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다락방의 사람들 (28) - 옛 것에 속지 않는 사람들

September 29th, 2019

ICA Sunday Pulpit Message



♠ 서론

▶ 저는 제 주위에 하나님을 만나지 못해서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에 대해서 죄송한 마음이 든다. 제가 복음을 그들에게 전해줬으면 하나님을 알 수 있었는데 그렇게 못한 부분에 대해서 죄송한 마음이 든다. 혹은 제가 직접적으로 구체적인 복음의 말씀을 전하지 못하더라도 저의 삶의 모습과 빛나는 후광이 있었다고 한다면 그들에게 하나님을 전달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을 텐데 그러지 못하여 죄송하다. 그리고는 하나님을 만난 사람들이 제 주위에 있다. 하나님을 만나서 구원받은 사람들 중에 쓰임 받지 못하고 천국에 가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런 분들을 보면 참 마음이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 수 있다. 또는 하나님께 한 때는 쓰임을 받다가 중간에 멈추는 사람을 볼 수 있다. 그럴 때는 제 마음은 아쉽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의미에서 저와 여러분들 모두는 평생, 계속 하나님께 쓰임 받을 수 있기를 축원한다. 언젠가는 주님 앞에 서는 날이 있을 텐데 평생 하나님께 쓰임 받았다면 정말 감사하고 행복한 인생이며 영광스럽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오늘은 어떻게 하면 평생 쓰임 받을 수 있는가를 나누려고 한다.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진주를 돼지에게 주지 말아라.’ 그리고 보화를 묻어 감추어진 밭을 위하여 전 재산을 헌신하는 사람의 비유를 말하셨다. 왜 그런가? 새 술의 가치를 알기 때문에 그렇다. 진주의 가치를 알기 때문에 그렇다. 보화를 가치를 알기 때문에 재산을 다 드리는 것이다.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 내가 평생 끝까지 쓰임을 받으려고 한다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이 복음의 가치를 알면 된다. 하나님이 주신 최고의 언약, 바로 복음이다. 성경에 그렇게 되어있다.

1. 하나님은 언약을 귀히 여기는 자를 축복하신다.

▶첫번째이다. 성경에 보게 되면 하나님께서는 이 언약의 가치를 알고 귀하게 여기는 사람을 부르시고 사용하셨으며 축복하셨다. 아브라함의 후손들을 보겠다. 아브라함에게 아들이 있었다. 이스마엘과 이삭이다. 이스마엘이 이삭보다 나이가 17살 더 많다. 그러면 당연히 큰 아들이 장자권, 분깃을 두배를 받아야 한다. 그런데 이삭에게 그 축복이 넘겨졌다. 왜 그런가? 이스마엘의 엄마는 하갈이고 이삭의 엄마는 사라여서 그런가? 아이들은 어머님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는다. 하갈은 사실 사라의 여종이었다. 주인 사라가 아이를 갖지 못하여서 사라의 지시를 따라서 아브라함과 동침함으로 아들 이스마엘을 낳았다. 어떻게 됐겠는가? ‘주인 사라님 덕분에 이런 아들을 낳고 이 일에 쓰임 받게 되어 감사하다’ 라고 하지 않았다. '하갈은 주인 사라를 멸시 했느니라’ 라고 되어있다. 자신의 영적 권위를 인정하지 못한다는 이야기는 영적 비밀을 모른다는 것이다. 영적 비밀을 모른다는 이야기는 언약을 모른다는 이야기다. 아니나 다를까 그 하갈의 아들 ‘이스마엘은 이삭이 태어났을 때 희롱했더라’ 라고 되어있다. 자기가 이복형제이기는 하나 형이었으면 이삭을 품고 함께 성장을 했어야 한다. 그의 어머니 하갈은 언약이 없는 어미였기 때문에 그 축복이 이동된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사라에게서 난 씨앗이여야만 한다’ 라고 하셨다. 이삭이 하나님의 언약을 붙잡았기 때문에 축복을 받은 것이다. 자기 대신에 양이 죽은 그 끔찍한 체험을 통해서 복음을 붙잡은 것이다. 이삭이 언약을 붙잡았기 때문에 우물의 싸움 속에서도 다 양보할 수 있었던 것이고 하나님은 언약 붙잡은 자를 축복하신 것을 믿었기 때문에 백년의 응답을 받은 줄로 믿는다. 하나님은 언약을 귀히 여기는 자를 사용하시고 축복하신다.

