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아들은 믿음을 기뻐하신다

April 9th, 2017

ICA Sunday Pulpit Message



♠서론

세상의 Money는 사람의 Needs로 몰린다.

▶우리는 공산주의나 사회주의 사회에서 살지 않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고 있습니다. 안정된 수입과 시간들이 있기에 많은 사람들이 즐거움을 찾고 추구합니다. 그로인해 많은 군중들이 극장으로 몰리게 됩니다. 엔터테인먼트, 즉 연예사업이 돈을 많이 벌게 됩니다. 인기 있는 배우나 극작가 감독들이 수십만 불, 수백 만 불의 돈을 벌기도 합니다. 그렇게 사람이 필요로 하는 곳에 돈이 몰리는 것입니다. 또 스마트 폰이 있습니다. 세계인들이 스마트 폰을 사고 싶어 합니다. 사람들의 필요를 만든 것입니다. 그래서 미국의 애플과 한국 삼성의 갤럭시가 돈을 많이 벌었습니다. 또 요즘에는 전자상거래나 인터넷 거래인 아마존이나 이베이가 돈을 많이 법니다. 아마존의 CEO인 제프 베저스는 워렌 버핏을 따돌리고 세계 부자 3위가 되었습니다. 인터넷 거래로 컴퓨터에서 몇 자 치면 집으로 물건이 배달되어 옵니다. 편해지니까 사람들이 사용을 많이 합니다.

▶남성들은 면도를 합니다. 세계 최고의 남성 면도기 회사가 어디인줄 아세요? 질레트입니다. 역사가 오래된 회사입니다. 그야말로 전 세계를 석권했습니다. 그런데 최근 6년 사이에 이 판도가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미국에서만 질레트 시장 점유율의 20%가 감소했습니다. 이유가 뭔지 살펴보니까 2011년에 달러 쉐이브 클럽이라는 조그만 회사가 창업되었습니다. 1불, 3불, 5불, 이렇게 세 종류가 있는데 매달 1불씩만 내면 좋은 면도기와 면도날 너덧 개가 배달되어 옵니다. 사람들이 면도는 해야 되는데 이걸 사러 가기 귀찮으니까 다 인터넷 거래를 하는 겁니다. 급기야 이번 달 4일에는 콧대 높은 질레트 회사가 제품가격을 20% 인하했습니다. 질레트가 제품의 품질은 좋습니다. 그래서 고가의 정책을 씁니다. 광고로 베컴과 같은 사람을 모델로 쓰는데 광고비가 많이 나갑니다. 그것이 결국 전부 소비자에게는 부담이 되는 것이죠. 달러 쉐이브 클럽은 쉐이브 타임, 쉐이브 머니 (Shave Time, Shave Money)라는 모토를 가지고 싸게 집까지 배송해주니까 인터넷 거래상에서 이 회사가 질레트를 앞서버렸습니다. 질레트가 나쁘고 달러 쉐이브 클럽이 좋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곳에 돈이 몰린다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의 필요를 채우면 세상 재물이 몰려오게끔 되어 있습니다.

