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우지 않고 이기는 나

June 10th, 2018

ICA Sunday Pulpit Message



♠ 서론

▶ 하나님께서 우리의 창조주 그리고 심판주 되심을 믿는다. 그분이 여러분의 아버지가 되신다. 육신의 부모님은 나이가 들어서 세상을 떠날 수 있지만 하나님은 영원토록 여러분을 책임져 주시고 여러분의 편이 되어주셔서 여러분과 함께 하실 줄 믿는다. 그분이 특별한 일을 행하셨다. 우리를 위하여 구원자를 보내주셨다. 그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분을 내 인생의 주인으로 삼고 내가 일평생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겠다고 결단한 자들을 하나님의 자녀라고 한다. 그것을 구원이라고 표현하고 영생이라고도 표현한다. 구원이라고 하는 것은 영원한 생명을 말하는 것이다. 영원한 축복이다. 예수를 한번 믿으면 영원한 구원의 축복을 받는다는 것이다. 큰 죄를 짓게 되면 구원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죄송하지만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고 있다. 하나님이 징계를 하실지언정 지옥으로 보내시지는 않는다. 나의 잘한 행동 때문에 구원을 받은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와 관계 없이 하나님은 일방적으로, 공짜로 구원을 주신 것이다. 내가 큰 잘못을 했다고 구원을 잃어버리는 것이 아니다. 반대로 내가 잘했기 때문에 다른 사람까지 구원을 시킬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나와 하나님과의 일대일 관계이다. 그리고 하나님이 법으로 선포한 절대적인 은혜요, 선물이다. 내가 잘못해서 빼앗기는 것이 아니다. 사탄 마귀가 내게 임한 구원을 빼앗아 갈 수도 없다. 이것을 은혜라고 이야기하고 복음이라고 한다.

▶ 더 놀라운 것은 하나님의 자녀로 구원 받았을 뿐만 아니라 이 세상에서 하나님이 세밀하게 인도하신다는 것이다. 언제까지 인도하시는가? 천국가기까지 영원히 인도하신다. 늘 항상 함께 하신다. 뿐만 아니라 우리를 서밋의 응답으로 인도해가신다. 그 하나님의 계획이 그렇다. 서밋의 응답이다. 탑의 축복이다. 나는 그럴 자격과 능력이 없지만 머리가 되어지는 은혜를 주시는 것이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의 인생을 그렇게 몰아가시겠다고 계획을 하시고 작정을 하셨다. 내가 잘한 일이 없기 때문에 그러한 하나님의 계획이 사실은 미안하고 죄송한 것이다. 양심적으로는 부끄럽지만 하나님이 결정하신 일이기 때문에 아무도 취소시킬 수가 없다. 하나님의 본심이 그렇다. 나는 비록 부족하고 연약하지만 하나님은 나를 그렇게 바꾸어 갈 수 있는 능력이 있으시다. 이렇게 여러분이 믿기만 하시고 한걸음, 한걸음 인도받으면 된다. 어렵지 않고 쉽다. 하나님의 구원 복음은 단순하고 쉽고 편안한 것이다. 딸이 어제는 잘했지만 오늘은 잘못했다고 부모가 딸에게 이제 딸을 그만 두라고 하는가? 부모는 그럴 수가 없다. 하나님이 우리의 부모님이요 아버지가 되신다. 잘했던 못했던 간에 그렇게 정하셨다. 너무 쉬운 내용이다. 금방 이해가 된다. 너무나 쉽게 믿음이 들어온다. 하나님이 나를 책임져 주신다. 그것이 복음이다. 우리가 지금 서밋에 관한 것을 보고있다. 서밋의 응답 첫번째 특징이 하나님이 만들어 가신다는 것이다.

▶ 그래서 지난주에 본 것이 ‘하나님의 만드신 나’ 이다. 어떻게 만들어 가시는가? 지체하고 주저하는 삶에서 즉각 순복하는 믿음의 삶으로 바꾸어 가신다. 어려운 일이 생기면 회피하고 모면하고 도망가려고 하는 우리의 삶을 하나님의 부르심을 믿고 도전하는 믿음으로 바꾸어 나가신다. 어떻게 바꾸어 나가시는가? 늘 자신의 계산과 상황과 조건을 따라가던 삶에서 이제는 하나님의 말씀만 붙잡고 성령인도 받는 삶으로 바꾸어 가신다. 이것이 서밋의 응답을 받는 삶의 첫번째 특징이다. 그래서 지난주에 아브라함을 보았다.

