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찾으신다

September 9th, 2018

ICA Sunday Pulpit Message



♠ 서론

▶ 15주년 기념 예배에 참여하신 모든 분들을 환영한다. 교회가 세워지고 15년 동안 하나님께서 인도해주시고 응답해 주셨다.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교회를 처음 시작했을 때, 미국 교회당을 빌려서 시작했다. 그분들이 예배를 다 마치고 돌아가신 후에 우리가 오후 예배를 드렸다. 예배를 마치고 나서 같이 음식을 나누어 먹는 시간도 가질 수 없었다. 한국음식은 특별히 냄새가 많이 나서 조리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만큼 열악한 조건과 환경에서 시작 되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고 또 여러분들이 끝까지 믿음을 가지고 헌신을 해주셨기 때문에 여기까지 왔는줄로 믿는다. 15주년이다. 교회의 나이가 15살이 되었다는 뜻이다. 보통 사람도 10대 중반이 되면 왕성한 성장을 하는 나이이다. 우리 교회가 이제 앞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통해서 왕성한 성장을 보이게 될 것이다.

▶ 이쯤에 하나님의 말씀을 먼저 찾아야겠다. 하나님이 우리 교회에게 주신 언약이 무엇인가? 15주년을 맞이해서 하나님께 기도했다. 몇 번 기도했는데 계속 똑같은 마음의 확신을 주셨다. 심지가 견고한 자이다. 영어에 보면 Rock solid라는 말이 있다. 단단해서 움직이지 않고 그 자리에 지키고 있는 바위 같음을 말한다. 흔들림이 없고 요동함이 없다는 뜻이다. 변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오늘 본문을 보시면 이렇게 말씀하신다. 구원의 노래를 부르라고 나와있다. 즉, 하나님이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구원의 축복을 날마다 노래할 만큼 구원의 복을 누리라는 뜻이다. 그렇게 구원의 축복을 노래하고 누리는 그것이 성읍이 된다고 말하고 있다. 성읍을 짓는 이유가 무엇인가? 백성들을 보호하는 것이다. 전쟁에서 지켜주고 막아주고 승리하는 것이다. 우리가 아주 쉽게 생각하고 단순하게 여기는 이 구원의 축복을 매일 노래하듯 누리게 되면 승리한다는 뜻이다. 그렇게 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믿음을 지키는 의로운 나라, 즉 하나님의 복음을 믿고 의롭게 된 백성들이 올 수 있도록 문을 열게 될 것이다 라고 되어있다. 그릇을 준비해야 한다. 여러 나라의 백성들이 우리 교회에 들어올 수 있도록, 방문하고, 참석하고, 예배드릴 수 있도록 우리가 준비해야 한다는 뜻이다. 어떤 그릇을 준비하면 되겠는가? 심지가 견고한 그릇을 준비하면 된다. 영원하신 하나님께 나의 마음을 두는 자 이다. 하나님을 항상, 늘 의지하고 의뢰하는 자를 말한다. 이때 하나님의 평강이 내 마음과 생각 속에 들어오는 것이다. 이것이 오늘 메세지의 요약, 줄거리이다. 구원의 축복을 처음만 누리는 것이 아니고 날마다 누리는 것이다. 그러면 그것이 성읍처럼 우리를 보호하고 승리케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 증거로 많은 사람들을 보내줄 것이다. 하나님의 평강이 임할 것이고 하나님의 승리를 볼 것이다. 흔들리지 말고 변함없이 그 자리에 있는 것을 말한다. 15주년 쯤에서 여러분들이 이 부분을 신앙생활 하면서 언약으로 붙잡으셔야 한다.

