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아들은 늘 깨어있다

September 10th, 2017

ICA Sunday Pulpit Message



♠ 서론

악인도 충성된 자를 원한다.

▶ 오늘은 예수님의 세가지 비유를 보겠습니다. 마태복음 25장에 세가지 비유의 내용이 나옵니다. 서론에 악인도 충성된 자를 원한다고 나옵니다. 충성스럽다는 말은 변하지 않고 끝까지 신실 하다는 말입니다. 배신과 폭력이 난무하는 조직폭력배들도 자기 말을 잘 듣는 부하를 원합니다. 그러한 조직폭력배들도 그러한데 하물며 보통 사람들은 어떻겠습니까? 보통 부모님들은 자신의 자녀들이 충성스럽게 충성스러운 성품으로 자라나길 원합니다. 보통 선생님들은 자기의 제자, 학생들이 충성스럽게 학업에 열중하고 과제를 잘 해오기를 바랍니다. 회사의 사장도 역시 직원들이 충성스럽게 일을 해주기를 바랍니다. 모든 나라의 군대 군인들이 충성스럽게 나라를 수호하고 자신의 나라 국민들을 보호하기를 원합니다. 누구나 자기는 충성스러운 성품이 될지 못할지라도 다른 사람들은 충성스럽기를 바랍니다.

▶ 이슬람교 자살 특공대가 레바논에 있는 미국 군대와 큰 싸움이 벌어졌을 때입니다. 미국 해병대가 특별 작전을 수행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슬람교 자살 특공대가 기습 공격을 해왔습니다. 그 공격으로 인해 많은 병사들이 부상을 당하고 200명이 넘는 미국 군인들이 사망을 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4성장군 Paul Kelly 라고 하는 미국 사령관이 즉시 현장으로 들어갔습니다. 중상을 입은 해병들을 위로했습니다. 특별히 특별 작전에 동원되고 수행했던 분들에게 훈장을 수여했습니다. 강인하고 절도 있기로 소문난 Kelly 장군이었지만 눈에는 눈물이 흘렀고 훈장을 달아주는 그의 손이 해병들 앞에서 떨었다고 합니다. 어느 한 군인은 말을 못할 정도로 심한 부상을 입었습니다. 원칙적으로 부하가 높은 사람에게 관등성명을 대야 하지만Kelly 장군은 그 부상당한 병사에게 다가가서 자신의 소속 관등성명을 대고 자기 자신을 소개 했다고 합니다. 심하게 부상을 당해서 말을 하지 못하는 그 해병은 간호사에게 펜을 빌려서 침대 시트 위에다가 무엇을 겨우 썼다고 합니다. ‘Semper fi... (delis)’ 항상 충성이라고 하는 해병대의 구호라고 합니다. 죽어가던 해병이 라는 말이 아닌 ‘항상 충성’ 이라는 구호를 자신의 침대 시트 위에 썼습니다. 그 미국 해병대의 구호를 본 Kelly 장군이 그만 목이 매어서 큰 소리로 울었다고 합니다. 사람도 이렇게 충성하는 사람 앞에서 감동을 합니다. 하물며 하나님은 어떻겠습니까? 당연히 신실하고 충성된 자를 기뻐하시고 축복하시게끔 되어있습니다. Semper 는 라틴어로 항상 이라는 뜻입니다. Fidelis 는 loyal, faithful 이라는 뜻입니다. 늘 충성하려고 한다면 늘 집중하고 긴장하고 있어야 합니다. 게을러서 잠이 든다고 한다면 계속 충성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깨어 있고 잠들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세가지 비유 중에 첫번째가 깨어 있으라 라는 내용입니다.

 

1. 세 가지 비유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알려주신 예수님에게 감사하라.

