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디옥교회의 사람들 (1) - 옛 틀을 깬 사람들

October 13th, 2019

ICA Sunday Pulpit Message


녹취록 : PDF (Korean)

주보 : PDF (Korean)


♠  서론

▶ 한 농부가  농사를 지으며 불만을 갖게 되었다. 불평하였다. 큰 호박이 있는데 그 호박이 연약한 줄기에 매달려있다. 마당에 큰 상수리 나무가 있는데 거기에 달려있는 것은 조그만한 도토리였다. 자신의 생각으로는 큰 나무에 크고 무거운 호박을 달아놓고 연약한 줄기에 힘없는 줄기에 작은 도토리를 달아두는 것이 더 좋을 듯 한데, 왜 신은 하나님은 이렇게 하셨을까 불만을 가졌다. 하루는 일하다가 지쳐서 그늘에서 잠을 자는데 넝쿨밑에 잘 수가 없었다. 큰 상수리 나무 밑에서 잠을 잤다. 상수리 나무에 달려있던 도토리 나무가 뚝 농부 이마에 떨어졌다. 깜잘놀라 잠을 깼다. 그리고는 안도의 한 숨을 쉬었다. 큰 호박이 떨어졌으면, 머리가 깨졌을 텐데 도토리 한 알이기에 다행이구나. 생각 하나를 바꾸면서 감사가 나온 것이다. 수도원과 감옥은 다르지만 같다. 수도원을 영어로 뭐라고 하는가? 신부님하고 수녀님이 사는 곳을 뭐라고 하는가? 아는 사람이 없는가? 수도원? 수도원을 영어로 뭐라고 하는가? “Monastery” 공통점은 세상으로 부터의 고립이다. 차이점이 있다고 한다면, 수도원은 감사하는 생활, 묵상하는 생활이겠고 감옥은 불평과 불만 그리고 외로움의 장소이다. 그런데 내가 감옥에 있어도 요셉처럼 감사하면 그 것이 하나님과 긴밀한 교제를 나누는 곳이 될 수 있다. 아무리 공기좋고 찬양이 울리는 수도원이라 할지라도 불평과 불만이 가득하게 되면 그것이 바로 감옥이 될 수 있다.

생각하나 작은 생각 하나 바꾸어도 많은 것이 바뀐다. 하물며, 우리가 실천 실행 움직이는 것 까지 바꾸게 되면, 더 많은 것이 변화 될 것이다. 그거를 한자어로 ‘更新 (갱신)’ “Renewal” 이렇게 표현한다. ‘更 (고칠 갱)’ ‘新 (새로울 신)’ 새롭게 바꾸고 고친다는 뜻이다. 성경에 보게되면 갱신되어서 자신을 바꾸어서 응답을 계속 받은 사례가 많이 있다. 누가 있을까?

 

1. 옛 틀을 깨고 갱신할 때 하나님의 응답이 지속된다.

▶ 아브라함이 갱신했다. 창세기 22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명령하신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재물로 받치라 말씀하셨다. 25년 만에 응답받은 그 아들 이삭을 웬만큼 키웠는데 죽이라는 얘기다. 우리가 생각할 때는 참 부당한 요구이다. 아브라함이 옛 틀, 옛 체질로 반응했다면 어땠을까? 금방 먹을 것 없다고, 있으라고 하는 가나안 떠나가지고 애굽으로 내려갔던 아브라함이었다. 자기의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 마누라를 두번이나 팔았던 자이다. 아내의 말을 듣고 하갈과 동침해서 이스마엘 아들까지 낳았던, 인본주의의 체질이였던 것이다. 그러던 아브라함이 지체없이 즉시 묻지도 아니하고 아침 일찍 모든 것 준비해서 아들 이삭을 번제로 드리러 출발했다. 완전히 바뀌었다. 참 다운 갱신을 하였다. 정말로 아들을 죽이려고 할 때에 하나님이 멈추게 하셨다. “내가 네 믿음을 보았다” 죽은자 가운데서 살리실 믿음! 없는 것을 있는 것 처럼 부르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 믿음! “언제는 양자 받으시더니 이제는 사람 잡아먹습니까?”라고 되묻지 않고 갱신한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은 아들 이삭도 살리고 어마어마한 약속을 언약을 재확인 시켜 주셨다.