▶ 여러분들의 집에 늘 보이던 것이 있을 것이다. 가위라던지 또는 라이터, 툴, 이런 것들이 오며 가며 눈에 뜨인다. 그런데 정작 쓰려고 하면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러면 답답하다. 물건은 사용하려고 찾을 때 바로 그곳에 있을 때 좋다. 있는 자리에 그대로 있을 때 보기에 아름답고 금방 사용할 수 있기에 유용하다. 사람들도 때가 되면 관광하러 간다. 산, 강, 바다에 간다. 유명한 유적지를 찾아가기도 한다. 왜 그곳에 가는가? 물론 쉬려고 여행을 가는 것이지만 특별히 그곳을 가는 이유는 그곳의 존재가 거기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늘 변함없이 그곳에 있는 그 존재를 찾아가기 마련이다.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여러분은 어떠한가? 많은 사람들과 만나고 대화하고 시간을 보낸다. 예를 들어서 성도님이 저를 찾아오려 하는데 제가 기복이 너무 심하고 계획을 계속 바꾼다면 그 성도님의 기분은 편하지 않을 것이다. 누구나 다 그렇다. 반대로 마음도 여유가 있을 뿐만 아니고 어떤 일을 당해도 침착하고 진중하며 사사로운 이야기를 해도 다른 사람들에게 쉽게 말하지 않는 심지가 곧은 사람이라면 찾아가게 된다. 사람도 심지가 견고한 사람을 찾아간다. 하나님도 똑같다. 하나님이 축복하시려고 사람을 사용하고 싶어하실 때가 있다. 그때 그곳에 있게 되면 하나님이 찾고 함께하셔서 축복하신다. 그런데 늘 영혼의 상태가 왔다갔다 하고 생각과 마음의 위치가 늘 변한다면 하나님이 사용하시기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오래 걸린다. 쉽게 축복을 주기가 용이하지 않다. 우리도 그렇지만 하나님 역시 기복이 심한 자를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축복하시기가 쉽지 않다는 말이다. 즉, 영적인 상태나 마음의 중심의 위치가 흔들리지 않고 견고한 자를 하나님은 찾으시고 축복하시고 사용하실줄로 믿는다. 여러분들에게 질문 드린다. 여러분들은 여러분 자신이 심지가 견고한 자가 되기를 원하시는가? 아니면 기복이 심한 자가 되기를 원하시는가? 또 한가지 더 묻겠다. 여러분의 현재 상태를 한번 확인해보시라. 나는 솔직하게 심지가 견고한지 아니면 기복이 심한 자인지 돌아보시기 바란다. 그리고 이 곳에는 자녀들을 키우는 부모님들이 계신다. 여러분들은 여러분의 자녀가 기복이 심해서 대인관계가 힘든 것을 원하는지 아니면 심지가 견고해서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하나님께 축복 받기를 원하는지 양자 중 어느 것을 택하겠는가? 우리는 모두 심지가 견고한 후대들을 키우길 원한다.

▶ 그러면 한걸음 더 들어가겠다. 어떻게 하면 심지가 견고 해지겠는가? 보통 사람들은 내가 무엇을 가지고 있거나 무엇을 이루게 되면 마음이 평안하고 심지가 견고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돈을 많이 가지고 있거나 명예, 권세를 가지고 있게 되면 편리하고 유익한 것은 많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시다시피 돈, 물건, 명예, 권세는 있다가 곧 없어진다. 그래서 사물이나 사람에게 의지하기보다는 내가 어디에 있느냐가 중요하다. 사물, 물건, 재물을 가지고 있는 것보다 내가 어디에 속해 있는지가 중요하다. 즉, possession 보다는 position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내가 많이 갖고 있기 보다는 내가 어느 위치에 있느냐가 마음을 평안하게 하는데 중요하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세상의 것들은 유익하고 편리하지만 영원히 가지는 않는다. 영원하지 않고 완전하지 않은 것에 마음을 두게 되면 금방 허무 해지고 상처를 받게 된다. 우리의 마음을 사람에게 두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기대한 만큼 실망하게 된다. 믿었던 마음만큼 상처를 받거나 환멸을 느끼게 된다. 실망시킨 그 사람보다 내가 사람을 의지하고 기대한 것이 사실상 실수요 잘못이다. 사람에 대한 상처를 가지고 있는 분이 계신다면 빨리 치유되시고 회복되기를 축복한다. 사건도 마찬가지이다. 우리에게는 기쁜 일이나 슬픈 일들이 누구에게나 지나간다. 결국에는 다 지나가 버리는 것이다. 오늘 서론에서 기억하실 것이 하나 있다. 내가 무엇을 소유하느냐 가 아니고 내가 어느 위치에, 대열에 있느냐 가 중요하다. 내가 과연 어디에 있는가? 어떤 대열 속에 있는가? 어떤 흐름을 타고 있는가?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 속에 있는지 없는지 알고 계신다. 우리도 믿고 있다. 하나님을 바라봐야 하고 하나님이 주시는 응답 속에 있어야 되는 것을 알고 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더 구체적으로 말하고 있는 것이다. 여호와의 구원 속에 여호와께서 베푸시는 구원의 축복 속에 거하라. 내 마음과 생각의 중심을 하나님이 주시는 구원의 축복 속에 두시게 되면 감사하고 감격스럽고 감동을 느끼게 된다.