▶ 첫번째 입니다. 오늘 세가지 비유를 전해 듣는데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에 이 비유를 전해주신 예수님께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누군가 가르쳐 주지 않으면 알 길이 없기 때문에 알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하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이 진짜 하나님께 감사를 하게 되면 여러분 안에 있는 어두움과 불신앙이 전부 떠나가게끔 되어있습니다. 낙심해 있던 사람이나 우울증에 걸려있던 사람이 감사가 회복되어진다면 100% 치유가 된다고 합니다. 중요한 의미 있는 하나님의 뜻을 우리에게 비유로 알게 해주셨습니다. 비유로 전해주신 이유는 잘 깨닫고 오래 기억하라고 주신 것입니다. 열 처녀의 비유가 나옵니다. 깨어 있으라 경성하라는 뜻입니다. 오늘 본문에 천국은 마치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가는 열명의 처녀와 같다고 했습니다. 열명의 처녀 중에 지혜 있는 다섯 처녀는 등을 준비하고 기름을 따로 준비했습니다. 그런데 다섯 명의 미련한 처녀들은 등은 준비했으나 기름을 준비하지 못했습니다. 모든 열 처녀가 기다리다가 잠이 들고 신랑이 밤중에 늦게 찾아왔습니다. 신랑을 맞이하러 여자들이 등을 밝혀야 했지만 기름을 따로 준비하지 못했던 여자들은 기름을 다 써서 등불이 꺼져가고 있었습니다. 기름을 나누어 달라고 요청을 했지만 기름을 따로 준비한 여자들은 자신이 쓸 것밖에 없다며 거절을 하고 기름을 파는 사람에게 가서 사라고 제안을 했습니다. 그리하여 미련한 다섯 명의 처녀들은 기름을 사러 떠났습니다. 그들이 떠난 후 혼인 잔치의 문이 닫혔습니다. 기름을 사고 왔는데 문이 닫혀 있으니 문을 열어달라고 간청을 했지만 신랑은 내가 너희를 모르겠다 라고 말했습니다. 신랑은 누구를 말하며 열 처녀는 무엇을 말하고 등과 기름은 무엇을 뜻 하는가는 사실 알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여러가지 해석을 내놓은 사람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결론은 무엇입니까? ‘깨어 있으라’ 입니다. 예수님께서 언제 올지 모릅니다. 우리의 신랑 되신 주님께서 언제 오실지 모르기 때문에 깨어 있으라고 결론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옛날 이스라엘 유대 나라의 결혼 풍습은 이러했습니다. 신랑이 자기 친구들과 함께 신부를 맞이하러 밤에 간다고 합니다. 그러면 신부와 그 친구 처녀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남자 신랑과 신랑의 친구들이 오게 되면 맞이해서 밤에 같이 잔치를 벌인다고 합니다. 그래서 등불이 필요했습니다. 이 비유를 통해서 신랑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열 처녀는 신약의 교회 성도들을 말합니다. 결혼 잔치는 영광스러운 천국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의 성도님들이 주님이 언제 오실지 모르니까 항상 깨어 있기를 주님이 원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신부로 맞이하러 언젠가 오십니다. 지난주에 살펴봤습니다. 마지막 시대에 주님이 재림하십니다. 그때에 세계복음화가 성취되어지고 성도님들이 휴거 되는 날이 올 것입니다. 그 주님의 재림이 바로 신약성도님들 결혼잔치로 비유되고 있습니다. 그 날과 그 시는 아무도 모른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깨어서 기도하는 수 밖에 없습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승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깨어 있어야 되는구나 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알려주었기 때문에 감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 몇 날 몇 시에 어디에서 예수님이 재림하니까 하얀 옷을 입고 어디로 모여라 하면 그것이 진짜 명백한 이단입니다. 성경을 오해한 것입니다. 이런 분들이 많이 있었고 수많은 피해를 입었습니다. 사단이 노린 것입니다. 양치기의 효과를 아십니까? 양치기 소년이 양을 치다가 양을 잡으러 온 늑대들을 보면 높은 곳에 올라가서 동네 사람들에게 늑대가 나타났다고 소리를 지릅니다. 그러면 동네 주민들은 하던 일을 전부 멈추고 늑대를 잡으러 들로 나갑니다. 그 양치기 소년은 자신의 말 한마디에 동네 사람들이 움직이니까 희열을 느낀 것입니다. 주민들이 도착했을 때는 늑대는 없었습니다. 이 어리석은 소년은 이것이 재미있어서 몇 번 더 시도를 합니다. 그때마다 동네 주민들은 허탕을 치고 내려갑니다. 그러던 어느 날 진짜 늑대가 나타났습니다. 다급해진 소년은 더 크게 외칩니다. 동네 주민들은 양치기 소년이 다시 거짓말을 하는 줄 알고 올라가지 않았습니다. 모든 양떼가 늑대들에게 전부 잡아 먹혀 죽었습니다. 양치기의 거짓말 효과입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십니다. 준비하세요. 헌금하세요. 이 세상에 재산들은 다 놓고 갈 것입니다.’ 이 말을 믿은 사람들은 자신들의 재산을 전부 팔았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오시지 않았습니다. 이런 일들이 반복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예수님의 재림’ 의 ‘재림’ 이라는 단어를 말하는 교회는 다 이단이다, 사이비다 이렇게 인식이 되는 것입니다. 제가 지난주에 휴거에 대한 설교를 했습니다. 제 설교를 듣는 분 중에 한 분이 연락이 왔습니다. ‘목사님 어떻게 휴거라는 설교를 하세요?’ 한국에서는 휴거에 대한 설교를 하면 이단이라는 소리를 많이 합니다. 성경에 분명히 나와있는데 요즘 현대 교회가 설교하지 않는 몇가지의 내용이 있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휴거에 대한 내용입니다. 이제 목사님들이 오해 받기 싫으니까 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정말 주님이 재림하게 되면 양치기 꼴이 나는 것입니다. 주님은 반드시 오십니다. 여러분들을 데리고 갈 것입니다. 깨어 있기를 바랍니다.

