에 처하려고 하는 도전 앞에서 분명한 응전을 한 것입니다. 독생 성자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그렇게 했던 것처럼 우리도 세상에 그런 것이 왔을 때에 분명하게 말을 해야 합니다. 구원 받은 하나님의 성도는 두가지 세상, 두가지 영역에서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나라 교회에 당연히 헌금을 냅니다. 그 하나님 나라의 배경을 가지고 이 세상을 변화시키기 때문에 이 세상의 명령에도 발을 밟고 살고 있는 것입니다. 세상에 세금을 내야 합니까? 내지 말아야 합니까? 내야 하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2장에 말씀하고 계십니다. ‘인간이 세운 모든 제도를 주를 위하여 순복하라.’ 나라가 납세 제도를 만들었으면 세금을 내야합니다. 바울은 로마서 13장에 구체적으로 명시했습니다. ‘모든 자에게 줄 것은 주어라. 공세 받을 자에게는 공세를 주고 국세를 받을 자에겐 국세를 주어라.’ 라고 했습니다. 요즘 한국 뉴스를 보니까 종교인들에게 과세를 해야 하는데 이것을 유회하자, 말자 법안이 왔다 갔다 하는 것 같습니다. 지난번에 제가 선교대회 때문에 한국에 나갔을 때 한국에 계시는 목사님이 제게 물어봤습니다. 복음과 성경에 기초한 나라 미국은 목사님들을 예우해 주지 않는가 물어보셔서 복음 문화가 아직 남아있어서 예우를 받는 편이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그 목사님께서 한국은 세금을 매기려고 한다 하시고 어렵다 하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미국에서 예우는 하지만 목사님들도 세금은 다 낸다고 했습니다. 제가 받는 사례비에 원천징수를 하여 3개월에 한번씩 $1000불 정도를 낸다고 했습니다. 제가 지금 한국의 목사님들을 비평, 비난하려 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을 안 내니까 한국에 있는 불신자들이 욕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하신 말, 사도 바울이 한 말, 성경이 하는 말은 나라에 대한 세금은 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을 시험 들게 만들려 하는 그 도전에 향해서 정확한 진리를 선포하고 입장을 표명하신 것입니다.