▶ 구원의 축복이다. 하나님이 나를 구원해 주셨다는 그 사실 속에서 깊이 누리시기 바란다. 그러면 구원의 축복이 일어나는 대열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영혼이 구원을 받는 그 대열 속에 내가 있게 되는 것이다. 또, 이것을 계속 맛보다 보면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는 현장을 위해서 나도 모르게 기도하게 된다.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기를 준비하기도 한다. 구원의 역사를 위해서 헌신하기까지 한다. 저와 여러분들이 이 흐름 속에 있게 될때 하나님이 평강을 주신다. 여러분들이 사시면서 먹고 살기에 급급했지 다른 사람이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그 사건에 관심이 많지 않은 줄 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 자리에 오셔서 저와 여러분들에게 말씀하고 계신다. 정말로 구원 받은 것이 맞다고 한다면 하나님이 주신 구원의 축복을 기뻐하시고 노래할 만큼 누리시길 바란다. 그것을 누리고 있다는 증거가 반드시 따라온다. 내가 구원을 받은 것이 너무나 기쁘기 때문에 구원의 역사를 위해서 기도하고 준비, 헌신한다. 내 삶에 중심이 그 흐름과 대열 속에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오늘 이사야서 26장 말씀처럼 세상에서 얻은 것 말고 하나님이 주시는 평강을 얻게 된다. 15주년을 맞이한 여러분들 이 언약을 붙잡으시기 바란다. 하나님이 주시는 평강. 그런 자를 하나님이 찾고 사용하시며 축복하시기를 원하신다. 그것을 가리켜서 심지가 견고하다고 말한다. 심지가 견고 해지게 되면 겸손하면서도 담대하게 된다. 이것이 무슨 뜻인가 하면 겸손하면서도 하나님 앞에서 담대 해지면 자기가 원했던 뜻, 바라던 뜻이 이루어지지 않아도 흔들리지 않게 된다. 하나님이 주시는 평강이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움직여 가시는 시간표를 믿기 때문이다. 그런데 반대의 경우는 어떤가? 하나님이 주시는 평강이 없는 자, 심지가 견고하지 못한 자는 자기의 뜻이 이루어지지 않게 되면 분노부터 하고 낙심하게 된다. 눈물을 흘리면서 슬퍼한다. 왜 저 사람들은 나를 믿어주지 않을까 라며 책임을 전가한다. 자기 점검할 수 있는 기회 삼으시기를 바란다. 내가 하나님이 주시는 구원의 축복을 누리고 있는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흐름과 대열 속에 있는가? 구원의 축복을 누리는 곳에 거하시기를 바란다.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는 대열 속에 있기를 바란다. 구원의 역사를 위하여 준비하고 헌신하는 흐름 속에 여러분의 인생이 담기기를 축복한다. 그것이 바로 구원의 노래를 부르는 것이라는 뜻이다. 차분히 생각해보시기 바란다. 여러분들은 구원의 노래를 부르지 않을 수 있는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구원의 축복이 얼마나 위대한 지를 깨닫게 될 것이다. 혹시 무슬림이 있는가? 무슬림분들은 알라는 위대하다고 말한다. 우리는 어떠한가? 하나님이 당연히 위대하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베푸신 구원의 축복이 위대한 줄 믿는다.