▶ 두번째는 달란트 비유가 있습니다. 주인이 외국에 여행을 갔습니다. 그 자리에 종들을 불러 모아서 부탁을 합니다. 내가 잠시 자리를 비우니 나의 재산을 너희에게 맡기겠다. 여기에 금을 맡겼다고 기록 되어있습니다. 첫번째 종에게는 다섯 달란트의 금을, 두번째 종에게는 두 달란트의 금을, 세번째 종에게는 한 달란트의 금을 맡깁니다. 재능 대로 맡겼는데, 알다시피 다섯 달란트를 맡은 종은 다섯 달란트의 이익을 내서 열 달란트를 주인에게 주었습니다. 두 달란트를 맡았던 종은 두 달란트의 이익을 내서 네 달란트를 주인에게 바쳤습니다. 한 달란트의 금을 맡았던 종은 금을 땅 속에 감추었습니다. 세상이 험악해서 잃어버릴까봐 잘 숨겨놨다가 주인께 돌려드립니다 라고 보고를 했습니다.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를 남긴 종들에게는 예수님께서 충성된 내 종아, 잘했다 하며 평가를 했습니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내가 다음에 더 많은 것을 맡기마 그리고 주인인 나의 즐거움에 함께 동참하자.’ 이렇게 칭찬을 했습니다. 그런데 한 달란트를 그대로 가지고 온 종에게는 어떻게 했습니까? 표정관리를 하면서 애썼다 했습니까? 게으르고 악한 종아 이렇게 했습니까? 한 달란트를 뺏어서 다른 사람에게 줬습니다. 그리고는 바깥 어두운 곳에 쫓아 버렸습니다. 얼마나 주인이 심하게 처벌을 내렸던지 한 달란트를 맡았던 종은 밖에 나가서 회개하는 것이 아니고 이를 갈면서 슬피 울었다고 되어있습니다. 분노가 끓어오른 것입니다. 지금까지 얼마나 주인을 위해서 일을 했는데 이럴 수 있겠느냐 하며 이를 갈면서 두고 보자 한 것입니다. 이렇게 극명하게 둘이 나뉘어질 만큼 주님께서 평가를 달리 한 것입니다. 타국에 여행을 간 주인은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한 것입니다. 달란트를 맡은 종들은 교회 사역자들과 모든 성도를 말씀하는 것일 것입니다. 주인의 소유를 맡겼다 라는 것은 영혼구원과 양육의 일을 맡긴 것과 같습니다. 열매를 맺을 만큼 충성했느냐 열매를 맺을 수 없을 만큼 충성하지 않았느냐 이렇게 갈려진 것입니다. 열매가 있고 없고가 아니라 충성된 것을 말합니다. 솔직히 열매는 누가 주시는 것입니까? 주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붙어있으면 열매는 저절로 맺어질 줄 믿습니다. 충성스럽게 변하지 않고 지속하라는 말입니다. 젊은 램넌트들은 내가 평생 해야 될 천직을 찾아내세요. 어른 분들은 왔다 갔다 합니다. 목사가 마음에 들면 남아있고 목사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 떠나갑니다. 그러나 청년 여러분들 만큼은 내가 평생 뿌리 내릴 교회를 찾으세요. 내가 평생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서 교회당을 세울 교회를 찾으세요. 내가 평생 드려질 현장을 찾으세요. 그런 영혼들, 그런 램넌트들을 향해서 주님은 충성된 내 종아 라고 부르십니다. 오락가락 하는 어른 성도님들께 배우지 마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이 거지입니까? 복음을 가볍게 여기는 현대 교인들을 따라가지 마십시오.  생명을 드리는 일생을 거는 그런 멋진 인생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저희 교회 어른 성도님들이 그렇다는 것이 아닙니다. 충성이라고 하는 언약을 꼭 붙잡기를 바랍니다. 젊은 학생들은 직업을 얻고 가정을 이끌게 되면 교회를 떠나게 되고 새로운 현장으로 하나님이 인도를 하십니다. 평생 하나님의 인도를 받을 교회, 직업, 배우자 찾기를 축원합니다. 충성하느냐 변하느냐 변하지 않느냐에 예수님의 반응이 엄청 달랐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마음의 중심이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합니다. 승리하시길 바랍니다.