▶같은 원리입니다. 세상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필요를 내가 채우면 하나님의 축복이 쏟아 부어집니다. 맞습니까? 그렇게 재미있는 곳이 없으니까 자꾸 할리우드에서 만드는 영화관에 가는 것입니다. 아이폰이나 갤럭시 만큼 디자인이나 기능이 좋은 게 없으니까 비싸도 이 제품들을 사는 것입니다. 간단하고 편리하며 저렴한 가격에 물건을 살만한 곳이 없으니까 인터넷 거래를 하는 것입니다. 온 세상 바닥에 하나님의 필요를 채우는 사람이 없으니까 하나님의 필요를 채우는 사람이 조금만 나타나면 하나님의 복이 몰리는 것입니다. 온 세상 바닥에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 하나님이 필요로 하시는 것을 채우는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1. 하나님에 대한 믿음은 세상에 대한 유일성이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은 세상에 대한 유일성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의 믿음을 원하시는데 그런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그러니 갑자기 믿음을 보이는 자가 생기면 하나님이 너무 기뻐하셔서 영적, 육적인 축복을 쏟아 부어 주시는 것입니다. 정말로 그만큼 세상 바닥에 믿음 가진 사람이 없습니까? 우리는 있는 것 같은데 하나님이 보실 때에는 없다고 성경에서 계속 강조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촌, 전 세계에는 불신이 판을 치는 현장입니다. 고린도후서 4장 4절입니다. 세상 신이 있는데 믿지 아니하는 사람의 마음을 혼미케 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불신앙의 마음을 가져다주는 세상 신이 있다고 말합니다. 에베소서 6장에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의 씨름은 즉 신자들의 싸움 대상은 무엇인가? 정사와 권세다. 어두운 세상의 주관자들과 싸워야 한다. 하늘에 있는 악한 영들과 싸워야 한다. 즉 믿지 못하게 만드는 영적 존재가 있다. 세상의 정치가 세상의 권력자들을 잡고 있습니다. 어두운 세계의 세력이 있습니다. 하늘에 있는 사악한 악령들이 세상을 움직이고 있음을 성경이 폭로하고 있습니다. 아침부터 불안한 말씀을 하십니까? 라고 생각 하실 수 있습니다. 사실 눈을 열고 보면 이것이 맞습니다. 어제 4월 8일 토요일 날 하루에만 밥을 못 먹어서 죽은 사람들이 3만 명이 넘습니다. 우리는 먹다가도 남기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지구촌에 밥을 못 먹어서 죽는 사람의 수가 하루에 3만 명이 넘는다고 합니다.

▶올해가 1/4정도 지나갔습니다. 지난 석 달 동안의 통계에 잡힌 것만 보았습니다. 전염병으로 죽은 사람들이 지난 석 달 동안 400만 명이 됩니다. 5세 미만의 아이들은 200만 명이 죽었습니다. 낙태는 1200만 건이 됩니다. 또한 출산 중에 죽은 산모만 10만 명이 넘습니다. 새로 AIDS감염자로 등록된 자만 400만 명, AIDS로 죽은 사람은 50만 명, 암으로 돌아가신 분들이 250만 명, 담배 중독으로 죽은 사람들이 150만 명, 음주사망자는 70만 명, 자살한 사람은 30만 명, 교통사고로 죽은 사람은 40만 명, 마약에 지출된 금액은 1100억 달러가 넘는다고 합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 현장이 아비규환입니다. 지옥의 모습입니다. 개발도상국이나 후진국에서는 사실상 사건, 사고들이 통계로 잘 잡히지 않습니다. 안타깝지만 수많은 사건과 사고, 재난으로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러한 상황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우리와 함께 살고 있는 불신자들의 상태는 어떠합니까? 우리가 볼 때는 실력도 있고 인간성도 좋은데 하나님은 유독 마귀의 자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직접 요한복음 8장 44절에 말씀하셨습니다. 로마서 3장에는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다. 다 치우쳐 한 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가 하나도 없다. 저희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다. 그 혀로는 속임을 베푼다.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묻어있다.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그 발은 피 흘리는데 빨리 달려가는구나. 파멸과 고생의 길이다.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한다. 저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이렇게 로마서 3장에 세상 불신자들의 열세 가지 모습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탄, 마귀의 종노릇을 하고 있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렇게 재앙가운데 빠지고 어렵게 되는 것입니다.

