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아들은 우리의 죄악을 품으신다

August 27th, 2017

ICA Sunday Pulpit Message



♠ 서론

예수님의 눈물(요11:35, 눅19:41, 히5:7)

▶ 제가 어릴 때 였습니다. 충청도 시골 친척집에 놀러갔습니다. 시골에서는 동물들을 많이 키웠습니다. 특히 닭들이 많았습니다. 개들도 있었습니다. 닭 한 마리를 유심히 보니까 알을 품고 있었습니다. 계속해서 알들을 품고 한 20여일 정도 지나니까 노란색의 병아리가 삐약 거리면서 나왔습니다. 근처에 있던 개들이 새끼 병아리를 물려고 하니까 어미 닭이 새끼 병아리를 품으려고 하는 것을 봤습니다. 어미 닭 품속에만 들어가면 안전 했습니다. 어떤 한 병아리는 엄마 품속에 들어가지 않고 당당하게 돌아다니다가 개한테 물리는 것을 봤습니다. 아무리 어미 닭의 날개 안이 안전하다 할 지라도 날개 품속에 들어가지 않으면 위험해 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런 어미 닭이 새끼를 품으려고 했던 것처럼 지금 예수님이 같은 말씀을 하고 계십니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이렇게 이야기 하셨습니다. 물론 예루살렘은 도시의 이름입니다. 그러시면서 너희의 자녀, 예루살렘의 자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일컬었습니다. ‘몇 번씩이나 너희들을 품으려 했지만 너희가 원치 아니했도다.’ 그러시면서 너희 집이 황폐하고 버림받을 것이다라고 살벌한 말씀을 던지십니다. 예수님의 슬픔과 탄식이 담겨있는 표현입니다. 예수님이 왜 이렇게 말씀 하셨을까요? 도대체 이스라엘이 어떠한 위치에 있었기에 이런 말씀을 하셨을까요? 오늘 우리가 마태복음 23장 마지막 파트를 봤습니다. 그 앞부분을 보게 되면 예수님께서 심각한 말씀을 하십니다. 참 무서운 말들이 많습니다. ‘화가 있을지어다… 화 있을진저...’ 이렇게 말씀을 하십니다. 예수님이 직접 하신 말씀입니다. 사랑의 주님께서 왜 이런 어마어마한 말을 하셨을까요?

 

1. 예수님이 당시 진노하셨던 죄는 무엇인가?

▶ 첫번째입니다. 도대체 왜 예수님께서 이렇게 살벌한 심판적 저주의 말씀을 하셨을까요? 앞부분의 내용들을 한 3가지 내용으로 축약해 줄여서 보면 이렇습니다. 특히 바리새인들이나, 서기관들 같은 종교적 지도자들이 백성들을 제대로 인도하지 못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진리의 길, 복음의 길로 인도하지 못하고 그들을 엉뚱한 곳으로 인도했습니다. 그 백성들에게 구원의 길로 인도 하지 못하고 구원의 축복을 받지 못하게 만들었다고 예수님께서 화를 내셨습니다. ‘너희들이 천국의 문을 막고 너희도 못 들어가고 다른 사람도 못 들어가게 하였구나.’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소경이 된 자여…’ 눈이 먼 사람은 인도를 할 수가 없습니다. 그 부분을 아주 크게 질책하셨습니다. 하나님이 길을 주셨는데 그 길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했습니다. 길 입니다. 진리입니다. 이것을 주었는데 이것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였습니다.