▶이 변론이 끝나니까 느닷없이 사두개인이 나타나서 또 질문을 합니다. 바리새인과는 달리 사두개인들은 믿음의 내용이 조금 틀렸습니다. 사두개인들은 사람이 죽으면 없어진다 라고 믿고 있었습니다. 영혼소멸설은 여호와의 증인들과 같습니다. 인간의 영혼이 영원하다고 믿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합리주의자, 자유주의자, 인 셈입니다. 그러면서 성경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만일 형이 살다가 죽어버리게 되면 형수님 혼자 어떻게 합니까? 신명기 25장 말씀을 언급했습니다. 형제가 동거하는데 그 중에 하나가 죽어서 자식 아들이 없거든 동생이 그 형수와 함께 결혼을 해서 아이를 만들라고 신명기에 하나님이 그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성경을 이용한 것입니다. 첫째 형이 죽었습니다. 동생이 형수님 하고 동침을 했습니다. 그런데 둘째 형도 죽었습니다. 둘째 형수님도 동침을 해야 합니다. 셋째 형도 죽고 셋째 형수님 하고도 동침을 해야 합니다. 왜 하나님이 이것을 신명기에 명령으로 해놓았을까요? 재미 보라고 하는 겁니까? 반드시 언약의 후대를 만들어야 된다는 말입니다. 그 하나님의 의도는 버리고 이렇게 질문하는 것입니다. 만약 예수님 당신께서 부활이 있는 것을 믿는다고 치면 나중에 천국에서 다 부활할 텐데 누가 내 진짜 부인입니까? 원래 자신의 부인도 있고 첫째, 둘째, 셋째 형수 하고도 동침을 했는데 누가 천국에서 내 진짜 부인입니까 이렇게 물어봤습니다. 예수님이 즉답을 하셨습니다. ‘네가 성경에 대해서 무식 하구나, 하나님의 능력에 대해서 무지 하구나. 부활한 후 천국에서는 결혼이나 장가도 없다, 마치 천사들과 같이 되는 것이다. 부활해서 인간은 하나님과 영원히 함께 하는 것이다.’ 라고 하면서 정확하게 답을 해 주셨습니다. 나중에 육체, 영혼 부활을 부인하는 사두개인들을 위해서 정정해주고 계시는 것입니다. 성경은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사야서 26장 입니다. ‘주의 죽은 자들은 살아나고 그들의 시체들은 일어나리이다.’ 다니엘서 12장에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땅의 티끌 가운데에서 자는 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깨어나 영생을 받는 자도 있겠고……’ 만일 영, 혼, 육의 부활을 부정한다면 하나님의 능력을 부정하는 것입니다. 결혼 관계는 이 세상에서 국한 된 것이지 하늘나라 천국에는 없다는 말입니다. 천국에서는 더이상 출산도 없고 육신의 정욕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이 이야기를 합니다. ‘너희들이 항상 기도할 때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여 이렇게 기도하지 않느냐 만일 아브라함, 이삭, 야곱이 죽어서 없어졌다고 한다면 죽은 자의 하나님이 될 것이 아니겠느냐? 아브라함은 지금 살아있다. 영혼은 부활 되는 것이다.’ 정확하게 설명을 하니까 이들이 말을 못하더라 이렇게 나와있습니다. 어떠한 도전에도 정확한 성경적, 이론적 기반을 두어서 확고하게 설명을 한 것입니다. 말빨이 세야 이긴다가 아닙니다. 목소리 큰 자가 이긴다가 아닙니다. 정확히 알고 있으면 정확히 전달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이 상황이 벌어지자 마자 율법사가 등장해서 시험하기 위하여 또 질문을 합니다. 모세 5경, 하나님의 말씀, 율법 너무나 많은데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 한방에 끝내십니다. ‘네 마음과 목숨과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섬겨라. 그것이 첫번째 계명이다. 둘째는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 그러시면서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다.’ 라고 선포하셨습니다. 한마디로 끝내셨습니다. 이런 사건이 예수님 당시에 예수님께 직접 벌어진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는 세상의 도전을 무수히 받고 사역을 하셨다는 뜻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들이 된 우리는 세상의 도전이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이때 우리가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합니까?

 

2. 세상의 도전에 대하여 우리가 항상 취해야 할 자세

▶두번째입니다. 상황에 대해서 분명하게 여러분들이 이해를 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진실을 찾았으면 이 진실에 대한 확고한 입장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선 변화를 위한 당당한 용기를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아까 말씀드렸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면서 이 땅에 사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천국의 배경, 하늘의 배경을 가지고 이 땅을 축복하고 이 땅을 변화시키고 치유 시켜야 하기 때문입니다. 변화 시키기 위해서 여러분들을 구원 시키고 보내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김태성 목사를 이곳에 보내서 교회당 건축하고 여러분들과 잘 먹고 잘 살라고 한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들 미국에 이민 와서 잘 먹고 잘 살라고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현장을 치유하고 변화 시키려고 여러분들을 부르신 것입니다. 항상 여러분들이 이 생각을 가지고 계셔야 합니다. 하나님의 재창조의 역사를 위해서 나를 구원하시고 이 땅에 부르셨습니다. 왜 내가 텍사스 주립대 알링톤 캠퍼스에 가게 되었는가? 거기에 변화시킬 영혼이 있기 때문에, 변화 해야할 문화가 있기 때문에 나를 보내는 것입니다. 내가 왜 킬린에 집을 사서 이사를 갔는가? 이제 모기지를 갚을 만 해서 이사를 갔다 라고 생각한다면 하나님과 맞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애들도 커가니까 애들 방을 줘야하니까 방 많은 집으로 이사를 갔다 이렇게 생각하면 하나님과 안 맞는 것입니다. 그곳을 살리도록 하나님이 보내신 것입니다. 그러면 스윗 홈, 해피 하우스, 여러분의 부가 다 따라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처한 상황을 정확하게 이해, 인식하시면 됩니다. 전체를 보란 이야기입니다. 반드시 과거, 현재, 미래의 흐름이 있습니다. 이것을 봐야합니다. 분별할 수 있는 눈을 열어달라고 기도하시면 됩니다.