▶더 심각한 것은 신자들이 불신자보다 못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13장에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저희의 믿지 않음을 인해서 능력을 행하지 않으셨다. 마가복음 6장에는 저희의 믿지 않음을 예수님이 이상히 여기셨더라, 라고 기록되었습니다. 누가복음 18장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내가 너에게 말하는데 속히 네 기도하는 원한을 내가 풀어주겠다. 그러나 내가 다시 올 때 세상에 믿음 있는 사람이 있겠느냐. 요한복음 3장에는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땅의 일을 말해도 너희들이 믿지 아니하는데 하늘의 것을 말하면 믿을 수 있겠느냐? 하나님의 본체이신 예수님이 오셔서 기적을 일으키는데도 사람들이 믿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메시지와 기적을 보고 듣고도 믿지 않고 십자가에서 죽였습니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들어도 복음서 네 군데 전체에 그들이 믿지 않음이 그대로 보고되어 있습니다. 지금은 우리의 눈에 주님의 모습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면 오늘날은 어떻습니까? 더 그럴 것입니다. 우리가 신자인데 같이 있는 신자가 그렇다는 말입니다. 혼났다고 장로가 교회를 나갑니다. 훈계를 당했다고 권사가 교회를 나갑니다. 목사가 설교 중에 자신의 이야기를 했다고 집사가 교회를 나갑니다. 무슨 의미이겠습니까? 중요하다고 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는 목사를 메신저로 결코 보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너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지만 내 기분은 맞춰 줘야해. 너는 기도하는 하나님의 종이지만 너는 내 자존심을 건드리면 안 돼. 내가 헌금을 많이 하고 헌신하니까 너는 내 비위를 건드리면 안 돼. 그렇게 말은 안하지만 의식 가운데 자리 잡혀 있습니다. 여러분을 혼내는 것이 아니고 지금의 상태가 그렇다는 말입니다. 전 교회현장의 상태가 그렇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이 시대에 그러한 현장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믿음의 ㅁ자와 Faith의 F자, Belief의 B자만 보이면 하나님이 축복을 하십니다. 작은 겨자씨만한 믿음만 보이면 하나님께서 시선을 보이고 관심을 나타내며 축복과 응답과 증거를 쏟아 부어주십니다. 세상에 없다가 조금만 나타나면 그곳으로 몰아버리는 거예요. 하나님이 매우 기뻐하신단 얘기죠. 그런 사람이 오늘 성경 본문에 나옵니다.

2.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삶의 현장에서 믿음만을 원하신다.

▶지난 주일에는 문둥병 환자에 대해서 보았습니다. 오늘 8장과 9장에 거쳐서 치유 받은 사람 세 분을 보려고 합니다. 오늘 읽은 것은 백부장의 이야기입니다. 백부장은 백 명의 부하를 거느린 사람입니다. 지도자의 위치에 있는 사람입니다. 자기가 아픈 게 아니고 데리고 있는 하인이 중풍 병에 걸려서 아프니까 그것을 예수님께 말하는 것입니다. 하인의 아픔을 내 것으로 느낄 만큼 리더십 있는 인간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그것을 듣고 내가 가서 고쳐주겠다고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의 집을 방문하겠다. 그런데 백부장이 말하기를 나는 예수님이 저희 집에 오시는 것을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우리 집이 엉망이고 청소도 안 해서 오시면 안 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이 백부장은 주님의 위대하심 앞에서 자신을 낮추는 겸손함을 말합니다. 그러면서 말씀만 하시면 됩니다. 이는 마치 내 휘하의 부하들에게 가라고 하면 가고 오라고 하면 오듯이 예수님이 말씀만 하시면 됩니다. 말씀으로 역사하는 영적인 원리를 이 사람은 믿고 있었습니다. 주님의 말씀이 떨어지게 되면 반드시 역사가 일어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믿음의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 말을 듣고서 기이히 여겼다고 했습니다. 놀란 것입니다. 그때 예수님을 좇아오는 사람들에게 설교를 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얘기할 테니 잘 들어봐라. 이스라엘의 선택받은 구원받은 백성들 중에서 이 백부장만한 믿음을 가진 사람을 본 적이 없다. 그러면서 어마어마한 칭찬과 축복을 선언하십니다. 큰 칭찬을 받은 것이죠. 주님이 그의 믿음을 확실히 인정하신 것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 예배드리는 저와 모든 분들은 이 백부장의 믿음을 소유하기를 진심으로 축복합니다. 저는 그런 믿음이 없습니다. 기도하세요. 주님 나로 이런 믿음을 갖게 하옵소서. 이런 믿음을 갖도록 내 영안을 여시고 내 귀를 축복해 주시옵소서. 믿음의 말을 하도록 내 입에 기름을 부어 주옵소서. 나의 가슴에 십자가의 감사와 감격이 넘치게 하옵소서. 배에서부터 솟아나는 기쁨을 갖게 하옵소서. 지금 주님이 나와 함께하심을 믿습니다. 지금도 붙잡은 말씀을 이루실 줄 믿습니다. 지금도 내 기도에 응답하실 줄 믿습니다. 모든 문제 속에서 숨겨진 하나님의 절대 계획이 이루어질 줄로 믿습니다. 기도하시면 하나님이 일을 하십니다. 이것이 백부장의 믿음이었습니다. 보지를 못했으니까 예수님이 한번 보시고는 놀라셔서 있는 축복을 다 쏟아 부어 주시는 겁니다. 11절과 12절을 보니까 그런 축복의 말씀을 선포하고 계십니다. 동, 서양으로부터 많은 사람에 이르러 아브라함, 이삭, 야곱과 함께 천국보좌에 앉을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그 나라의 본 자손들 이스라엘은 바깥 어두운데 쫓겨나서 거기서 울며 이를 갈게 될 것이다. 백부장의 믿음을 보신 예수님은 내가 안 갈 테니 너는 가라고 하시면서 네 믿음대로 될 것이다, 라고 말씀하시니 그 즉시 하인이 나았습니다. 여러분들 이 백부장의 믿음을 소유하시기를 정말로 기도합니다.