▶ 또 한 부분은 ‘외식하는 자여’ 이런 표현을 쓰셨습니다. 속과 겉이 다른 사람들을 말합니다. 외식하면서 자기를 남보다 우월하게 여기는 그런 교만한 부분을 이야기 하신 것입니다. ‘너희들이 십일조는 드리면서 중요한 공의나 긍휼, 믿음은 져버렸구나.’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겉모습은 깨끗해 보이지만 속은 탐욕과 방탕함이 많구나.’ 예수님께서 회칠한 무덤, 독사의 새끼들이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아시다시피 이스라엘 사람들은 주검, 시체, 무덤을 부정하게 여깁니다. 밤길에도 무덤이나 사체를 주의하라고 하얀 횟가루를 뿌립니다. 여기에 무덤이 있으니까 피해가라는 뜻입니다. 회칠을 했다면 무덤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너희들이 바로 무덤과 같다’ 그렇게 말씀을 하고 계신 것입니다. ‘독사의 새끼들아, 마귀의 자식들아’ 그 뜻입니다. 겉과 속이 달라서 교만 하다는 것입니다. ‘길을 주었는데 길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였구나. 너희는 정말 교만 하구나.’ 그것을 지금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 그러면서 결정적으로 ‘내가 너희들에게 보낸 선지자들을 치고 죽였다.’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파송시키시어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시는 전도자들을 핍박하고 살해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진노를 하신 것입니다.

 

2. 그럼에도 예수님은 그들을 품으려고 하셨다.(마23:37)

▶이렇게 죄를 지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용서하려 하셨고 계속 품으려고 하셨는데 결국 그들이 거절을 한 것입니다. 여기에 예수님께서 우셨습니다. 누가복음 19장을 보시게 되면 통곡하시면서 울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로마에 의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완전히 멸망할 것을 아시고 우셨습니다. 성경에는 예수님께서 우셨다는 기록이 3번정도 나옵니다. 요한복음 11장에 보시면 마르다, 마리아의 오빠인 나사로가 죽은 것을 보시고 우셨습니다. 또, 히브리서 5장에 보시면 예수님께서 마지막 기도를 드릴 때 우셨다고 나와있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땀이 피가 되도록 깊은 기도를 하면서 우셨습니다. 또 한번은 바로 이 장면입니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암탉이 새끼들을 품으려고 했던 것처럼 내가 너희를 얼마나 많이 품으려고 했느냐?’ 예수님께서 사역 마지막 부분으로 예루살렘 성 안으로 들어갑니다. 예수님의 마지막 공생애 일 것입니다. 사랑하는 가족들과 이별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이별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따르던 많은 무리들과 이별해야 합니다. 이별하게 되니까 아무래도 마음이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마지막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서 어떻게 됩니까? 십자가에 못박혀 죽습니다. 십자가의 고통은 극한 고통입니다. 그것을 생각하면서도 많이 힘드셨을 것입니다. 가까운 사람과 이별하는 것뿐만 아니라 자신의 십자가의 중한 고통이 있었지만 이것 때문에 운 것을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 죄를 범하고 결국엔 멸망 당할 것을 아시고 우신 것입니다. 성전이 무너질 것을 아셨습니다. 지금 예수님 당시의 그 성전은 헤롯 성전입니다. 그 당시에는 완공이 다 안됐었습니다. 헤롯왕이 이스라엘 사람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 80년간 성전을 지었습니다. 헤롯왕은 정통 유대인이 아니고 에서(Esau)의 후손이기 때문에 이스라엘에게 잘 보여야만 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좋아하는 것은 성전이었기 때문에 많은 돈을 들여서 웅장하고 화려하게 지었습니다. 주 후 30년 예수님의 마지막 때도 짓고 있었습니다. 나중에 63년경에 성이 완공이 됬습니다. 결국 70년에 로마장군 디도에 의해서 완전히 무너졌습니다. ‘너희 자녀들이 땅에 치게 될 것이다. 성전 성벽이 돌 위에 돌 하나 남겨지지 않을 것이다.’ 당시 예루살렘에는 10만명의 인구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로마장군 디도에 의해서 100만명이 살해됐다고 합니다. 마침 명절 때라 수많은 사람들이 순례 예배, 제사를 드리러 왔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예루살렘 성전 성벽 틈틈이 금괴가 숨겨져 있다는 소문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많은 사람들이 전쟁을 치루면서 금을 찾아가려고 완전히 성전 성벽을 해체시킨 것입니다. 예수님의 예언대로 그들의 후대, 그들의 당대, 그들의 성전은 완전히 멸망 당했습니다. 미래의 일어날 이 일을 아시고 통곡하며 우셨습니다. 그렇게 품으려고 했는데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이런 일들이 벌어질 것이다라는 그런 심판 적인 메시지를 던지고 본인은 우셨습니다.