▶ 아브라함의 손자였던 야곱도 갱신의 본이 되고 있다. 창세기 32장에 보시게 되면은 삼촌집 라반의 집에서 나온다. 어마어마한 재산을 이끌고 다시 금의환향 고향으로 돌아온다. 중간쯤 왔는데 소식이 들려온다. “주인님, 주인님의 형님 에서께서 군사 400명을 데리고 이 곳으로 오고 있다 합니다.” 형 에서가 왜 이렇게 반응하는가? 야곱이 저지른 거짓말의 대가를 지금 받고 있는 것이다. 옛 체질 처럼, 옛 틀 처럼 또 거짓말하고 도망가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무릎을 꿇었다. 문제 해결 자체에 빠지지 않고 문제를 풀어볼라고 구석에 빠지지 않고 문제를 허락하신 하나님을 바라본 것이다. 여기에 하나님이 역사하셨다. 형 에서의 마음을 하나님이 푸시고 둘이 화해할 뿐만 아니라 고향으로 당도하였다. 야곱은 갱신했다. 하나님이 역사하신 줄로 믿는다.

▶ 왕 중에 히스기야 왕이 있다. 그 유명한 다윗왕 그 이후에 이스라엘 나라를 정치적으로 영적으로 개혁했던 하나님이 인정하는 왕이었다. 영적 개혁을 위해서 모든 우상과 신당을 파수하였다. “정치적 개혁을 위해서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어떻게 남의 나라에 조공을 바치고 그렇게 빌빌 싸느냐!”라고 하면서 강대국에게 거절을 하였다. 이 자그마한 나라 이스라엘이 이렇게 하는 것을 보고 강대국 앗수르 왕은 화가난 것이다. “지금까지 받쳤던 조공 물건을 안 받친단 말이냐? 한 번 크게 혼을 내줘야 겠구나.” 그래서 18만 5천의 대군을 이끌고 이스라엘로 쳐들어 갔다. 그냥 파죽지세로 어마어마한 능력으로 밀고 들어왔다. 히스기야 왕 이스라엘의 왕이 깜짝 놀란 것이다. 유다왕이 깜짝 놀라가지고 어찌할바를 몰랐다. 금은보화를 갖다 바쳤다. 내가 잘못했다고. 심지어는 성전에 있는 금을 다 뜯어 바쳤다. 앗수르 왕 산혜림의 마음이 풀리지 않았다. 이스라엘의 수도까지 침공해 들려 하니깐 히스기야 왕이 다른 강대국 이집트 애굽왕에게 원조를 요청했다. 그것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앗수르 왕 산혜림 입장에서는 애굽왕을 불러서 더 화가난 것이다. 앗수를 군대와 앗수르 왕은 이스라엘을 삼킬 기세로 진군해 들어왔다.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사람의 지혜,  사람의 방법을 내려놓고 생각을 바꾸기 시작했다.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께 기도하기 시작했다.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 천군천사를 동원하시는 만군의 하나님께 기도하기 시작한 것이다. 천하만국이 하나님의 소요에 있음을 통치안에 있음을 신앙고백한 것이다. 중심을 다 해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였다. 그런데 성경에는 주의 사자, 주의 천사 하나가 18만 5천을 송장처리했다고 했다. 하룻밤 사이에 자신의 18만 5천 부하가 전부 죽었다. 앗수르 왕이 그걸 쳐다보고 도망하였다. 그리고선 자객에 의해서 죽었다. 하나님께서 대역전을 일으킨 것이다. 너무나 급박한 상황에서 나도 모르게 저질렀던 인본주의를 내려놓고 하나님께 기도했더니 기적을 베푸신 것이다. 하나님의 부당한 명령. 형 가족을 속인 대가. 갑작스럽게 당한 위기. 우리도 어쩌면 생을 살면서 이런 일을 볼 수가 있다. 신앙생활 하면서 이런걸 경험할 수 있다. 이 때 여러분들이 하나님께 집중하는 갱신을 하게 되면, 그 이후에 응답이 지속될 것이다. 이해하시겠는가? 이런 부분들을 여러분이 잡으셔야 한다. 내가 전에는 문제해결하려고 그 문제 속에 빠져 고민했었고 사람 찾아갔는데, 내가 저 사람을 끄집어 내리기 위해서 이 사람 찾아갔단 말이다. 이 사람을 끄집어 내리기 위해서 저 사람을 찾아갔단 말이다. 단기간의 효과는 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인본주의를 내려놓고 하나님 바라보면서 갱신하는 것이다. 이게 첫번째 대지 말씀이다.