▶ 세번째는 양과 염소의 비유입니다. 무슨 내용이냐 하면 예수님이 천사들과 함께 재림하실 때를 말하고 있습니다. 영광의 보좌에 왕으로 좌정하시고 모든 민족을 모이게 했습니다. 오른쪽과 왼쪽으로 구분하셨습니다. 오른쪽은 양으로, 왼쪽은 염소로 구분하시고는 심판을 하셨습니다. 양 같은 민족들에게는 내 아버지께 너희들은 복을 받았다. 얼른 나와서 하나님 아버지께서 창세전에 준비한 유업 나라를 물려받아라 이렇게 하셨습니다. 이랬더니 양 같은 의인들이 저희들이 무슨 일을 했길래 이렇게 큰 축복을 받는지 되레어 질문을 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답하십니다. ‘내가 배고플 때 너희들이 먹였다, 목이 마를 때 물을 주었다, 내가 나그네로 떠돌아 다닐 때 너희들이 나를 영접해 주었고, 내가 옷이 없을 때 너희들이 내게 옷을 입혀주었다. 내가 병들었을 때 나를 돌보아 주었고, 내가 감옥에 갇혔을 때 너희들이 찾아와 주었기 때문에 너희들에게 복을 주는 것이다.’ 양 같은 의인들은 ‘예수님이 병들고 감옥에 갇혔을 때에 병원에 모셔다 드리지도 않고 감옥에 심방을 간 적이 없는데 우리가 언제 그렇게 했습니까?’ 라고 답을 합니다. 마태복음 25장 40절에 예수님이 답을 주십니다.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즉 예수님과 같은 형제에게 해준 것이 예수님께 해준 것이다 라는 말입니다. 예수님의 형제는 누구를 말합니까? 예수님께서 죽음에서 부활 하시자 마자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고 안으려고 달려오던 성도가 있었습니다. 부활의 첫 열매라서 하나님이 받으셔야 하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다가오지 말고 멈추라고 하셨습니다. ‘내 하나님, 내 아버지 곧 너희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 아직 못 갔다.’ 라고 하셨습니다.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너의 하나님 즉 예수님의 형제들은 누구를 말하는 것입니까?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서 죽으시고 나를 위해서 부활 하시어 구주가 되심을 고백하는 사람이 형제인 줄로 믿습니다. 신약 성도가 모두 주님의 형제입니다. 예수님을 향해서 그리스도, 나의 주, 하나님으로 고백하시는 분들은 많은데 형님이라고 고백하는 사람들은 많이 없습니다. 로마서 8장에 보시면 맏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이렇게 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이 보실 때는 예수님이 첫째 아들이고 여러분이 둘째, 셋째 같은 형제 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예수님이 하나님의 독생자였지만 첫 맏아들이 되고 우리는 그의 형제, 똑같은 하나님의 아들들이 된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로서 늘 깨어 있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똑같은 하나님의 아들들이 된 영원한 신분, 최고의 신분을 가진 우리가 예수님을 따라 늘 깨어 있으라는 말입니다. 예수님이 충성하고 섬겼던 것처럼 우리도 충성하고 섬기라는 말입니다. 왼쪽 편에 있는 민족들에게는 저주를 받아라 라고 되어있습니다. 가서 훈련 받고 와라 이러지 않았습니다. 나를 떠나라 마귀와 그 귀신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원한 지옥불에 들어가라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양의 민족은 영원한 상급, 영생을 누리고 염소 민족들은 영벌에 처해진다고 되어있습니다. 구원을 받을려면 섬김을 잘 해야 되겠구나 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교회 성도님들이나 사역자들을 돕고 섬기는 선행은 구원의 근거가 되지는 않습니다. 선행을 했기 때문에 천국에 가는 것이 아닙니다. 선행은 구원을 이미 받았기 때문에 구원받은 사람의 증거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런 세가지 비유를 통해서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예수님 자신이 그런 마음의 중심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늘 항상 깨어 계셨고, 항상 충성하셨고, 항상 섬기셨기 때문에 우리들에게 알려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 뜻을 알게 하신 것에 대해 감사할 뿐만 아니라 우리가 그렇게 배워야 합니다. 세가지 단어를 기억하시면 되겠습니다. ‘경성’, ‘충성’, ‘섬김’ 이 세가지를 이해하고 잊지 않게 하기 위하여 비유를 통해서 자꾸 알려주고 계십니다.