 

3. 하나님의 아들들인 우리가 이 시대에 품어야 할 언약은 무엇인가?

▶ 메시지는 여기서 끝나면 안되겠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무서우니까 똑바로 살아야겠구나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은혜의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가 이 말씀을 받으면서 어떻게 적용해야 할 것인가, 어떤 언약을 붙잡아야 할 것인가 입니다. 예수님께서 격노 하셨던 이스라엘 백성들과는 정 반대로 하시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오늘의 본론입니다. 그들이 무슨 짓을 했습니까? 하나님이 주신 길을 본인들도 못 누리고 남들에게도 전하지 못했습니다. 외식 할 만큼 교만 했습니다. 우리는 반대로 하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내신 선지자를 치고 돌로 때려서 죽였습니다. 우리는 그 반대로 하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고 알려주신 정확한 인생길을 우리가 찾아서 남에게 전달해주면 됩니다. 인생의 의미를 살리는 참된 진리의 길이 무엇입니까? 길은 어디 있습니까? 예수님이 스스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길이고 생명일 뿐만 아니고 진리이신 예수님을 바로 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인생의 의미를 예수 안에 두셔야 그때 하나님 앞에서 카운트가 시작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직접 선언하실 뿐만 아니고 사도 바울을 통해 확인하셨습니다. 에베소서 4장에 있는 말씀입니다. ‘진리가 예수 안에 있는 것 같이’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를 살리고 우리가 응답 받고 우리가 하나님께 쓰임 받는 모든 키가 예수님 안에 있습니다. 진실로 내가 체험하고 누리게 되면 전달할 수 있게 됩니다. 바리새인들은 정반대로 했습니다. 본인들이 그것을 못 누리고 그 길을 남에게도 전달하지 못했습니다. 저와 여러분들은 찾고 누릴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예수님께서 진리이시고 예수님께서만 우리를 살리실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하자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생각과 마음에 예수님이 주인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들이 많은 일들을 하면서 선택하기도 하고 결정하기도 합니다. 그 기준의 주인이 그리스도 예수님이길 바랍니다. 우리가 화를 낼 수도 있고 울 수도 있습니다. 화를 내는 이유, 울게 되는 동기가 예수님일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오직 예수님 안에서 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면 하나님의 진노 대신에 하나님의 긍휼하심이 임합니다. 불쌍히 여기면 다 끝납니다. 아주 못된 짓을 하더라도 하나님의 불쌍한 여김을 받게 되면 다 끝나게 됩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가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입은 줄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오직 그리스도 복음 만이 나를 살리고 남을 살릴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 바리새인들이 외식 할 만큼 다른 사람들보다 우리가 우월하다고 하는 것을 자꾸 보이려고 했었습니다. 여러분들 중에 위선자가 있다는 말이 아니고 반대로 하시면 됩니다. 정말로 겸손한 사람은 하나님 앞에 무릎 꿇게끔 되어있습니다. 정말로 기도 하게끔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교만하지 말고 겸손한 마음, 겸비한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께 무릎 꿇고 기도하자는 말입니다. 사도행전1장 14절에 예수님을 따르는 무리와 제자들이 예수님의 약속을 붙잡고 기도하러 갔습니다. 오로지 기도하기에 힘썼습니다. 그것을 참고하셔야 합니다. 역대하 7:14절에 말씀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스스로 겸비하여 하나님 앞에 기도하게 되면 이 땅을 고치신다고 하셨습니다. 여러분들이 하나님 앞에 겸비해서 주님의 얼굴을 구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다니엘서 10장에는 다니엘이 하나님 앞에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이 답을 하십니다. ‘첫날부터 내가 들었다. 네가 내게 한 말로 인하여 내가 왔다.’ 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 겸손히 기도해서 응답 받기를 바랍니다. 어깨 쳐지고 눈에 힘 빼라는 말이 아닙니다. 눈은 정확히 보셔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말씀 앞에 순복하게 되면 반드시 응답하십니다.