▶.이삭의 아들이 있다. 에서와 야곱, 쌍둥이다. 형 에서가 훨씬 남자답고 멋진 사람이다. 무엇을 맡겨도 일을 잘할 사람이 에서이다. 야곱은 여성적인 성격이라 엄마 치마 속에만 있었고 부엌에만 왔다 갔다 하는 남자였다. 그런데 하나님은 야곱을 택하시고 부르시고 축복하셨다. 왜 그런가? 형 에서가 장자권을 팥죽 한 그릇에 팔만큼 언약을 경홀히 여겼다. 야곱은 언약을 붙잡고 12지파의 응답을 누렸다. 장자권의 축복, 바로 언약 붙잡고 언약을 귀히 여기는 자를 쓰시고 축복하시는구나. 야곱의 12아들이 있었다. 장자 르우벤이 다 누렸어야 하는데 르우벤은 자기 관리를 못해서 놓쳤다. 둘째와 셋째 형 시므온과 레위는 자기의 분을 이기지 못해서 놓쳤다. 왕적인 축복이 넷째 유다를 통해서 응답이 되었고. 거의 막내격인 열한번째 아들 요셉이 두 분깃 장자의 축복을 받게 된다. 그러면 그 수많은 요셉의 이복형들은 왜 못 받았는가? 하나님의 언약을 귀하게 여기지 못했던 것이다. 비록 막내 요셉이지만 하나님으로부터 계시를 받았거나 꿈을 꾸었다 하면 무엇이지 물어보고 포럼을 했어야 한다. ‘네가 우리의 왕이 된다는 말이냐’ 라고 무시한 것이다. 질시, 시기, 질투를 넘어서 죽이려고 했다. 요셉이 비록 나이는 어렸지만 언약을 굳게 붙들고 있었다. 굳게 붙든다는 말이 무슨 뜻인가? 그 언약을 먼저 생각했다. 언약 때문에 다른 것을 판단한 것이다. 그래서 노예 생활도 가뿐히 넘긴 것이다. 감옥에서도 하나님의 뜻을 찾을 수 있었던 것이다. 보통 사람 같으면 자살했을 법한 어려운 처지도 언약 하나 때문에 다 통과 할 수 있었다. ‘언약 밖에서는 나 자신을 생각할 수 없다’ 요셉은 그랬기 때문에 하나님이 축복하신 것이다. 아브라함의 가문이 다 그랬다. 그래서 믿음의 가문이 된 것이다.

▶세월이 흘러서 예수님 공생애를 할 당시이다. 그때에 정통 기득권 세력이 바로 유대교 분들이다. 말씀을 성취시키시는 메시아를 못 알아볼 정도로 언약이 흐릿했다. 그러나 순교를 각오하고 인생을 결론 낸 언약의 사람들이 마가의 다락방에 모였다. 모든 언약을 성취하신 메시아가 바로 예수다. 그분께서 친히 죽으시고 부활하셨다가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고 말씀하셨다. 이 언약 붙잡고 마가의 다락방에서 성령의 권능을 체험한 것이다. 유대교 보다는 마가다락방의 사람들이 언약을 더 귀히 여겼음을 하나님은 아셨다. 보호자의 축복, 마가다락방이 받아서 예루살렘 교회로 부흥, 확산된 것이다. 어마어마한 역사가 일어났다. 우리가 그것을 모델로 삼아서 우리의 현장에 나간다. 세월이 좀 지나서 예루살렘 교회 대신에 안디옥 교회를 하나님이 축복하시기 시작하셨다. 오늘 이 사도행전 11, 12장을 기점으로 해서 등장인물들이 바뀌기 시작한다. 왜 그런가? 오늘은 그것을 보려고 한다.

 

2. 옛것에 속아 복음 전달하는 일을 실패하지 말라. 