 

2. 복음 안에서 모든 것을 초월한 사람들을 보라!

▶ 성경에 이런 사례들이 있는데, 이런 사례들을 열거한 것은 “오늘 본문과 무슨 관계가 있구나”라고 눈치 채시면 된다. 우리가 지금까지는 마가다락방의 사람들이라는 것을 통해서 한 29가지 장면을 쳐다봤다. 이제 오늘부터는 안디옥교회 사람들로 전환된다. 오늘 첫번째로 “안디옥 교회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인가?”보는 것이다. 이들이야 말로 정말 옛 틀을 깬 사람들이었다. 즉, 복음 안에서 모든 것을 초월한 사람들이었다. 오늘 사도행전 13장을 보시게 되면은 안디옥 교회의 시작이 나온다. 오늘 구절 1절에서 3절을 보시게 되면은 안디옥교회의 구성 맴버가 나온다. 그들의 신앙생활의 자세와 방향이 나온다. 뭐가 달랐는가? 어떤 옛 틀을 깼는가?

▶ 첫 째, 옛 율법의 틀을 깼다. 율법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기 때문에 좋은 것입니다. 그런데 그 율법 중에 이방인들과 교제하는 것을 금하는 대목이 있다. 아시다시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나안 땅에 들여보냈다. 그 가나안 땅에 기존에 살던 이방인들은 어마어마하게 우상숭배하던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삶을 구체적으로 여러분에게 소개해 드리게 되면, 여기서 막 토하는 사람도 생기게 될 정도다. 그들의 문화 오염을 방지하기 위해서 이방인들과 접촉하지 말라는 것이다. 만나지 말고 밥을 먹지 말라는 대목이 있다. 그런데 예수님은 왔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셨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부활하셨다. 십자가에서 죽으셨던 예수님이 무덤에서 부활하셨다. 그리고 하신 말씀이 있다. “내가 모든 율법을 끝냈다.” “마쳤다” “완성했다” 그러니깐 전 세계로 가라고 했다. 땅 끝까지 가라고 했다. 그런데 옛 틀에 아직 잡혀 있었다. 마가다락방 사람들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서 예루살렘교회로 부름받았다. 이방인의 틀을 못 벗어난 것이다. 교회 안에서도 유대인파, 헬라파로 나뉘어서 싸웠다. 옛 틀을 못 벗으니깐 하나님께서 중직자를 선발해가지고 예를 계속해서 보여주셨다. 유대인들이 볼 때 이방인들 보다 더 끔직히 여기는 사마리아 여기에 빌립 집사를 보내가지고 복음을 전했다. 하나님의 신변 기적을 통해서 성령께서 빌립 집사를 순간이동 시켰다. 에디오피아 내시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셨다. 이쯤되면은 눈치를 채야하는데 아직도 율법에 걸려있는 것이다. 그 증거로 베드로. 못 알아 먹었다. 세 번이나 환상을 보여줘야 그 때 억지로 끌려간 것이다. 이방인 고넬료에게 복음 전하게 하려고. 거기서 성령이 역사하고 방언이 터지고 모두 회개하는 역사가 일어났음에도 불구하고 그것 보고 태클을 걸었다. “형제 베드로여 베드로 장로님, 그 곳에 가서 혹시 이런 문제 생기지 않을까요?  괜찮겠습니까?” 따로 여쭙는게 아니고. 평소에 기분 나빴으니깐. “왜 거기 가냐 이 말입니다. 왜 그들과 만나서 대화하느냐. 왜 그들이 주는 음식을 얻어 먹느냐. 거기서 왜 잤느냐.” 이런 일들이 벌어졌다. 여기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등을 돌리신 것이다.