▶마태복음 9장에는 한 여인이 나타납니다. 12년 동안 혈우병, 피 흘리는 병으로 고생하는 여인이 예수님이 지나가는 모습을 보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의 얼굴을 뵙고 인사한 것이 아닙니다. 말을 건네지도 못하고 악수를 한 것도 아닙니다. 예수님 뒤로 가서 백허그 한 것도 아닙니다. 단지 예수님 뒤에 가서 옷자락만 살짝 잡았습니다. 왜 그런 행동을 했습니까? 9장 21절에 답이 나옵니다. 그렇게 한 이유는 그녀의 마음에 그 겉옷만 만져도 구원을 받겠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그것을 느끼셨습니다. 그리고 뒤로 돌아보셨습니다. 그녀를 바라보면서 딸아 안심해라. 네 믿음 때문에 네가 구원을 받았다. 치유의 기적이 터집니다. 소심한 성격의 여인이었습니다. 말도 못하고 예수님의 옷만 만졌던 믿음이었습니다. 소극적인 믿음 하나만 가지고도 주님의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우리 중에 왜 나는 잘 안 되지? 왜 나는 자꾸 부끄럽지? 왜 내세울 것이 없지? 그런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래도 나의 작은 믿음을 주님께 드립니다. 하면 기적이 일어납니다. 믿음을 주님께 드리게 되면 주님이 친히 기적과 역사를 일으키십니다. 왜 그럴까요? 워낙 세상이나 교회 현장 안에 믿음의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보실 때는 유일하게 보이는 것입니다. 아무도 없고 아무도 쳐다보지 않고 아무도 나를 알아보는 사람이 없는데 딱 한사람이 나를 기억해주고 찾아와주면 그 사람이 어떻게 보입니까? 아무도 몰라주는데 그 사람이 나를 기억하고 찾아왔을 때 기분이 나쁩니까? 유일하게 독보적으로 보이는 것이죠.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구원의 선물을 받았다고 한다면 이제 믿음을 선물로 드려보세요. 하나님이 주시지 않고 부으실 것입니다. 주님은 삶의 현장에서 우리의 믿음을 원하십니다.