▶두번째이다. 여러분에게 나누어진 유인물을 보시면 옛 것에 속아 복음을 전달하는 일을 실패하지 말라고 되어있다. 우리가 지난 주에 사도행전 10장에서 확인했다. 베드로와 고넬료의 만남을 통해서 이방인에게 복음이 전파되는 놀라운 문들이 열렸다. 베드로가 갔다가 왔다. 그런데 사도행전 11:1에 보면 뭐라고 나와있는가? “유대에 있는 사도들과 형제들이 이방인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 함을 들었더니” 이방 사람들이 복음을 받았다는 소식이 퍼졌다. 그러니 2절에는 “베드로가 예루살렘에 올라갔을 때에 할례자들이 힐난하여” 할례자들이 베드로를 힐난한 것이다. 영어 성경에 보게 되면 할례파에 속한 자들이라고 되어있다. 어느 파에 속한 사람들, 그룹, 당이 있었다는 말이다. 베드로를 향해서 ‘왜 이방 사람들을 만났느냐? 왜 이방 사람들과 밥을 먹었느냐? 왜 이방 사람 집에서 몇일 유숙했느냐’ 라고 태클을 걸고 있다. 베드로는 복음을 전했다. 복음은 주님이 주신 최고의 언약이다. 너무나 소중하기 때문에 모두가 들어야 하는 것이 복음이다. 그러기 때문에 전달해야 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할례파 사람들은 ‘왜 이방인 고넬료 집에 가서 그 짓을 했냐’ 라고 비판했다고 되어있다. NIV 성경에는 criticize라고 되어있고 KJV에는 contend라고 되어있다. 우리는 종합격투기에서 싸우는 사람을 contender라고 부른다. 그들은 피 터지게 싸운다. 그래서 맞서 겨루어 피 터지게 싸우는 것을 contend 라고 한다. 예루살렘 교회 당회장 목사를 향해서 왜 그러냐고 맞서 겨루고 있는 것이다. ‘복음은 너무나 소중한 것이기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전해야 한다’ 가 아니고 ‘왜 율법에 있지 않은 일을 했느냐’ 라고 겨루고 있는 것이다. 율법은 좋은 것이다. 그런데 이들은 옛 것을 붙잡고 있는 것이다. 옛 것은 창세기 3장이다. 생명과 대신에 선악과를 먹고 있는 것이다. 지금으로 표현하면 생명을 살리는 것보다 선악 간의 판단, 정죄를 먼저하고 있는 것이다. 옛 것을 붙잡았기 때문에 이 복음전파에 태클을 걸었던 것이다. 복음을 그만큼 가치 있게 여기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반응이 나온 것이다.

▶또 한 가지 보게 되면,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세워진 베드로이다. 진짜 형제를 가지고 영적 가족으로 여겼다고 한다면. 조심스럽게 찾아와서 베드로에게 포럼을 했을 것이다. “형제 베드로여 역사가 일어났다고 하는데 혹시 고넬료는 이방 사람이 아닙니까? 혹시 주위 사람들로부터 이상한 소리 듣지 않을까요?” 질문하면서 베드로를 보호했을 것이다. 공개적으로 비난을 했다. 공격한 것이다. 이같은 일은 평소에 베드로를 향해서 악한 감정이 없었으면 일어나지 않는다. 이런 약점, 실수, 허물들이 드러나니까 벌떼처럼 달려드는 것이다. 무엇인가? 창세기 4장이다. 옛 것이다. 가인과 아벨 스스로 비교해보니 자기는 하나님께 하나님께 무시 당했다 느꼈다. 분노, 질투 이 감정들이 폭팔하여 아우 아벨을 죽였다. 헬라파 사람들이 볼 때 베드로와 비교해보니 이게 아닌 것 같았다. 공개적으로 인격살인을 하는 것이다. 창세기 4장 옛 것에 걸려든 예루살렘 교회 안의 할례파 당이다. 또 한가지는 공개적으로 비난 비평했기 때문에 베드로가 어쩔 수 없이 모든 것을 공개적으로 설명하고 변호하고 변명할 수 밖에 없었다. 모두가 알게 되었다는 뜻이다. 모두가 알기 때문에 사도행전 누가에 의해서 기록 될 수 있었을 것이다.

▶ 교회 초기에는 베드로를 통해서 기적과 표적이 일어나니까 사람들이 전부다 복종을 하고 순복했다. 베드로 말 한마디에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시체로 변했다. 시간이 지나니까 베드로를 향해서 공격을 한 것이다. 문제는 이 공개된 장면들을 누가 봤는가? 어린 후대들이 다 본 것이다. 렘넌트들에게 치명적인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하나님이 가장 기대하시고 가장 신경을 많이 쓰는 부분이 바로 렘넌트 후대들이다. 옛 것에 걸린 것이다. 후대 살리기가 아니라 후대 죽이기 였다. 옛 것 창세기 6장이다. 물질과 육신에 빠지다 보니 후대가 완전히 멸망하는 시대 네피림 시대이다. 위로는 하나님 언약을 실망시키는 것이다. 옆으로는 베드로 동역자를 실망시킨 것이다. 아래로는 어린 후대들에게 악 영향을 입히는 것이다. 전방위적으로 하나님을 실망시킨 것이다. 이 시점을 시작으로 해서 예루살렘 교회는 하나님의 시선에서 멀어지게 된다. 성령의 조명에서 벗어나게 된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그 다음장 행 12장에 보면 베드로가 감옥에 잡혀 들어간다. 다른 사도들은 순교를 당한다. 13장에는 드디어 안디옥 교회가 출범한다. 3000, 5000명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까지 복종했던 예루살렘 교회가 이제 촛대가 옮겨지게 된 것이다.