▶ 그런데 안디옥 교회 사람들은 어땠는가? 스데반의 환난 때문에 벌어진 흩어진 그 속에서도 복음을 이방인에게 전했다. 그리스도 안에서 율법의 틀을 깨고 그리스도의 새로운 축복의 언약 속으로 도전하고 들어간 것이다. 하나님이 새로 시작한 것이다. 믿습니까? 하나님은 무시무시하신 분이다. 하나님은 자비롭고 은혜로우시며 굉장히 젠틀하신 분이지만, 무시무시한 분이라 우리가 경외 할 줄 알아야 한다. 우리가 눈치 못채게 그분이 화를 내십니다. 출애굽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떻게 되었는가? 10가지 기적. 홍해 기적 보고서도 광야 가운데 불평 불만하였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싹 바꿔 가지고 여호수와 갈렙만 제외하고 바꿔 가지고 가나안 땅에 집어 넣습니다. 하나님의 진로를 바로 치게 되면 사람들이 놀랠 것 같으니깐 다 장례식을 치르고 새 이스라엘 백성을 만들어 집어 넣었다. 이해하시겠는가? 그 어마어마하게 축복했던 베드로가 촛대를 빼앗긴 것이다. 거룩한 성령의 눈에서 벗어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어려움 중에서도 주의 명령을 따라 세계 복음화 대열 속에 있었던 안디옥 교회를 하나님께서 기뻐하셨다. 정말로 잘한 일이다. 그들을 통해 하나님께서 안디옥 교회를 일으키신 것이다. 무슨 말인가? 어마어마한 성령의 오순절날 그 축복을 받았던 그 사람들이 일부가 갱신했는데, 하나님은 새로운 시작을 허락하신 것이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우리들에게 복음을 주셨다. 우리는 복음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복음 안에서 하나님이 모든 길과 문을 여셨다. 이 어마어마한 복음을 우리가 받았는데 그들에게도 은혜로 값없이 공짜로 전해야 되지 않겠나. 저 이방인들도 하나님의 작품이다. 저 이방인들 속에서도 영세 전에 구원받기로 영생을 얻기로 작정된 자들이 있다. 그래서 그들에게 복음 전했던 것이다. 과감히 율법주의의 틀을 깬 것이다. 하나님은 복음 안에서 모든 민족 모든 인류가 차별없이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받기를 원하신다. 그래서 사역의 방향을 세계 선교로 튼 것이다. 그래서 실질적으로 세계 최초의 선교사를 안디옥 교회가 파송할 수 있던 것이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교회를 위하여 기도할 때에 “우리 교회가 이런 교회가 되야 되겠구나” 기도하게 되면 하나님이 여러분을 기뻐하신다.