▶ 그들이 한 짓이 바로 선지자를 죽인 것입니다. 반대로 하시면 됩니다. 이 땅에 복음을 든 전도자, 말씀을 선언한 증인들을 위해 여러분들이 기도해주시고 여러분들이 보호해주시고 그분들의 메시지를 따라가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소원인 세계복음화를 위해서 선지자의 심령을 가지고 여러분이 전도자의 길을 가시면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성령이 임하면 권능을 받으면 땅끝까지 증인이 될 것이다.’ 이런 자들이 모여서 교회가 되었습니다. 사도바울은 그 교회 안에 복음 전하는 자, 선지자가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에베소서 4장 11절에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전하는 자로,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으니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는 더욱더 강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같은 제사장들이요…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전도자들을 보게 되면 여러분들이 귀히 여길 뿐만 아니라, 선지자의 심정을 가지고 복음을 전하시면 됩니다. 돌 던짐을 당하고 때림을 당하며 심지어 죽음까지 당했던 선지자들, 그들을 통해서 이루지 못했던 그 부분을, 심령을 가지고 가슴을 품고 전하시면 됩니다. ‘이 사람이 복음을 받겠나 안 받겠나’ 눈치 보시지 마십시오. 여러분들, 복음을 전하다가 뺨도 한번 맞아보셔야 합니다. 예비된 영혼은 분명히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습니다. 영접 안 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래도 전해보셔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역사하십니다. 복음 전하는 자의 대열에 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본론입니다. 하나님이 진노하신 이스라엘 백성들과 정반대로 하시면 됩니다. 그러면 주님의 긍휼하심과 기뻐하심을 입게 됩니다. 주께서 약속하신 권능이 임하게 되어있고 문이 열리게끔 되어있습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그 감사의 기쁨이 나오게 됩니다. 반드시 체험하고 증인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 결론

시편17:8-9, 131:2, 민7:89

▶ 결론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면 이 일을 제대로 인도받고 응답 받을 수 있겠는가? 서론에서 말씀 드렸다시피 새끼병아리가 암탉의 날개 품 안에 들어가듯이 우리는 하나님 품 안에 들어가면 됩니다.  새끼병아리는 어미 닭이 날개가 있으니까 그 속으로 들어가지, 하나님께 날개가 있습니까? 라고 물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의 날개 아래’ 이런 표현을 많이 쓰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날개 안에 들어가게 되면 모든 것이 풀어집니다. 우리가 주님 품, 주님의 날개 안에 들어가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먼저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받습니다. 시편 17편 8-9절을 보면 말씀하고 있습니다. ‘나를 눈동자같이 지키시고 주의 날개 그늘 아래에 감추사 내 앞에서 나를 압제하는 악인들과 나의 목숨을 노리는 원수들에게서 벗어나게 하소서’ 우리가 주님의 날개, 은혜 속에 들어가게 되면 우리를 실패 시키고 멸망시키려 하는 흑암세력으로부터 보호받게 될 줄 믿습니다.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하심이 어찌 그리 보배로우신지요. 주의 날개 아래 피하리로다’ 하나님만이 우리를 지키시고 보호하실 줄로 믿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주의 은혜의 날개, 이 사실을 여러분이 배우고 깨달아야 합니다. 어릴 때는 집안에서 부모님께 배웁니다. 조금 크면 학교에서 많은 것을 배웁니다. 성장하고 나면 세상 사회에 나가서 이것저것 배웁니다. 그러나 저와 여러분들이 반드시 배워야 될 것이 있습니다. 피조물 인간이라는 존재는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단 1초도 못 삽니다. 하나님의 은혜만이 우리를 살리고 승리케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산을 향하여 눈을 들어 어디서 도움이 올것인지 물어 봅니다.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옵니까?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에게서 입니다. 그 하나님이 조금도 빈틈없이 지키고 보호하실 줄로 믿습니다. 졸지도 않고 주무시지도 않으시면서 보호하시는 것입니다. 낮의 해와 밤의 달로, 또 환난에서 우리를 지키시고 보호하실 줄로 믿습니다. 과거에도 그랬던 것처럼 지금도 보호하시고 미래의 영혼까지 지키시고 보호하실 줄로 믿습니다. 과감히 결단하고 주님의 은혜의 날개 안으로 들어가실 수 있길 바랍니다. 하나님이 지키시면 완전하지만 밖에 있게 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어미 닭이 보호하는 날개 속으로 들어가듯이 우리가 주님의 날개 속으로 들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 어느 여자분이 차를 타고 운전하다가 교통사고를 당했습니다. 어떻게 당했냐면, 길이 막혀서 차들이 서 있었습니다. 백미러로 보니 뒤에서 큰 트럭이 계속 달려오고 있는 것입니다. 차들이 서 있다는 것을 못 본 것입니다. 여성 운전자는 사고를 직감하고 운전대를 꽉 쥐고 있었습니다. ‘큰일났구나’ 그 때 주님께 기도한 것입니다. 운전대 손을 내리면서 ‘주님, 모든 것을 주님께 맡깁니다.’ 그러자마자 쾅 큰 소리와 함께 정신을 잃었습니다. 한참 후에 정신을 차리고 나니 병원이었습니다. 일어나 보니까 몸에 다친 곳이 없었습니다. 알고 보니까 자기 차는 휴지조각처럼 완전히 찌그러졌는데 여성운전자는 몸 하나 다친 곳이 없었습니다. 경찰이 찾아와서 얘기를 해주었습니다. ‘만약 당신이 운전대를 꽉 잡고 있었다면 사망했을 것이지만 팔을 내려놨기 때문에 당신이 산 것입니다.’ 결국 여성분은 하나님께 모든 것을 의탁하고 내려놓았습니다. 하나님이 살리신 것입니다. 지금은 여자분께서 선교사로 사역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은혜 안에 있게 되면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받게 될 줄을 믿습니다.