 

2. 늘 깨어 충성하고 섬기셨던 하나님의 아들에게 배우라.

▶ 그리고 두번째 입니다. 늘 깨어 충성하고 섬기셨던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님께 배워야겠습니다. 조금 쉽게 풀면, 하나님의 때를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새벽 아침 일찍 일어나서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셨습니다. 중요한 시간에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음성을 듣고 새로운 힘을 얻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사도바울은 이렇게 이야기 했습니다.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지를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 같이 하지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하여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지금 이 세상이 악하고 험난한 때이기 때문에 세월을 아끼라고 되어있습니다. 불편한 일에 손해보지 말고 주님의 계획 속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 때는 아무도 모르기 때문에 세월을 아껴서 하나님의 시간표 속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때를 놓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것은 깨어있어야 가능합니다.

▶ 충성하라는 말은 하나님이 주신 일을 놓치지 말라는 말입니다. 예수님 자신이 충성스러운 분이셨습니다. 히브리서 3장에 말씀하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자기를 세우신 이에게 신실하시기를 모세가 하나님의 온 집에서 한 것과 같이 하셨으니’ 특히 히브리서 3장 6절을 보시게 되면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집을 맡은 아들로서 그와 같이 하셨으니 우리가 소망의 확신과 자랑을 끝까지 굳게 잡고 있으면 우리는 그의 집이라’ 예수님께서 친히 충성스러운 종의 모범을 보이신 것입니다. 이 비밀을 깨달은 사도바울이 고린도 교회 성도들에게 편지를 쓴 것입니다. 그것이 고린도전서 4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다른 사람들이 저와 여러분들을 쳐다보면서 어떻게 평가하게 만들어야 되느냐 그 뜻입니다. ‘저분은 교회 아마 다닐꺼야’ 이렇게 평가되어지면 안됩니다. ‘김집사님이 A 교회를 다니다가 요즘에는 교회를 바꿨을 걸’ 이렇게 평가되시면 안됩니다. ‘저분은 교회에 미친분이야’ 이렇게 평가 받으셔야 합니다. 하나님의 비밀, 그리스도의 일꾼으로 여기게끔 교회에 열심히 일하는 일꾼으로 평가 받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주님은 그것을 원하십니다.