▶ 두번째 틀이 있다. 그들이 가지고 있던 문화와 배경의 틀을 완전히 극복했다. 이 안디옥교회 리더쉽 다 섯명을 보시라. 바나바가 나온다. 인품, 신앙, 재력, 다 갖춘 유대인이다. 정말로 인정받는 사람이다. 두번째 사람. “니게르”라고 하는 “시몬”이 있다. 죄송합니다만, 우리가 표현할 때 “Negro”라고 하지 않나. “Niger” “니게르”가 바로 검다라는 뜻이다. 무엇을 알 수 있는가? 검은 피부를 가진 안디옥교회의 교사였다. 정말 복음이 귀한 것이 우리는 만민이 평등하지 않는가? 그래서 교회는 누구든지 올 수 있는 것이다. 근데 세상 밖을 보게 되면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미국만 하더라도 인종차별의 역사가 얼마나 가슴아프고 뼈져리게 아팠던 것을 이미 알고 있다. 표면적으로 보게 되면 인종차별이 없는 것 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깊숙히 들어가게 되면 “Discrimination”이 아직도 있다. 쉽게 풀리지 않는 인종간의 문제. 안디옥 교회는 어땠는가? 니게르를 교회의 장로로 세웠다. 스킨 컬러와 관계없이 이 사람은 복음을 가지고  있구나 결론내리니깐 동역자가 된 것이다. 그런 문화를 넘어선 것이다. 무엇이 더 중요했는가를 알기 때문에. 복음이 더 중요하다는걸 알기 때문에. 믿습니까?

▶ 세번째는 “구레내 사람 루기오”가 나와있다. 영어로는 “Cyrene”이다. 동네 이름이다. 북 아프리카에 있는 도시 이름이다. 어느 동네 사람인지 알겠는가? 안디옥도 아니고 예루살렘도 아니고 외지 사람이다. 그 분이 안디옥 교회의 리더가 된 것이다. 교회만 왔다 갔다 한 것이 아니라 교사였다. 가르치는 책임자였다. 이게 가능한 것인가? 지역에 관계없이 출신에 관계없이 복음이 분명하다 싶으면 완전히 한 가족이 된 것이다. 어스틴 사람, 킬린 사람 그런 것 없었다.

그리고 헤롯과 함께 양육받았던 “마나엔”이라는 사람이 있다. “분본왕 헤롯” 하게 되면 유대인의 원수이다. 헤롯 사람을 싫어한단 말이다. 무엇인가? 원수임에도 불구하고 복음안에서 한 가족, 한 동역자가 된 것이다. 교회를 이끌어가는 책임자로 세운 것이다. 복음 때문에. 완전히 갱신한 것이다.

▶ 마지막 바울은 누군지 알지 않은가. 교회를 핍박했던 주역이다. 세상적으로 보면 유대인이 바울과 함께 할 수 없다. 그런데 하나가 되었다. 하나님이 그렇게 하게 하셨다. 놀랍지 않은가? 이것이야 말로 진짜 유토피아다. 이것이야 말로 진짜 낙원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된 것이다. 문화와 피부 색깔 때문에 이질감 느끼고, 배타적으로 하고, 처절하게 싸우기도 하고 이러한 세상의 모든 것을 뛰어넘은 것이다. 진정한 참된 평안과 공생, 공용 함께 살아가고 함께 번영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복음밖에 없다.

▶ 또 한 가지는 인본주의의 한계를 넘어선 것이다. 어떻게 했는가? 중요한 일 앞에 보통은 위원회 구성하고 함께 회의를 하고 회의를 거쳐서 결정하는데 이들은 주님을 “섬겼다”라고 되어있다.   예수님이 직접 말씀하셨다. 내가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다. 내가 도리어 섬기고 많은 사람의 대속물을 위해서 왔다. 예수님이 우리를 섬기러 오셨는데 이들은 주제 넘게 자기가 주님을 섬긴다 그런다. 주제 넘은 것이 아니라. 그들이 주님과 하나가 된 것이다. 주님이 교회를 위해 희생 봉사 섬기는 것 처럼 이 리더쉽들이 주님과 한 몸이 되었기 때문에 교회를 위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섬기며 금식 기도 한 것이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인본주의를 쓰지 않고 성령의 인도를 받았다는 말이다. 중차대한 일. 선교사를 파송하는 일을 위해서 하나님께 구했던 것이다.