▶ 또 한가지 볼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주의 날개 안으로 들어가게 되면 평안을 누리게끔 되어 있습니다. 어미 닭 품 속으로 들어간 병아리는 평안하게 있을 수 있습니다. 목자의 품에 안긴 양도 평안하게 누릴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품에 안긴 사람은 평안함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시편 131편에 말씀하고 있습니다. ‘실로 내가 내 영혼으로 고요하고 평온하게 하기를 젖 뗀 아이가 그의 어머니 품에 있음 같게 하였나니 내 영혼이 젖 뗀 아이와 같도다’ 평안함을 얻었다는 이야기는 걱정, 염려가 없다는 이야기겠죠. 아이에게 있어서는 엄마의 품이 가장 편안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모두 내게로 오라’ 하나님의 쉼이, 하나님의 안식이 회복되기를 바랍니다. 우리 학생분들 학교에서 공부하느라 고생이 많습니다. 경제적으로도, 부모님을 생각해서라도 여러가지 고민들이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들 계속 염려를 안고 가게 되면 나중에 체력적으로 지치게 됩니다. 단순히 위로의 말이 아니고, 내려놓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이 캠퍼스에 보냈다, 학업에 기회를 주셨다.’ 그 말은 나에게 10%, 1%, 유일성의 응답을 예비하셨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런 확신을 가지고 공부를 하셔야 합니다. ‘all A를 받지 못해서 장학금을 못 받게 되면 우리 엄마아빠가 고생을 많이 하고 부담되겠지’ 이런 생각을 버리셔야 합니다. 염려 안에서 공부하게 되면 나중에 자신도 지치고 초기의 성과도 나오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지금 공부하는 이 시간에 주의 의로운 날개, 거룩한 날개 안에 품어 주옵소서’ 이렇게 기도하면 20여일 뒤에 계란이 부화하는 것처럼 반드시 하나님의 그 무엇이 열매로 나옵니다.