▶ 그리고 섬긴다는 말은 영혼을 섬긴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을 놓치지 말라는 말입니다. 예수님이 직접 말씀하셨습니다.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작은 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라고 하셨습니다. 내 형제 중에서 지극히 작은 자, 작고 연약한 성도를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형제중에 목회자, 사역자가 있을 수 있습니다. 디모데전서 5장에 말씀하고 계십니다. ‘잘 다스리는 장로들은 배나 존경할 자로 알되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이들에게는 더욱 그리할 것이니라.’ 설교를 잘 해서 존경하는 것이 아니고 말씀사역하는 그 자체만 가지고 존경하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말씀을 잘 못 전한다고 하면 도리어 더 큰 축복의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노아 같은 축복을 받습니다. 셈과 야벳과 같은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6장에는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 여러분이 좋은 것을 드시거나 좋은 것을 입으시면 같이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갈라디아서 6:6절의 말씀을 전하는 저도 빙긋이 웃으면서 말을 하고 듣는 여러분도 웃게 됩니다. 세상 말로 ‘나한테 잘해’ 라는 뜻으로 들립니다. 이런 말은 설교에서 전하기가 힘듭니다. 그런데 여기에 중요한 비밀들이 많이 담겨 있습니다.

▶ 목사를 보고 교회를 오는 것이 아니고 그 목사를 세우신 하나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여러 번 비유를 통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주인이 가기 전에 누구를 먼저 계속 보내십니까? 하나님은 종들을 먼저 보내십니다. 그때 종들이 사람들에게 모두 다 선대를 받았습니까? 아니면 전부 학대를 받고 죽임을 당했습니까? 종들은 학대를 받고 죽임을 당했습니다. 이것이 성경 6000년 역사에 늘 반복이 되어 왔습니다. 이스라엘 역사에 한번도 빠짐 없이 다 반복 되었습니다. 이것을 하나님은 알고 계셨습니다. 사람들은 보냄 받은 그 사람을 다 쳐다보지만 보내신 하나님의 권위는 거의 못 보고 못 만집니다. 결국에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아들로 보내신 그리스도 마저 십자가에 죽일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창세기 6, 7, 8, 9장에 큰 그림을 보여주셨습니다. 노아의 방주 대 역사를 일으킨 노아, 그 노아 방주의 역사를 일으킨 것은 하나님이십니다. 모든 사람은 수장시키고 한 사람, 노아만 살아남게 하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어마어마한 방주를 건조, 짓게 만드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모든 자재를 구별시키고 모든 양식과 모든 사이즈를 주신 것도 하나님이십니다. 정결한 짐승 7쌍, 부정한 짐승 1쌍을 들여보내신 것도 하나님이십니다. 이 방주의 구원의 역사는 하나님이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노아를 쳐다볼 때 그 뒤에 일하시는 하나님을 봐야합니다. 노아의 방주의 대역사를 마치고 긴장이 풀린 노아 할아버지께서 과음하여 옷을 벗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이 때 세 아들은 쳐다보면서 어떻게 반응해야 했습니까? 하나님께서 피조물 인간을 만드실 때 흙으로 몸을 지으시고 코에 생기를 불어넣어 생명이 되었습니다. 술 많이 먹으면 취하는 이 육신, 흙, 연약한 질그릇을 하나님은 알고 계신 것입니다. 그런데 노아의 세 아들 중 함은 노아 뒤에서 일하고 계시는 하나님을 놓친 것 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노아를 취하게도 하고, 은혜를 주기도 하고, 배를 짓기도 하는데 그런 하나님의 장중을 못 본 것입니다. 함은 거짓말을 퍼뜨린 것이 아니고 있는 그대로를 이야기를 한 것입니다. 그런데 함의 후손은 철저히 멸망을 당했습니다. 노아 배후에 있는 하나님을 못 보게 되면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보내서 그 뒤에 일을 하시는 전능자 하나님을 못 보고 인류가 그리스도를 죽일 것을 알았습니다. 이렇게 큰 축복과 저주가 갈리니까 큰 그림을 미리 보여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종들을 보낼 텐데 모두 다 연약할 것이다. 보기 흠모할 바가 없는 추남으로 예수님을 보내셨습니다. 왕의 자녀가 아닌 목수의 아들로 보내셨습니다. 겉모습, 배경을 보고 죽였습니다. 제발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처음부터 밑그림을 깔아 놓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엘리야 선지자를 부르셨습니다. 엘리야가 어떤 사람입니까? 엘리야는 보기에 초췌한 사람인데다가 정신병자 입니다. 엘리야는 조울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서 승리할 때는 좋았다가 체포명령이 떨어지니까 도망가면서 죽고 싶다고 낙심했던 사람입니다. 인간적으로 볼 때는 형편없는 분이었습니다. 그 엘리야가 하나님의 일을 하러 갈 때 젊은 사람들이 엘리야의 생김새 가지고 비난하고 비웃었습니다. 우리 같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철없는 사람들이라면서 무시하고 지나갔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맹수를 일으켜서 비웃던 젊은 사람들을 잡아 먹히게 했습니다. 지금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뒤에 있는 하나님의 권위, 하나님의 배경, 하나님을 인식하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말씀 전하는 자를 배나 존경하고 가장 좋은 것으로 함께하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말씀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받은 말씀을 가지고 인도 받아야 하기 때문에, 받은 말씀을 붙잡고 기도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 다시 한번 반복합니다. 이 비유 메세지를 통해서 예수님이 강조하려고 했던 세 단어는 ‘경성’, ‘충성’, 성김’ 이었습니다. 왜 이렇게 비유를 동원해서 강한 메세지를 주셨습니까? 문을 두드렸더니 기름 사오느라 늦었구나 어서 들어오렴 이렇게 해야 좋은 목사이고 좋은 지도자 일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너희들을 모르니까 가라고 했습니다. 손해를 본 것도 아니고 있는 그대로를 가지고 왔는데 어두운 바깥으로 나가라며 종이 슬피 울며 이를 갈 정도로 처벌했습니다. 너는 영벌, 지옥불에 들어가라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한마디로 끝을 낸다는 메세지 입니다. 왜 이렇게 했는지 마지막으로 알고 가셔야 합니다. 왜 25장에 이런 끔찍한 비유를 드셨습니까? 지난주에 24장에서 무엇을 봤습니까? 끔찍한 혼란시대가 온다고 되어있습니다. 끔찍한 혼란시대때에 어떻게 하면 살아남고 끝까지 축복을 받는다고 되어있습니까? 하나님의 집에 있는 사람들을 청지기처럼 맡아서 훈련시키고 양육시키는 종이 될 때에 축복을 받는다고 되어있습니다. 그것이 최후까지 승리할 수 있는 시간표 입니다. 하나님이 맡긴 하나님의 사람들을 청지기로서, 훈련자로서, 양육자로서 있어야 합니다. 이 세가지 생활을 지속할 수 있는 중심 자세가 경성, 충성, 섬김이기 때문에 세가지의 끔찍한 예를 들어서 까지 비유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3. 늘 깨어 충성하고 섬기셨던 그리스도와 동행하라. (마24:45)