▶ 조금이라도 인간의 방법과 지혜를 개입하지 않게 하려고 다 내려놓고 금식 기도한 것이다. 여러분들 무슨 문제 사건이 있게 되면은 회의하지 마시고 금식 기도 하라. 그래서 “김집사님이 지금 금식하는 것 같구나” 그러면 “아 저분이 지금 중요한 문제를 놓고 하나님께 성령의 인도를 구하는구나” 다 알 정도로 교회 문화가 되게 하시길 바란다.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일단 붙어보고 본다. 붙어보고 나서 서로 깨지고 나면 나중에 후회하고 한 참 더 고생하고 그런다. 내려놓고 기도하라. 성령의 인도가 가장 확실하기 때문에. 이것이야 말로 가장 멋지고 아름다운 신앙생활이다. 하나님께서 기뻐할 수 밖에서 없는 맴버 구성, 사역의 자세, 신앙생활의 방향이 딱 맞아 떨어진 것이다. 옛 틀을 과감히 깨뜨리고 새로운 축복의 그릇을 준비한 그들을 하나님이 사용하신 줄로 믿는다. 오늘 설교 컨텐츠 본문이 바로 이 내용이다.

▶ 자 그러면 우리가 이 메시지를 받고서 듣고 깨닫고 배운다. 내가 가지고 있는 옛 가치, 옛 틀, 옛 삶의 방법, 기준 이러한 것들을 버리고 깨뜨려 나가야 한다고 이해는 했지 않는가. 그렇게 할 때 하나님이 더 크게 축복하신다는 것을 우리가 알게 되었다. 이 때 여러분은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야 한다. 중심을 드리면서 기도로 시작하시면 된다. “주님, 저의 옛 것을 보게 하옵소서. 오직 복음 때문에 그 옛 것들을 내려놓거나 깨뜨리게 하옵소서.” 나름대로 나의 생활 방식이나 가치관 기준이 다 있지 않는가. 다른 사람 눈치를 보거나. 다른 사람이 싫어하기 때문에. 바꾸는게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때문에 하는 것이다. 오직 복음 때문에 깨뜨리는 것이다. 근데 이게 사실 쉽지가 않다. 실제로 복음의 가치와 능력을 내가 조금씩 맛보게 되면 바꿀 수가 있다. 맛을 봐야 한다. 여러분들이 조그마한 차를 타다가 큰 차를 맛 보게 되면 조그마한 차를 사기 쉽지 않고 큰 차를 사려고 한다. 여러분들이 복음 그리스도 하는데 “정말 예수님이 나를 사랑하시는구나” 이 맛을 봐야 한다. “정말 이 분은 내가 평생 존경하고 찬송할 분이 맞구나” 체험이 되면 바꿀 수 있는 힘이 생긴다. 여러분들 이렇게 지나가다가 대단한 사람 앞에 서게 되면 자신도 모르게 자신을 돌아보게 되지 않는가. 정말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게 되면 화장실에 가도 자신을 보고 정리하지 않는가. 즉, 이 갱신의 축복 역시 그리스도 안에 있다. 구원의 비밀이 그리스도 안에 있듯이 갱신되어 지면서 오는 큰 축복받는 것 역시 바로 그리스도 복음 안에 있다.

 

3. 그림자를 통해 실제를 붙잡아라.