▶ 설교를 준비하다 보니까 William Cushing 이라는 분이 있더라구요. 우리가 많이 부르는 찬송들을 만든 분이었습니다. ‘주 날개 밑 내가 편안히 쉬네 밤 깊고 비바람 불어 쳐도 아버지께서 날 지켜 주시니 거기서 편안히 쉬리로다’ 라는 찬송입니다. 내용을 보니까 본인의 간증이 있었습니다. 그 분의 성대, 목에 문제가 왔습니다. 말은 하고 싶은데 목소리가 안 나오는 것입니다. 목사님께서 목소리가 안 나오니까 강단에 못 서시는 것입니다. 목회자에게 있어 설교를 못 한다는 것은 큰 절망이 아닐 수 없습니다. 기도하다가 이 분이 깨달았습니다. ‘목소리를 주시면 설교를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목소리가 안 나오면 하나님께 찬송하는 글을 지어 하나님을 찬송하자’ 모든 염려를 내려놓고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있는 방법, 찬송의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300개 넘는 곡이 나오게 된 것이죠. 그 중에 하나가 바로 417(구478)장입니다. 주 날개 밑 평안하다 주 날개 및 내 쉬는 영혼 영원히 거기서 살리. 이 찬송처럼 주님의 날개 안에만 주님의 평안이 있을 줄로 믿습니다. 다른 곳에서는 평안이 없습니다. 주님의 날개 안에 거할 수 있길 바랍니다. 놀라운 하나님의 평강을 체험하게 됩니다. 오늘 1부 제자학교 때 메시지를 들으셨죠? 강사 목사님께서 계속 지속해서 말씀의 흐름 속에 있다 그러셨습니다. 어느 날 놀라운 능력을 체험하게 된 것입니다. 단어로만 평안, 그것이 내 것이 되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주님의 날개가 임하게 된 것입니다. 모든 어둠이 떠나간 것인 줄로 믿습니다. 되는 것입니다. 내 안에 있는 것입니다. 누구도 흉내를 낼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이 참 평안을 주실 줄로 믿습니다. 보호와 평안을 주십니다. 주님의 날개 하면 아무래도 추상적입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주님의 날개 안으로 들어가는 것입니까? 이것을 보고 마치겠습니다.

▶ 민수기 7장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모세가 회막에 들어가서 여호와께 말하려 할 때에 증거궤 위 속죄소 위의 두 그룹 사이에서 자기에게 말씀하시는 목소리를 들었으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말씀하심이었더라’ 언약궤 아시죠? 그것을 증거궤라고도 이야기합니다. 모세가 회막에 들어가서 무슨 체험을 했냐면, 언약궤의 증거가 있는데 좌우 네 편에 그룹이라고 하는 천사 비슷한 영적 피조물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이것이 날개로 이 증거궤를 덮는 것입니다. 이 날개 사이로 주의 음성이 들리는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 날개라고 하면 주님의 날개라고 생각 할 수 있겠죠. 주님의 날개가 어디 위에 있습니까? 언약궤, 증거궤 위에 있는 것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주님의 날개, 하나님이 내게 주신 언약입니다. 그 속에 여러분이 언약을 진실로 붙잡게 되면 여러분을 보호할 뿐만 아니라 평안으로 반드시 인도하십니다.