▶ 열왕기상3장에는 솔로몬 왕이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다른 것 구하지 않고 많은 백성들의 선악을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이 이것을 칭찬하셨습니다. 명예도 부도 아닌 지혜를 구한 것, 그래서 지혜를 주셨습니다. 솔로몬 왕이 젊은 나이에 왕이 되었습니다. 연회를 열면서 호강하려는 것이 아니었고 백성들을 어떻게 하면 도와줘야 하는지 이것 때문에 그 입장의 정확한 것을 구한 것입니다. 사도행전 2장에 보면 오순절 날 성령의 충만한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사람들이 방언을 하니까 주위 사람이 다 놀랐습니다. 심지어는 조롱하면서 대낮부터 술 취해서 헛소리 하는구나 이런 소리를 듣습니다. 이때 베드로가 열한 사도와 함께 일어나서 정확하게 외칩니다. 지금은 대낮이니 너희가 생각한 것과 같이 이 사람들이 취한 것이 아니다. 선지자 요엘로 하신 말씀을 성취되게 하신 것이다. 정확하게 사태를 파악하고 설명한 것입니다. 이 사람들이 이상한 소리를 하고 있냐 이러다가 교회 사람들 빼앗기겠다 라고 당황한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들에게 이런 은혜와 응답이 있길 바랍니다.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 진실하여 허물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고’ 전체를 보는, 과거, 현재, 미래를 볼 수 있는 눈이 열리길 기도하셔야 합니다. 상황을 이해했으면 내 입장이 확고해야 합니다. 이론적인 근거가 있어야겠습니다. 이게 바로 높이, 깊이, 넓이입니다. 높이는 영적인 높이를 말합니다. 깊이는 정신적인 깊이를 말합니다. 넓이는 현실적 세상의 것을 말합니다. 그 앞에서 정확한 입장을 갖고 계셔야 합니다. 사무엘상 17장에 다윗이 얘기합니다. 골리앗 앞에서 얘기합니다. 이 때 다윗의 형들이 제지합니다. 네가 전쟁에 놀러왔느냐, 구경하러 왔느냐. 형님들 죄송합니다 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다윗이 이르되 내가 무엇을 하였나이까 어찌 이유가 없으리이까’ 40일동안 여호와 하나님을 조롱하고 모욕하는 골리앗 앞에서 이유를 갖고 있었습니다. 자기가 목동 생활을 하면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축복을 누렸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주신 지혜로 찬송시를 지었습니다. 양을 지킬 때 하나님의 능력으로 사자와 곰을 이겼습니다. 다윗에게 여호와 하나님이 부모님 입니다. 그래서 부모는 나를 버릴지라도 하나님은 나를 버리지 않는다 말했습니다. 다윗에게 하나님은 친구와 같은 존재였습니다.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연인과 같은 존재였습니다. 그 하나님이 없으면 안되는 존재였습니다. 그런데 할례 받지 않은 저 이방인이 나의 주 하나님을 모욕하고 있었습니다. 분명한 입장인 것입니다.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 ‘내가 네 목을 베고 블레셋 모든 군대를 시체로 만들겠다,’ 나아가 ‘온 땅에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 줄 알게 하겠고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에게 알게 하리라’ 어린 다윗이었지만 확고한 입장을 갖고 있었습니다. 깡이 좋은 것이 아닙니다. 수많은 시간을 자기 일에 하나님의 인도를 받으면서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한 것입니다.

▶ 입장을 갖고 있으면 그 입장을 진전시켜야 합니다. 변화를 위한 담대한 용기가 필요한 것입니다. 내가 누구며 내가 왜 사느냐 이것을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위, 옆, 아래 입니다. 위로는 나의 하나님, 주님이 계시다. 옆으로는 함께하는 동역자들이 있습니다. 아래로는 우리의 후대, 렘넌트들이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어두움이 땅을 덮을 것이지만 일어나 빛을 발하라. 내가 예루살렘으로 가게 되면 나를 결박할 자가 있지만 나는 간다.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은혜의 복음을 증거하려 함에는 내 목숨을 조금도 아끼지 아니하노라’ 여기 계신 어른 성도님들은 이러한 메시지가 삶과 멀리 떨어져 있을 수 있습니다. 21세기 초강대국 미국에서 이민생활을 하게 되면 살아남는 것에 급급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은 알고 계셔야 합니다. 특별히 젊은 렘넌트들은 붙잡아야 합니다. 내가 지금 처한 현재 문제에 빠져있지 말고 하나님이 나를 사용하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말은 좋은 것 같은데,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은데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3. 지금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들로서 집중해야 할 내용