▶ 그래서 세번째 결론이 나옵니다. 늘 깨어 충성하고 섬겼던 그리스도와 같이 가는 것 그 비밀이 바로 이것입니다. 물건을 맡은 청지기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잘되나 잘못되나 늘 깨어있어야 합니다. 늘 깨어있는 청지기로 살 수 있도록 답을 주신 것입니다. 맞습니까? 바울이 일을 잘했습니다. 하나님은 바울에게 많은 하나님의 사람을 맡겼습니다. 바울은 늘 깨어서 성도를 위한 기도를 하고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바울이 크게 쓰임 받고 축복을 받은 이유입니다. 바울 서신들의 첫번째 장을 보게 되면 바울의 인사가 나옵니다. 그 인사에 꼭 반복되어 나온 말이 있습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 너희를 기억하고 항상 감사하오니, 기도하오니’ 이런 말이 나옵니다. 고린도전서 1장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즉, 고린도교회의 성도를 항상 가슴에 품고 청지기처럼 깨어서 기도했다는 말입니다. 빌립보교회도 마찬가지 입니다. ‘내가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며 간구할 때마다 너희 무리를 위하여 기쁨으로 항상 간구함은’ 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골로새교회도 마찬가지 입니다.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감사하노라’ 빌레몬교회도 마찬가지 입니다. ‘내가 항상 내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도할 때에 너를 말함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데살로니가교회도 마찬가지 입니다. ‘우리가 너희 모두로 말미암아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며 기도할 때에 너희를 기억함은’ 즉, 항상 마음에 품고 성도를 위해서 기도했다는 말입니다. 지구 종말 시대에 가장 완전한 승리의 길은 바로 사람을 보살피고 하나님의 사람들을 일으키는 일에 깨어 청지기처럼 기도하는 일입니다. 훈련자들은 사람들을 훈련시켜야 합니다. 램넌트를 위해서 기도해주고 같이 밥도 먹고 보살펴 달라고 맡기면 한 학기가 지나고 흐지부지 해는 경우가 많습니다. 흔들림없이 충성스럽게 훈련시키는 일을 지속해야 합니다. 그래서 ‘또 네가 많은 증인 앞에서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그들이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으리라’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말씀을 나눠주는 양육자로서 말씀을 가지고 섬기지 않고 말씀을 가지고 협박하면 어떻게 됩니까? 주일날 교회에 안 나오면 지옥 간다는 것은 말씀을 가지고 섬기는 것이 아니고 말씀을 가지고 죽이는 것입니다. 이것이 율법주의 입니다. 말씀으로 양육하는 사람은 섬기는 심령으로 해야 합니다. ‘네가 이것으로 형제를 깨우치면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일꾼이 되어 믿음의 말씀과 네가 따르는 좋은 교훈으로 양육을 받으리라’