▶마태복음 9장에 또 다른 사건이 벌어집니다. 장님 두 사람이 예수님이 지나간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달려가면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릅니다. 다윗의 자손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겨주옵소서. 예수님이라 하지 않고 다윗의 자손이라고 했습니다. 그것은 신앙고백입니다. 우리는 잘 모르는데 이스라엘 사람들은 다 알고 있었습니다. 창세기 3장 15절의 주인공, 하나님의 독생자 아들, 우리를 구원하실 메시아, 바로 그리스도는 다윗왕의 후손으로 올 것이라는 것을 어릴 때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나사렛 출생의 예수님이라고 하지 않고 다윗의 자손 예수님이라고 한 것입니다. 메시아 그리스도이심을 신앙 고백한 것입니다. 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면 응답 주실 줄로 믿습니다. 주님의 주권을 믿고 인정한 것입니다. 이때 예수님이 증언하십니다. 내가 이 일을 할 줄로 믿느냐? 내가 치유의 기적을 일으킬 것을 믿느냐? 라고 믿음을 확인하고 계십니다. 그들이 주여 그러하옵니다. 그렇게 아멘을 하니까 예수님이 그들의 눈을 만지시면서 믿음대로 될찌어다 하시자 눈이 뜨이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믿음을 가지고 있는지 여부를 확인하고 응답을 주신 것입니다. 소리를 냅다 지를 만큼 적극적인 사람에게 믿음을 보신 것입니다. 마음씨가 착하고 겸손해도 믿음을 보십니다. 수줍음을 많이 타는 마음을 가져도 상관없습니다. 믿음을 보시는 것입니다. 성격이 급하고 더러워도 상관없습니다. 오직 믿음을 귀하게 여기시고 믿음만을 기쁘시게 받으십니다.

▶우리는 외모를 많이 봅니다. 또 성격도 봅니다. 이 사람의 신앙경력을 봅니다. 학벌도 봅니다. 돈이 많은지도 봅니다. 나랑 잘 통하는지 자꾸 찾습니다. 배경이 좋은 사람인지 구별합니다. 모두 이런 것들을 중요하게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오늘부터 우리는 사람을 볼 때 교회의 성도들을 대할 때 믿음의 여부를 일순위로 보시기 바랍니다. 주님이 중요하게 보시기 때문에 우리도 그렇게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야 우리가 응답받습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다. 그래서 우리가 믿음에서 믿음으로 연결된다. 그러므로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이니라. 로마서 1장 17절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는 차별이 없다. 로마서 3장 22절입니다. 이를 아니할 지라도 경건치 않더라도 나를 의롭다 하시는 그 믿음을 하나님은 의로 보시느니라. 로마서 4장 5절의 말씀입니다. 고린도후서 5장 7절에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하지 아니함이니라. 고린도후서 13장 5절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믿음이 있는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확증해보라.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알지 못하느냐. 맞습니까? 갈라디아서 2장 20절도 똑같습니다. 내가 십자가에 못 박혔다. 그러면 죽은 것이 아니냐.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느냐.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할렐루야. 믿음입니다.