 

1. 하나님은 늘 변함없이 우리의 구원과 축복을 준비해 놓으시고 기다리고 계신다.(사26:1)

▶ 첫번째이다.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주신 축복이 어떻길래 이렇게 위대한 것인가? 로마서 16장에 보시면 이 구원의 복음이 영세 전에 준비되었다고 나와있다. 에베소서 1장에는 창세전에 예비 되었다고 나온다. 잘 생각해보시라. 성도님께서 하나님의 구원을 받게 된 것이 언제인가? 성도님이 태어나기 전에 하나님께서 이미 작정하셨다. 지구가 만들기 전에 이미 준비되었다. 천사가 만들어지기 전에 마귀가 만들어지기 전에 하나님이 준비하셨다. 제 말이 아니고 성경말씀이다. 영세 전, 창세 전, 세상 만물이 창조되기 전에, 피조물이 생기기 전에 우리의 구원을 하나님께서 준비했다는 것이다. 준비된 복음이다. 얼마나 놀라운가? 얼마나 위대한가? 또 한가지 생각할 것이 있다. 준비된 복음을 하나님께서 완성하셨다. 이 준비된 구원의 축복을 완성하시기 위하여 하나님이 독생자 아들을 희생하셨다. 우리의 죄와 저주, 재앙과 심판을 대신 감당하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것이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는 구원의 축복을 완성하기 위하여 막대한 투자를 한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이 피를 흘린 것이다. 하나님의 목숨 값이 지불 된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이 십자가 상에서 선언하셨다. 다 이루었도다. 이 십자가의 복음은 세상을 향해서 끝낸 것이다. 갈라디아서 6장에 분명하게 기록해 놓았다. “...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그래서 예수, 복음, 구원 안에 있는 우리는 세상에 대하여 어떤 것도 두려워 할 필요가 없다. 그 어떤 것도 염려할 필요 없다. 사실 상 끝난 것이다. 더 한가지 들어가 보겠다. 완성된 복음, 구원의 축복을 우리가 실제로 누릴 수 있도록 성령께서 이미 와 계신다. 요한복음 16장에 보시게 되면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 사도행전 1장을 보시면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라고 축복하신다. 즉, 하나님은 변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흔들리지 않는다. 하나님은 그 자리에서 이미 구원의 복음을 준비하시고 완성하실 뿐만 아니라 누릴 수 있도록 모든 것을 준비하고 기다리고 계신다. 이 얼마나 엄청나고 대단하며 위대한 하나님의 사랑인가. 이것이 구원의 축복이다. 여러분 같으면 세상 일을 이렇게 준비할 수 있겠는가? 한 사람을 위해서 이토록 준비할 수 있겠는가? 일요일 날에 성경책에 있는 먼지를 털어서 오시는 분도 계시다고 한다. 이 구원의 축복을 노래 할 만큼 누리고 있으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평강을 주신다고 했다. 심지가 견고케 한다고 했다. 어떤 일이 벌어져도 요동하거나 흔들리지 않는다. 변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2. 하나님은 늘 변함없이 심지가 견고한 자를 특별히 기다리시고 찾으신다.

▶ 두번째, 이러한 자들이 있는가? 성경 인물들 중에 찾아볼 수 있다. 심지가 견고한 자들을 하나님이 찾으시고 사용하시며 축복했다고 했는데 그 중에 몇 분을 오늘 보도록 하겠다. 광야 시대 때에는 갈렙이 있다. 민수기 14장에 보시면 광야에서 가나안 땅을 정탐할 때 믿음의 보고를 한 이가 갈렙이다. 그때 갈렙의 나이가 40대 였다고 한다. 그리고 나서 여호수아서 14장에 보면 아낙산지에 있는 대적들과 대치하고 있었다. 모두가 숨 죽이고 자기 몸 사리고 있을 때 갈렙이 도전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약속하지 않으셨느냐? 하나님이 우리에게 언약을 주시지 않았느냐? 이 땅도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이다. 필경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반드시 승리할 것이다. 그때 나이가 85세였다. 하나님의 언약을 45년 동안 놓치지 않고 붙잡고 있었다는 말이다. 여기에 한가지 생각할 것이 있다. 민수기 14장과 여호수아 14장의 차이는 무엇인가? 나이도 차이가 나겠지만 위치가 다르다. 민수기 14장은 여호수아와 동역자로서 위치해 있었다. 여호수아 14장에는 그 친구 여호수아가 왕이 되었다. 모세 뒤를 이어서 대권을 친구 여호수아가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그를 왕으로 섬기면서 자신의 신앙고백을 하고 자신을 헌신하고 있는 것이다. 어차피 동네 친구인데 라며 삐치거나 믿음이 흔들리지 않았다는 말이다. 결국에는 가장 비옥한 헤브론 지경을 기업으로 받게 되었다. 이렇게 자신의 생각과 마음을 하나님이 주신 언약 가운데 둔 자는 큰 기업을 얻을 뿐만 아니고 더 큰 축복을 받았다. 사사기 1장에 보시게 되면 갈렙의 사위가 옷니엘이라고 하는 자이다. 성경에는 14명 정도의 사사가 있는데 그 초대 사사가 바로 옷니엘인 것이다. 자신의 사위가 온 나라의 모든 것을 재판하는 사사, 판사였다. 여러분 가족 중에 한 지역의 판사가 있다고 한다면 어깨에 힘이 들어갈 것이다. 자신의 아들이요 사위인 옷니엘이 나라를 다스리는 통치자가 되었다. 갈렙이 이런 축복을 받은 것이다.