▶ 그것이 세번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들로서 집중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게 지금 계속 말씀드리고 있는 말씀 각인, 기도 뿌리, 전도 체질입니다. 말씀 속에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담겨있습니다. 여러분이 말씀 속에서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찾아내야 이 현실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의 나라가 있다고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거든요. 우리가 있는 현장에 하나님은 안 계십니다.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 사람들이 더 많이 있습니다. 그 차이를 알아내야 내 입장을 정리할 수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야 무엇을 하고 무엇을 결정할지 선택할 수 있습니다. 이 현실 상황을 정확히 보려고 하면 기준, 하나님의 말씀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이것 때문에 말씀 각인 작업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복 있는 사람은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며 주야로 묵상한다고 시편 1편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상황을 정확히 볼 수 있도록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 성경이 있음에 감사하셔야 합니다. 그래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지상 최후 40일동안 집중적으로 말씀을 각인 시키신 것입니다. 이런 응답 때문에 우리가 내일이나 내일 모레부터 40일 집중훈련을 하게 됩니다. 내가 잘하지 못하는 것을 다른 사람한테 보이면 어떡할까 두려워하지 마세요. 이건 설교가 아니고 여러분이 이 땅에 살면서 반드시 체험해야 하는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안되면 안되는 대로 계속 진행하세요. 여러분들 모두 말씀을 각인시켜야 합니다.

▶ 기도 뿌리, 왜 내려야 하는가? 기도 뿌리를 내리게 되면 하나님의 동행하는 체험을 하게 되고,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게 됩니다. 이렇게 전능하신 하나님과 함께 하는 누림이 있게 되면 어떠한 상황에서도 분명한 입장을 보일 수가 있습니다. 마가복음 9장에 말씀합니다.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 여러분들이 기도해서 귀신이 떠나는 것을 한번만 체험하게 되면 담대하게 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마지막에 합심해서 열흘 동안 기도했습니다. 오순절 날 하나님의 능력이 임했습니다. 방언이 터진 현상의 사람들이 이상한 소리를 한단 말입니다. 성경적인 근거를 가지고 정확하게 설명했습니다. 전에는 무서워서 숨어 다녔는데 이제부터는 나가 전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누리는 이런 태도를 견지해야 됩니다. 하나님께 기도하게 되면 힘을 얻게끔 되어있습니다. 힘이 있어야 분명한 자세를 표명을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기도라고 하는 것이, 하나님께 직접 아뢸 수 있는 이 축복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 전도 체질입니다.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전도자로 내가 살고, 전도자로서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게 되면 현장 변화에 대해서 용기가 생깁니다. 내가 정말 전도를 해야겠다고 마음 먹은 순간 하나님은 예비된 영혼을 붙이십니다. 내가 비록 성경을 많이 모르고 말주변이 없지만 예비된 사람에게는 정확하게 복음의 말씀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 1:8절 말씀에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라고 하셨습니다. 증인이 될 것이다, 전도 증인의 체질로 만들어질 것이다 이 뜻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정시기도를 했습니다. 기도하러 성전에 갔는데 앉은뱅이가 있어서 이야기를 했습니다. 증인 체질 되어 있으니까 말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냄새 난다, 동전 먹고 떨어져라 이 뜻으로 말한 것이 아닙니다.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그 사건 이후에 예루살렘에 대소동이 일어나고 전도 문이 열리게 됩니다. 예루살렘에 영적 판도가 바뀌어 버린 것입니다. 여러분이 실제로 말씀 각인, 기도 뿌리, 전도 체질 위해 기도하시면 여러분의 가정과 산업현장이 바뀌어 버립니다.