▶ 여러분 새 학기가 시작되었는데 언약을 붙잡고 공부하셔야 합니다. 여러분 가정이 있죠, 남편이 돈 많이 벌어서 행복한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자녀 있잖아요, 언약을 심어줘야 합니다. ‘우리의 가정의 시작은 이런 언약으로 출발했다’ 라고 하는 것이 있어야 합니다. 학기가 시작됐습니다. ‘이 언약 때문에 공부한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 속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을 공부 못하게 하고 가난케 만들고 불화케 되는 모든 흑암세력으로부터 보호하게 되는 것입니다. 안 될 것 같은데 됩니다. 그것이 보호받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렇게 되면 딱 마음이 옵니다. 하나님이 지켜 주시니까 편안한 마음이 옵니다. 하나님이 되게 하십니다. 그러면 여유가 생기게 됩니다. 언약 속에 주님의 은혜가 있을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출애굽기 25장에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정금으로 속죄소를 만들어라’ 출애굽기 25장 20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룹들은 그 날개를 높이 펴서 그 날개로 속죄소를 덮으며’ 속죄소, 영어로는 seat of mercy, 은혜의 자리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날개, 하나님의 은혜,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가 여기 있는 것입니다. 어디에 하나님의 은혜가 머무느냐, 어디에 주의 날개가 덮고 있습니까? 언약궤입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말씀을 주시는 것은 목사님이 설교를 많이 준비하셨네 라고 평가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게 들려주시는 음성이 무엇인지 이걸 잡아야 합니다. 그걸 붙잡고 여러분이 현장을 가셔야 합니다. 오늘 2부 예배를 통해서 내게 주시는 음성이 무엇인지를 잡고 가셔야 합니다. 미국에 하나님이 보내신 이유와 말씀을 찾아서 가셔야 합니다. 여러분 직장 나갈 때도 이 언약을 찾아야 합니다. 공부하는 렘넌트들도 이 언약을 찾아야 합니다. 방송부의 렘넌트들도 이 언약을 붙잡아야 합니다. 언약 없이 하게 되면 밑에 오는 후배들에게 넘겨버리게 됩니다. 여기 계신 커플들도 언약을 붙잡길 바랍니다. 성경 66권이 있습니다. 1189장이 들어있습니다. 다 못 읽고 다 못 외웁니다. 강단을 통해서 전달해주시는 메시지 속에 내게 주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 가정이 왜 존재하며 왜 살아가야 할 것인가 언약을 찾아내셔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은혜가 임합니다. 남들은 안되는데 우리 가정은 자꾸 됩니다. 말씀을 찾으시면 됩니다. 저는 언약을 하나 붙잡은 것이 있습니다. 신약 첫 책에 마지막 장 마지막 말씀입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것을 갖고 계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하나님이 지금까지 축복과 응답을 해주셨습니다. 여기에 저를 잘 아는 가족 분들이 계십니다. 제가 능력 없는 것, 남자로서 숫기가 없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사회성이 없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축복하셨습니다. 저는 더 크게 축복할 것을 알고 있습니다. 언약 속에 하나님의 은혜가 있고 주의 날개로 품게 됩니다. 여러분 평생에 하나님의 평안과 보호하심이 있기를 축원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모든 죄를 품어 버리신 것입니다. 이것이 은혜이고 축복입니다. 이 안에서 모든 것이 다 나옵니다. 구원의 축복이 여기서 나온 것입니다. 기도 응답의 축복, 성령인도, 흑암권세를 깨는 힘이 여기서 나온 것입니다. 평생 배경을 누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앞으로 만남의 축복이 계속 일어날 것입니다. 동역자들이 일어나고 시스템을 세울 만큼 하나님이 더해 주실 것입니다. 이 어마어마한 축복을 놓친 이스라엘 백성을 향해서 저주와 안타까움을 표현하신 것입니다. 돌이킬 수 없는 예루살렘의 멸망이 임할 것이니까. 안타까운 것이죠. 오늘 이 주님의 가슴에 있는 음성을 들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이 시간 이후에 주의 은혜의 날개 안에 거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그 키가 바로 언약입니다. 오늘 기관별 기도회 예비사역자들 모였습니다. 여러분들 구체화시켜서 언약기도문으로 만드셔야 합니다.

▶ 기도하겠습니다. 존귀하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을 드립니다. 주님이 우리를 품으시려고 하는 은혜를 감사합니다. 우리의 어떠 함과 관계없이 그리스도의 비밀을 은혜로 허락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스라엘의 전처를 밟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은혜 속에 거하게 하옵소서. 때를 따라 돕는 그 은혜를 향하여, 주의 보좌를 향하여 달려가게 하옵소서. 주의 능력으로 보호하여 주시옵시고 주님의 긍휼하심으로 인한 평안을 누리게 하옵소서. 세계를 정복하고 주님의 재림을 대비하는 그 날까지 하나님이 역사하여 주옵소서. 언약을 붙잡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 드렸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