▶ 세가지 비유의 중심 자세는 마지막 시대 때에 승리할 수 있는 결정적인 마음의 중심, 자세, 태도가 바로 이것입니다. 누구는 청지기로 살고 싶지 않습니까? 누구는 훈련 안 시키고 합니까? 누구는 양육하고 싶어하지 않습니까? 하고 싶은데 되지 않습니다. 할 수 있는 키가 바로 깨어있는 있는 것, 충성, 섬기는 자세를 갖는 것입니다. 이것들을 가지면 끝까지 지속 할 수 있습니다. 승리하시길 바랍니다.

 

♠ 결론

하나님의 아들들이 창조되고 존재하는 이유 (엡2:10, 창26:24, 출14:31, 사42:1, 벧후1:1, 빌1:1, 계22:3)

▶ 결론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하나님의 아들들로 창조하시고 부르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들로 창조되고 살아야 하는 존재의 이유가 무엇입니까? 에베소서 2장 10절에 우리는 그의 만드신 작품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즉,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선한 일을 위해서 우리가 구원받은 줄로 믿습니다. 그것을 정말로 깨닫게 되어지게 되면 자기를 하나님 앞에서 종이라고 표현합니다. 창세기 26장에 보게 되면 ‘내 종 아브라함을 위하여’ 이렇게 나와있습니다. 출애굽기 14장에는 모세를 향해서 여호와의 종 모세를 믿었더라 이렇게 되어있습니다. 이사야 42장에는 내가 붙드는 나의 종이라고 예수님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이 하나님의 종이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요 사도 된 나, 베드로’ 라고 자신을 표현했으며 바울 역시 ‘그리스도 예수의 종된 나, 바울은’ 라고 자신을 표현했습니다. 성경의 맨 끝장인, 계시록 22장에는 ‘다시 저주가 없으며 하나님과 그 어린 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에 있으리니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며’ 라고 되어있습니다.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종이였습니다. 출애굽의 기적을 일으킨 대지도자인 모세는 하나님의 종이었습니다. 인류의 모든 문제를 끝내신 그리스도 예수님은 하나님의 종이었습니다. 비록 어부였지만 수석 사도가 됬던 베드로가 하나님의 종이었습니다. 지구 땅의 영적지도를 바꾼 대전도자 바울이 자기를 하나님의 종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영원한 천국의 성도들을 종이라고 표현했습니다. 모두가 하나님의 종이라고 표현했습니다. 하나님의 맡겨진 선한 일을 위해서 승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끝까지 이루어낼 수 있는 중요한 중심이 되는 경성, 충성, 섬김이라는 단어를 가지고 있게 되면 여러분이 바로 그 주인공이 될 것입니다.

▶ 존귀하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 말씀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진정한 하나님의 종이 되게 해주옵소서. 주님처럼 깨어 기도하게 하시고 예수님처럼 충성된 종이 되게 하시며, 목숨을 다하여 인류를 섬겼던 그리스도처럼 우리도 섬김의 종이 되게 하옵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