▶ 또 한사람 바벨론 시대의 다니엘을 보겠다. 아시다시피 다니엘은 왕족의 후손이다. 나라를 잃어버린 슬픔 가운데 있었지만 그 슬픔 보다도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구원의 축복을 더 승하게 누리고 있었다. 우상의 진미를 정중히, 겸손히 거절할 수 있을 만큼 심지가 견고했다. 왕의 꿈을 해석하지 못한 관계로 모든 사람이 몰살될 위기에 있었다. 하지만 다니엘은 포로로 잡혀와서 여기서 개죽음을 맞이하는구나 어디로 도피해야 하고 도망가야 하는가 생각하지 않았다. 늘 하나님께 기도한 그대로 하나님께 기도해서 그 비밀을 찾아내고 왕에게 겸손히 보고했다. 다니엘서 2장 느부갓네살 왕 앞에서 그랬고 다니엘서 5장을 보면 벨사살 왕 때도 벽에 손이 나타나서 쓴 글을 해석해주었다. 다니엘서 6장에는 다리오 왕 때 사자 굴의 위기에서 역전을 시켰다. "전에 행하던 대로..." 심지가 견고하여 흔들리지 않았다는 뜻이다. 자기가 구원 받을 뿐만 아니라 상황을 역전시키는 승리를 거둔 것이다.

▶ 또 한사람 보겠다. 가이오라는 사람이다. 초대교회 때의 인물이다. 고린도전서 1장에 보면 바울이 친히 세례를 줄 만큼 초대교회를 위하여 극진히 섬겼던 사람이다. 이 가이오는 로마서 16장에 보게 되면 바울의 로마복음화의 핵심일꾼으로 성장해 있다. 그리고 유명한 성경구절 요한삼서에 보시면 사도요한으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다.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 즉, 가이오의 영혼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 있었다는 이야기다. 심지가 견고 해지게 되면 하나님께 쓰임을 받고 축복을 누리게 된다. 오늘 세 인물을 여러분께 소개해드렸다. 이들의 공통점이 하나 있다. 갈렙은 모세시대 때 충직한 종이었다. 또한 다음세대 여호수아 때도 믿음의 일꾼으로 인정을 받았다. 그리고 또 다음세대 옷니엘의 시대 때도 하나님의 축복을 받게 된 셈이다. 3대이다. 다니엘은 어떠한가? 느부갓네살 왕, 벨사살 왕, 다리오 왕, 세명의 왕 속에서 승리했다. 3대이다. 가이오도 마찬가지이다. 초대교회, 사도요한, 사도바울. 무슨 말인가? 반짝 쓰임 받고 축복받고 끝나는 것이 아니고 끝까지 갔다는 것이다. 한 시대 뿐만 아니라 최소 3대 동안 하나님의 쓰임과 축복이 지속했다는 것을 말한다. 놀라운 사실이다. 여러분과 제가 이런 축복 속에 있기를 축원한다. 이것이 얼마나 멋지고 위대한 인생인가. 여러분의 후대가 이런 축복 속에 있기를 바란다.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하고 평강하도록 지키시리니...” 지속된다는 것이다.

 

3. 심지를 견고하게 하는 나만의 방법을 구축하라.