▶지금까지는 심각하게 말씀을 드렸다. 오늘 렘넌트 헌신 예배기 때문에, 제가 렘넌트들을 향해서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넥타이도 풀어 헤치고 이렇게 니트하게 왔다. 렘넌트 여러분은 기억하시기 바란다. 옛 것때문에 복음 확산하는 일을 실패케 하는 일이 다시는 없도록 명심하기 바란다. 그들이 했던 것의 반대로만 하면 된다. 어떤 일이 있어도 주님께서 주신 복음을 먼저 생각하라. 소중히 여기라는 뜻이다. 그리고 그 소중한 복음 때문에 세워진 목회자나 전도자를 귀히 여겨라.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에게 구하노니 너희 가운데서 수고하고 주 안에서 너희를 다스리며 권하는 자들을 너희가 알고, 그들의 역사로 말미암아 사랑 안에서 가장 귀히 여기며 너희끼리 화목하라” “Esteem them highly in love” 최고로 여기라는 말이다. 그리고 주님이 기뻐하시고 준비하고 계시는 렘넌트 후대들에게 여러분들은 본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여러분들의 제자나 후배들이 은혜를 잃지 않도록 도와줘라. 주님이 베드로에게 명하신 그것 “Feed my sheep” “Feed my lamb” 양을 치라, 양을 먹이라는 말이다. 여러분들은 꼭 그렇게 할 수 있기를 바란다.

▶오늘 본문을 보시게 되면 또 다른 그룹의 사람들이 나온다. 19절을 읽었다. 스데반의 환란때문에 흩어진 자들이 나온다. 그들은 흩어지면서 까지 복음을 전했다. 예루살렘을 떠나서 먼지역까지 가다 보니 타 문화권 사람, 타 언어 사람을 만난 것이다. 그 사람들에게 까지 그 언어로 복음을 전했다고 되어있다. 왜 그런가? 핍박을 받고 환란을 당해서 도망가게 되면 자기가 살아야 한다. 가족을 챙겨야 한다. 먹고 살고 봐야 한다. 그것도 중요하지만 복음이 더 소중했기 때문에 복음을 전한 것이다. 환란도 복음 전하는 기회로. 다문화권을 만나는 것도 복음을 전하는 기회로. 왜인가? 복음이 너무 소중하기 떄문이다. 예수님의 죽으심을 전하는 것이다. 여러분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어떻게 하는가? 부고장을 돌린다. 왜 그런가? 나에게 가장 소중하고 내가 가장 사랑했으며 은혜를 받았던 부모님이 돌아가셨으니 전하는 것이다. 나를 가장 사랑하시고 나를 구원하심 뿐만 아니라 나에게 은혜를 주신 그 주님 하나님의 아들의 죽으심을 전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주신 이름 예수이다. 우리에게 독생자로 오신 그 이름 예수이다. 우리를 멸망하게 하지 않으려고 보내신 그 이름이 예수이다. 우리를 구원하실 뿐만 아니라 영생을 주시려고 주신 이름이 예수이다. 그래서 예수님이 직접 말씀하셨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어느정도 인가? 세상을 사랑하시는데 “Begotten son” 독생자를 주시기 까지. 영생을 얻게 하려 함이라. 영원한 생명이다. 즉, 복음은 영원한 가치가 있다는 말이다. 여러분들이 이 부분을 소중히 여기고 전달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분이 우리 인생 모든 문제를 끝내셨다. 우리의 모든 무너졌던 부분을 회복하셨다.

▶ 그래서 복음 하나 때문에 우리는 모든 것을 내려놓는 것이다. 비교의식은 내려놓으시기 바란다. 자존심 내려놓으시기 바란다. “내가 그 사람 반드시 꺾으리라!” 그런 생각 버리기 바란다. 명예와 권세 내려 놓으시기 바란다. 아니, 내려 놓을 수 밖에 없다. 복음을 정말로 안다고 한다면. 복음의 가치를 정말로 알고 있다면. 여기 앉아있는 렘넌트 여러분들은 어느 대열에 서길 원하는가? 복음 전한 것 때문에 율법을 어겼다고 태클 거는 쪽에 서겠는가? 아니면 어려움을 당하면서 까지 복음을 전하는 안디옥 교회의 멤버들처럼 살겠는가? 하필이면 오늘 행 11장을 보는 날이다. 렘넌트 헌신 예배에 딱 맞는 주제이다. 여러분들은 정확한 복음의 대열에 서기 바라고 전도자의 삶을 살 수 있기를 축원한다. 영원한 가치가 있다. 이거 하나 때문에 모든 것이 회복된다. 이것을 소중히 여기지 않으면 다른 것이 스멀 스멀 올라온다. “For God so loved the world” 하나님은 이 세상을 사랑했다고 되어있다. 놀라운 것이다. 그 이름을 믿는 자마다 영생을 주신 것이다. 