▶ 결론이며 적용점이다. “그림자를 통해서 실체를 붙잡아라”라고 인쇄가 되어있다. 그러면서 세가지 내용이 나온다. “숨이 멎으면 죽는다.” 되어있다. “먹지않으면 병든다.” 되어있다. “친구나 자식 가족이 없으면 외롭다.” 이렇게 되어있다. 뭐 이런 뻔한 얘기를 기록해 놓았을까. 말도 안되는 말을 가지고 설교를 하고 있을까. 당연한 진리다. 힘들이지 않고 강별하지 않더라도 내가 받아들일 수 있는 내용이다. 이것이 그림자란 얘기이다. 우리가 숨이 끊어지면 죽는다. 이 세상에 한 번 사는 것이다. 제한적이라는 것이다. 단 한 번의 체험이란 것이다. 이건 그림자다. 영원히 죽는 몸통 시체가 있다. 무엇인가? 지옥, 불심판, 영원한 고통, 이 영원한 죽음이 있다. 숨이 멎으면 죽는 것. 숨이 안 멎게 끔 숨을 쉬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성경은 “쉬지말고 기도하라”라고 되어있다. 기도는 쉼 없이 해야 하는 영적 호흡이다. 먹지 않으면 영양실조로 병든다. 아사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것 역시 이땅에서의 일이다.  영적인 병이 있다. 그게 영의 양식, 영의 떡, 말씀을 공급받지 못하게 되면 이렇게 되버린다는 것이다. 그러면 영원한 질병, 영적인 문제에 걸려들어 버리는 것이다. 기도는 신앙생활 조금 한다고 하는 사람들의 폼 재는게 아니고 이건 필수란 말이다 필수. 친구나 가족이 없으면 외롭다. 이건 누가 모르는가? 지면이 작아서 다 쓰지 못했는데 비참한 삶을 사는 것이다. 영원한 친구, 영원한 가족, 영원한 자녀가 있다는 얘기인가 없다는 얘기인가? 복음 전해서 영접한 제자들 동역자들이 바로 영원한 가족이란 얘기다.

▶ 이 세상에서 외롭게 살고 비참하게 살아가는 것. 한 순간이다. 영원히 아쉬운 것이 있다. 우리가 천국에 가서 한 명도 전도 못하고, 한 명도 사람을 세우지 못했다. 면류관이 없는 개털모자 쓰고 다니는 것인가? “아 전도와 선교는 선교단체의 전유물이 아니구나.” “우리가 교회 신앙생활하고 하나님 자녀가 맞다면, 전심 전력으로 사람을 구해야 하는구나.” 영적으로 죽거나 병들거나 비참한 생활을 하지 않으려면 말씀, 전도, 기도가 전부 다가 되어야 한다. “오늘 저 목사 또 말씀, 전도, 기도로 결론내리네?” 이렇게 지나가지 마시고 여러분들의 삶 가운데 말씀과 기도의 흐름을 타지 않게 되면 병들거나 죽거나 비참하게 된다 그 뜻이다. “뭐 일주일만에 주일날 교회에 오면 좀 신나는 말씀, 웃기는 말씀, 은혜로운 말씀을 전하지. 저 목사는 가끔 협박을 한단 말이야.” 이렇게 들으시는 분이 있을 수 있다. 여러분들 여러 사람들을 알고 지내지 않은가? 내 자식, 내 자녀, 가족이면 쓴 말을 던진다. “요즘 경찰 많으니깐 차 조심해.” “텍사스에 사람들이 많이 이사오니깐 교통사고가 많이 난대. 조심해.” 다른 사람들의 모범이 안되니깐 그런 부분은 바꿔라. 이렇게 직접 쓴 소리하지 않는가? 대충 인사하고 지낼 사람들은 어떻게 하는가? “예, 맞습니다.” 이렇게 한다. “아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아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이렇게 하지 않는가? 저와 여러분들에게 사실적인 은혜가 임하고 진실한 응답의 주인공이 되시길 바란다. 기도를 누리고, 말씀으로 영적인 힘을 얻을 뿐만 아니라. 전도의 응답을 통해서 건강한 신앙생활을 하나님이 예비하셨다. 기도한다.

 

♠  기도

▶  옛 틀을 깨고 새 축복의 그릇을 준비하는 주인공이 되게 하옵소서. 하나님이 오늘 우리에게 주신 언약을 붙잡습니다. 매일 기도로 시작하고 마무리 하게 하옵소서. 매일 말씀따라 인도 받게 하옵소서. 매일 전도의 축복을 찾게 하옵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원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