▶ 마지막 세번째이다. 말로만 말고 실제로 나만의 방법을 만들어야 한다. 심지가 견고케 되는 방법 말이다. 하나님의 평강이 임하고 어떤 일이 있어도 내 영적인 상태가 흔들리지 않는 그 방법이다. 주님과 함께 할 정도가 아니라 가까이 계시기 바란다. 아주 주님과 가까이 계시기 바란다. 어떻게 가까이 하는가? 주님의 얼굴을 구하시기 바란다. 시편 24장에 말씀하고 계신다.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가 누구며 그의 거룩한 곳에 설 자가 누구인가 / 그는 여호와께 복을 받고 구원의 하나님께 의를 얻으리니 / 이는 여호와를 찾는 족속이요 야곱의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자로다”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시기 바란다. 그것이 예배이다.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주일날 예배에 간다고 하면 사람들 보고 교제하고 목사의 설교를 듣는다고 생각을 한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그것은 수박의 겉핥기정도이다. 여러분들이 강단에 선포된 말씀을 하나님의 음성으로 진짜로 받으면 눈에 안보이는 무궁무진한 영의 역사가 일어난다. 이 축복을 누리시기 바란다. 그리고 주님에 가까이 눈, 시선과 함께 하시기 바란다. 하나님의 눈은 어디를 향하고 계시는가? 디모데전서 2장에 있는 것처럼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기를 원하며 진리 가운데 이르기를 원하신다. 그래서 하나님은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는 현장에 눈이 가있다. 구원의 축복이 필요한 현장에 하나님의 눈이 가있다. 여러분들이 현장을 위해서 기도하고, 현장을 분석하고, 현장에 구원받을 자의 명단을 작성하고, 현장을 향한 언약을 찾는 자를 하나님이 축복하신다. 심지가 견고케 된다는 것이다. 평강을 주신다는 말이다. 또 주님의 입과 가까이 하시기를 바란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살 것이라.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이 영이요 생명이니라.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내가 현장에 무엇을 전달할까 그 말씀을 붙잡을 때 하나님이 역사하신다는 이야기다. 내가 응답 받을 기도제목을 위해서 하나님이 무슨 말씀을 준비하셨는가 여러분이 고민할 때 성령이 역사하신다. 하나님의 말씀만이 영원하고 하나님의 말씀만이 나를 치유하신다. 오늘 이 시간 하나님의 말씀을 주의 음성으로 들을 때에 여러분의 모든 질병이 치유되는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 결론 – 빌 3:7-9

▶ 오늘 결론을 전도자 바울의 고백으로 함께 하며 마치겠다. 빌립보서 3장 말씀이다.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 이것을 바울이 고백한 것이다. 하나님이 나를 찾고 내가 거기에 발견되기를 원한다는 말이다. 어느 정도로 바울의 생각과 마음을 주님께 두었는가? 바울이 가지고 있었던 모든 것을 해로 배설물로 여길 만큼 오직 그리스도께 집중했던 것이다. 오직 주님만을 바라보면서 주님만을 의뢰하면서 주님이 찾아서 쓰임 받기를 열망했던 것이다. 그럴 만큼 모든 것을 내려놓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런 바울의 고백이 여러분의 고백이 되기를 축원한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우리의 구원 주가 되신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천상천하 하늘과 땅의 모든 전권을 갖고 계심을 믿는다.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께서 만물의 근원이요 종결자라는 것을 믿는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인생 모든 문제를 끝내시고 교회의 머리가 되어 주심을 믿는다. 오직 그 그리스도께 발견되기를 원한다. 그분께서 여러분을 찾기를 바란다. 그럴 만큼 여러분의 심지가 견고케 되기를 축원한다.

▶ 기도합니다. 존귀하신 하나님, 아버지가 되시는 하나님, 하나님의 평강을 원합니다. 심지가 견고케 되기를 바랍니다. 이를 위하여 주님과 매우 가까이 하게 하옵소서. 주의 영광의 얼굴을 구하는 예배에 승리케 하시고, 죽어가고 멸망 당하는 현장을 바라보는 주님의 시선과 함께 하게 하시며 주님의 입에서 나오고 선포되어지는 음성, 레마의 말씀을 듣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