3. 성령의 역사로 인한 치유와 응답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마지막입니다. 성령의 역사로 치유의 응답을 받아야 합니다. 어떻게 그러한 믿음을 가질 수 있습니까? 믿음의 자세를 갖추면 됩니다. 믿음의 말을 하시면 됩니다. 그리고 믿음의 행동을 할 수 있도록 믿음의 선택을 할 수 있도록 거룩한 도전을 하시면 됩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인생 모든 문제를 해결하셨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제 성령의 능력을 의지하고 현장에 가서 믿음의 자세를 갖추는 것입니다. 그것이 사도행전 1장 1절입니다. 오직 그리스도. 즉 그리스도의 옷을 어느 현장에서나 입는 것입니다. 사람은 무슨 옷을 입느냐에 따라서 자세가 달라집니다. 저도 주중에 교회 사무실에 와서 일을 합니다. 급할 땐 샤워도 안하고 운동복에 슬리퍼를 신고 달려옵니다. 일이 밀려있으니까 일을 합니다. 그러면 이상하게 쉽게 피곤하고 졸리고 그럽니다. 하품이 나오기도 합니다. 쉽게 피곤하고 지치기도 합니다. 그런데 샤워하고 운동하고 옷을 갖추고 신발 신고 교회 사무실에 오면 이상하게 일을 오래하게 됩니다. 옷이 좋으냐 나쁘냐가 문제가 아닙니다. 자세의 문제입니다. 모든 현장을 가실 때 그리스도의 옷을 입고 가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 나의 주님께서 나와 함께 하신다. 그리스도를 항상 의식하면서 간다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과 대화를 나눌 때 믿음의 말을 하는 것입니다. 왜입니까? 하나님의 성령이 내 안에 계시고 마태복음 18장의 말씀처럼 두 세 사람이 모인 곳에 나도 너희와 함께 있느니라. 라고말씀하고 있습니다. 즉 신자가 가는 곳에 신자들이 모이는 곳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임해버린 것입니다. 우리가 모를 뿐이죠. 하나님의 나라의 말을 하는 것입니다. 믿음의 말을 하는 것입니다. 사랑의 고백과 격려와 칭찬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미 말의 능력을 다 배웠습니다. 믿음의 고백과 믿음의 선언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믿음을 주님이 보십니다. 믿습니까? 내 마음은 아니더라도 믿음의 고백을 의지적으로 하시면 됩니다.

▶모든 사건과 모든 일 앞에서 믿음의 선택, 믿음의 결정, 믿음의 행동을 할 수 있도록 거룩한 도전을 시작하는 것입니다. 성령 충만이 임하고 전도와 선교의 문이 열리는 것입니다. 즉 오직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나라와 성령 충만 입니다. 이해하시겠죠. 오직 그리스도의 옷을 입어서 오직 믿음의 자세를 잡으시기 바랍니다. 사도행전 1장 1절의 말씀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나라가 임했으니까 믿음의 대화를 나누시기 바랍니다. 1장 3절의 약속입니다. 오직 성령 충만의 능력이 나타나서 전도와 선교 문이 열리도록 믿음의 결정, 믿음의 행동에 도전하시기 바랍니다. 1장 8절의 축복입니다. 이것을 반복해서 지속하면 나도 모르게 믿음이 생기게 됩니다.

♠결론

인생의 풍랑은 인생 대박의 전조임을 믿어라.

(마8:23-34, 막4:35-5:20, 눅8:22-39)

 

▶결론입니다. 그렇게 자세를 갖추고 믿음의 고백을 하며 믿음의 행동을 하는데도 갑자기 풍랑 같은 위기가 오면 어떻게 합니까? 일단 놀라고 당황하시기 바랍니다. 감정선이 흔들리고 살 궁리를 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아멘이십니까? 오늘 성경에 보면 백부장, 혈우병 여인, 소경들 모두 믿음 때문에 주님이 칭찬을 하고 치유의 기적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유독 예수님께 칭찬받지 못하고 꾸지람을 들은 사례가 마태복음 8장에 나옵니다. 믿음이 없음을 꾸짖음 당했습니다. 무슨 일이었습니까? 예수님과 함께 제자들이 배를 타고 가는데 갑자기 풍랑이 불어옵니다. 배가 뒤집히려고 합니다. 물에 빠져 죽게 되었습니다. 아니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아무것도 모른 채 배 뒤에서 주무시고 계셨습니다. 제자들이 놀라서 황급히 예수님을 깨웁니다. 왜 주무시고 계십니까? 죽을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보고 하면서 흔들어 깨웁니다. 곤하게 잠자는데 깨우면 어떻습니까? 열 받습니다. 이때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어찌 무서워하느냐? 곤하게 자는데 왜 나를 깨우느냐가 아니고 어찌 너희는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적은 놈들아. 제자들의 불신을 꾸짖으신 후에 풍랑을 향해서 명령하지 않고 꾸짖습니다. 사물, 물건에게는 명령을 합니다. 사람, 인격에게는 꾸짖습니다. 바람과 파도, 풍랑은 사물입니까? 인격입니까? 사물입니다. 예수님께서 주무시다가 정신이 없으셔서 잘못 꾸짖으신 것 같아요. 명령해야 하는데 말이죠. 저도 그런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분명 꾸짖으셨다고 했습니다. 사물, 현상, 그 안에 인격이 들어있다는 것을 예수님은 아셨습니다. 예수님이 꾸짖으시니까 풍랑이 즉시 잠잠해졌습니다. 풍랑이 멈췄습니다.