 

3. 옛것에 속지 않고 복음 전하는 대열에 속하라.

▶결론을 맺겠다. 여러분 렘넌트들은 평생 살면서 쓰임을 받아야 되기 때문에 두가지 위대한 착각을 앞으로 하시기 바란다. 그리고 착각 속에서 위대한 실수 두가지를 평생 할 수 있기를 바란다. 어른 성도님들은 잘 하고 계시니깐 렘넌트 여러분들은 기억하라. 위대한 착각 두가지는 무엇인가? 첫째는 여러분들이 성경을 볼 때 기록된 문서로 보지말고 하나님의 “voice” 음성으로 들으시기를 바란다. “목사님 그것은 아주 훌륭한 일이 아닙니까? 그것을 왜 착각이라고 하시죠?” 질문할 수 있다. 지구상에는 많은 크리스천이 있는데 90% 이상 성경을 읽을 때 주님의 음성으로 듣지 않는다. 그게 상식이 되고 그게 기준이 되어 버렸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그들과 함께 하지 말고 착각하라는 말이다. 하나님이 보실 때에는 너무나 중요한 것이기 때문에 위대하다고 말한 것이다. 또 한가지 착각은 여러분들 주일날 강단말씀 설교를 듣지 않는가? 목사님의 teaching이나 sermon이 아니라. 하나님이 내게 주시는 메시지로 받으시기 바란다. 위대한 착각 그 두가지이다. “이게 뭐 기록된 말씀이지 뭐가 하나님의 음성이냐?”라고 다들 생각하기 때문에. 여러분들 만큼은 그렇게 착각하기실 바란다. “주일날 설교가 목사님께서 설교 준비하고 와서 읽는 것이지. 그게 무슨 하나님의 메시지인가?”라고 다들 생각하기 때문에 여러분들 만큼은 하나님이 네게 주시는 메시지라고 착각하시기 바라는 것이다.

▶이 위대한 착각 속에서 위대한 실수 두가지를 하시기 바란다. 성경 하나님의 말씀이, 하나님의 음성이기 떄문에 반드시 하루를 그 말씀 앞에서 시작하시기 바란다. 그것을 “개인 기도”라고도 하고, “정시예배”라고도 하고, “3오늘”이라고도 하고 “Daily Journal” 아무렇게나 표현해도 괜찮다. 하루를 시작하거나 마무리를 할 때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시작하거나 꼭 마무리를 하는 실수를 범하기 바란다. 지구상에 많은 크리스천들이 그 일을 안하고 있다. 여러분들 만큼은 꼭 그 실수를 하기 바란다. 두번째 실수는 무엇인가? 강단에 선포되는 말씀이 주의 메시지이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예배의 축복을 절대로 놓치지 말기 바란다. “내가 다른 스케쥴이 있어서”, “또 다른 일들이 있어서” 특히 미국 크리스천들은 금방 금방 주일을 잃어버린다. 여러분 렘넌트 만큼은 주일 예배를 반드시 성공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이런 위대한 실수를 하는 렘넌트들을 하나님이 찾고 계신다. 왜 그런가? 평생 쓰실려고 하시는 것이다. 여러분들은 여호와의 자존심이요 하나님의 기업이다. 실제적으로 여러분을 사용하시고 축복하시려고 한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서밋으로 세우실 것이다. 그러니까 정말로 겸손하고 깨끗하게 준비하시기 바란다. 여러분들은 모두를 살리기 바란다. 절대 옛 것에 속지 말기 바란다. 절대 옛 것에 걸려들지 말기 바란다. 그러하면 능하신 주님의 오른팔이 주님의 손이 평생 여러분과 함께 할 것이다. 

 

♠ 기도

▶ 기도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존귀하신 그 이름을 송축합니다. 하나님의 피가 쏟아진 십자가의 복음을 가장 소중하게 여기게 하옵소서. 우리 사랑하는 성도님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 확산될 만큼 복음이 증거되게 하옵소서. 강력한 하나님의 오른팔이 평생! 함께 함으로 평생 주께서 축복하여 주옵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