 

♠ 결론

모든 문제의 해결은 예수님이 누구신지 아느냐에 달려 있다. (마22:41-46)

▶ 결론입니다. 마태복음 22장 마지막 부분에 예수님께서 중요한 말씀을 하십니다. ‘너희들이 성경을 많이 알고 있지? 너희들이 존경하는 다윗이 뭐라고 했느냐?’ ‘나의 주께서 …’ ‘나의 주를 …’ 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너희들이 그토록 기다리는 메시야 그리스도가 누구의 자손이냐?’ 앞으로 오실 그리스도 메시야는 다윗의 후손입니다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성령에 감동된 다윗이 오실 분을 향해서 나의 주라고 했느냐?’ 그 말은 오실 메시야 그리스도는 혈통적으로 다윗의 혈통이지만 그의 주가 하나님이 되신다 이 뜻입니다. 나사렛 예수, 나는 다윗의 혈통으로 왔고 나는 하나님이다 이 뜻입니다. 바리새인, 사두개인, 율법사 모두가 못 알아본 것입니다. 그 나사렛 예수님이 바로 율법을 주신 여호와요, 생명 목숨을 쥐고 있는 창조주 하나님이시요, 국가의 흥망성쇠를 운전하시는 하나님이란 사실을 모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목수 요셉의 아들 예수를 못 알아본 것입니다. 알아봤다면 과연 그들이 예수님께 그랬겠습니까? 그렇게 시험하고 올무에 걸리게끔 그런 짓을 했겠습니까? 다시 말씀 드려서 모든 문제의 해결은 예수님이 과연 내게 어떤 분이냐에 따라 달려있습니다. 모르고 있었습니다. 성경 하나 가지고 수많은 교단 교파로 나뉘어서 서로 이단이라고 정죄, 심판 하는 일은 예수님을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당시에 여호와 하나님을 찾았던 바리새인, 사두개인, 헤롯당원 똑같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만약 예수님이 자기들을 천국과 지옥으로 보내시는 주임을 알았다면 과연 그랬을까요? 교회 성도님들이 피켓을 들고 ‘예수 믿고 천국 가세요’ 라고 노방집회를 하니까 옆에 있는 불신자가 급조해서 피켓을 하나 만들었습니다. ‘그러냐? 나는 예수 안 믿고 지옥가겠다’ 라고 피켓 들고 돌아다닙니다. 세상 사람들이 예수님이 누군지 몰라서 교회 욕하고 증오하고 있는 것입니다. 실제로 하나님 앞에서 그런 것들은 재고할 가치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떠한 이유에서인진 모르겠지만 작정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그리스도가 누구인지를 듣고 인정하며 고백만 하게 되면 다른 모든 문제를 하나님께서 보장하신다고 선포하십니다. 그리스도가 누구입니까? 인생의 모든 문제를 끝내신 예수님이십니다. 그것을 내가 인정하고 고백하게 되면 하나님이 일을 하시고 모든 것을 책임지십니다. 그런 인정과 고백이 있기를 축원합니다.

▶ 이 시간 다같이 눈을 감고 고백하길 원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서 고백하기를 원합니다. 원하시는 분은 저를 따라서 기도해주십시오. 나는 회복 불가능한 존재입니다. 당신이 보내신 그리스도가 예수이심을 들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시면서 나의 모든 문제를 못 박아 없애시며 부활하시면서 나를 새로운 피조물로 만들었음을 인정합니다. 이제 그리스도 예수 이름으로 보내신 성령님의 인도함을 따라 살 것을 고백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했습니다. 이렇게 진정한 고백을 했다고 한다면 세상의 어떤 도전이 일어나도 하나님이 말씀을 주시고 응답하실 뿐만 아니라 귀하게 쓰실 것입니다. ‘너희는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오늘 예배를 통해서 주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거친 세상 속에서 담대히 응전하게 하옵소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현실을 보게 하옵시고, 기도의 비밀을 누림으로 확고한 입장을 갖게 하옵소서. 전도자의 체질, 증인의 체질, 사람을 변화시키는 힘으로 현장을 변화시키게 하옵소서. 세상이 주지 못하는 하늘의 용기를 주옵소서. 그리하여 하나님이 원하시는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했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