▶그러고 나서 배를 내리고 나서 무슨 일이 벌어졌습니까? 배에서 내리고 보니까 거라사라는 지역이었습니다. 바로 만난 것이 귀신들린 자를 만났습니다. 귀신이 충만하니 소리를 지르고 힘이 세져서 사람들을 던지고 난리가 났습니다. 사람들이 감당 못하는 이 귀신의 힘, 악령의 힘을 가지고 난리를 피우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무엇을 하셨습니까? 귀신을 쫓아내셨습니다. 이 귀신이 어떠한 귀신이었습니까? 마태복음 8장과 누가복음 마가복음에 똑같은 얘기가 나옵니다. 이 귀신이 예수님께 왜 오셨습니까, 라며 얘기하잖아요. 사람에 붙어 있다가 쫓겨나게 생겼으니까 차선책을 요구합니다. 귀신과 악령들은 몸주를 원합니다. 그러면 나갈 바에야 저 돼지에게 가게 해주세요. 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허락을 하니까 귀신들이 돼지 떼에게로 들어갔습니다. 돼지 몇 마리에 귀신이 들어갔습니까? 이천 마리의 돼지 속에 들어갔습니다. 즉 몇 마리 귀신이란 얘기에요? 이천 마리입니다. 군대귀신이라고 합니다. 귀신들은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제자들과 함께 배를 타고 거라사 동네로 오고 있음을 알고 있었습니다. 즉 군대귀신 이천의 악령들은 풍랑을 일으켜서 예수님과 제자들을 물속에 빠트려 죽이려고 했던 것입니다. 안될 것을 알지만 못 오도록 한 것이죠. 제자들은 그 사실을 전혀 몰랐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풍랑을 향해서 명하지 않고 꾸짖으신 것입니다. 제자들은, 신자들은, 성도들은 다 이렇게 속습니다.

▶인생이 풍랑을 만나면 믿음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버립니다. 바로 그 순간이 흑암의 큰 조직을 일시에 무너뜨릴 기회인 것을 까맣게 모릅니다. 나를 늘 흔들리게 만드는 악령, 우리 부부사이를 늘 무너트리려는 악령, 우리 자녀들을 늘 게임중독, 마약중독 만드는 악령, 하는 사업이 제대로 안되게 만드는 가난의 악령, 사람에 대해서 의심케 하는 악령, 미래를 향해서 염려케 만드는 악령, 그런 모든 악령들의 조직과 흑암구조를 일시에 무너트릴 수 있는 기회가 바로 인생풍랑의 기회입니다. 흑암세력을 일망타진할 수 있는 기회임을 여러분은 믿으셔야 합니다. 즉 인생 대박 나는 순간입니다. 이것을 안 믿으면 예수님이 제자들을 꾸짖으셨던 것처럼 예수님이 여러분을 꾸짖게 됩니다.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쉬지 않고 붙잡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기도합니다.

존귀하신 하나님. 주님의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말씀을 받았습니다. 믿음에 각인, 뿌리, 체질을 내리게 하옵소서. 하나님의 필요를 채우시옵소서. 하나님의 역사를 보게 하옵소서. 믿음으로 시작해서 믿음으로 열매를 얻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The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