▶ 그렇다면 오늘은 서밋의 응답 받는 사람 두번째 특징이다. 그러면 당연히 이삭을 봐야 한다. 오늘 성경 본문에는 이삭의 체험을 기록해 놓았다. 이삭이 누구인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아들이다. 그런데 이삭에게는 원치 않았던 경쟁자가 있었다. 그랄땅 지역의 왕, 아비멜렉이 바로 이삭의 경쟁자였다. 성경에는 이삭이 실수한 것이 기록되어있다. 아버지 아브라함을 닮아서 이삭도 자신의 아내를 팔았다. 요즘처럼 인신매매로 팔았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목숨을 부지하려고 자신의 아내를 누이동생이라고 하며 넘겨준 것이다. 아비멜렉 왕이 이삭의 아내 리브가를 취하려고 했다. 그러다가 하나님이 전격적으로 역사하셔서 그런 일이 생기지 않게 막으셨다. 아비멜렉 입장에서는 리브가라는 여자가 이삭의 누이동생이니 자신의 여자로 삼으려고 한 것인데 하나님이 막으시니까 그 일을 못하게 되었다. 아비멜렉은 이삭이 거짓말을 해서 하나님 앞에 죄를 짓고 벌을 받을 뻔했으니 마음이 불편한 것이다. 그래서 얼른 이삭의 아내 리브가를 이삭에게로 돌려보냈다. 그러한 인연이 아비멜렉 왕과 이삭에게 있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이삭은 점점 부자가 되었다. 집안에 종들이 많아지고 계속 거부가 되어지니까 아비멜렉 왕이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아비멜렉 왕은 이삭의 집안을 내쫓았다. 이때 이삭은 우리가 와서 터를 잡고 살고 있는데 왜 쫓아내느냐고 촛불집회를 하지 않았다. 그 이후에도 그랄 지방 땅의 사람들이 자꾸 이삭이 파놓은 우물들을 빼앗아갔다. 서로 다툴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이삭은 양보하고 싸우지 않고 달라는 대로 다 주었다. 그럴수록 자꾸 이삭은 하는 일마다 잘 풀리게 된다. 우물을 파면 샘의 근원을 얻었다. 농사를 지으면 백 년 동안 먹을 것을 수확했고 넓은 르호봇이라는 땅도 차지하게 되었다. 창대하고 왕성해지면서 강성한 부자가 되었다고 기록되어있다. 아비멜렉과 불편한 관계였던 이삭은 한 지역의 왕을 능가할만한 재력과 인력을 갖추게 되었고 이때 아비멜렉 왕의 생각과 마음이 바뀌어졌다. 그래서 사람들을 대동해서 이삭을 찾아왔다. 그것이 창세기 26장 오늘 본문이다. 이삭은 자신을 미워해서 내쫓을 때는 언제고 왜 찾아왔는가 놀라서 물어봤다. 그러자 아비멜렉은 이렇게 답했다. “들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심을 우리가 분명히 보았으므로 우리의 사이 곧 우리와 너 사이에 맹세하여 너와 계약을 맺으리라 말하였노라 너는 우리를 해하지 말라 이는 우리가 너를 범하지 아니하고 선한 일만 네게 행하여 네가 평안히 가게 하였음이니라 이제 너는 여호와께 복을 받은 자니라” 이렇게 찾아와서 말을 하였다. 너는 하나님께 복을 받은 자니까 우리를 해하지 말아다오. 이것은 무슨 내용인가? 이삭을 라이벌로 여기고 시기했던 아비멜렉이 스스로 찾아와서 화친조약을 맺었다. 서로 싸우지 말고 잘 지내자. 약속하자. 엄밀하게 말하면 아비멜렉이 무릎 꿇고 봐달라고 사정하는 것이다. 이것이 서밋의 응답이다. 이삭 입장에서는 싸우지도 않고 이긴 셈이 된 것이다. 하나님이 그렇게 상황을 몰아가신 것이다.

▶ 이 말씀을 받는 우리는 이삭은 좋겠다 라고 끝나면 안된다. 이 내용을 성경에 기록해 놓고 책으로 발간하여 우리, 후대까지 남겨놓은 이유를 찾아야 한다. 이삭이 하나님을 믿는 것은 알고 있는데 도대체 왜 하나님이 이삭을 이렇게 축복해야만 했을까? 그것을 여러분들이 정말 알고 그 믿음을 가지고 있게 되면 하나님이 그 축복을 주신다. 이삭이 가지고 있던 것이 도대체 무엇이었는가? 어떻게 싸우지 않고 원수가 스스로 무릎을 꿇 수 있었는가? 세가지 이유가 있다. 그것을 여러분이 깨닫고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러면 경쟁하지 않고 싸우지 않고 승리하면서 여러분이 축복의 모델이 된다. 우리는 이민 생활이 얼마나 힘든가 이야기한다. 언어도 안되고 먹고 살기 힘든 게 미국 땅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또 교회에 가면 이상한 사람들이 많다고 말을 한다. 집사가 더 거짓말하고 장로는 사기 친다고 이야기한다. 이미 하나님을 알아버렸으니까 예배를 드려야 하기 때문에 교회에 깊게 관여하지 말고 설교 시작할 때 들어가서 축도하기 전에 빨리 빠져나오라고 한다. 물론 맞는 말이다. 그런데 이삭이 받은 이 축복을 내가 가지고 있다고 한다면 아무 상관이 없는 것이다. 사기를 치는 자가 오게 되면 하나님이 뒤바꾸어 주신다. 싸우지 않고 이기는 축복의 비밀이 있게 되면 그렇게 인도 받는다.

 

1.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나

▶ 첫번째이다.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았다는 것을 이삭은 알았다.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자는 반드시 승리한다는 것을 이삭은 알았다. 어떻게 알았는가? 아브라함의 시대에 또 한 명의 성경 인물이 있었다. 하나님을 잘 믿는 신실한 인물이 한 명 있었다. 동방의 거부 욥이다. 아브라함의 믿음이 좋은가? 욥의 믿음이 좋은가? 욥과 아브라함은 동시대 사람이다. 아브라함은 갈대아 우르에 살고 있었고 욥은 동쪽 지방에 살고 있었다. 아브라함은 대대로 여호와를 섬기는 후손인데 갈대아 땅에서 우상장사 하면서 근근이 먹고 살던 집안이었다. 반면에 욥이라고 하는 인물은 동방 지역에서 하나님의 축복이 되어 거부가 되어있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믿음의 조상을 누구로 부르셨는가? 믿음 좋은 욥을 부르시지 않고 믿음이 떨어지고 우상장사하는 아브라함을 부르셨다. 이유는 없다.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택으로 불러내신 것이다. 우리 아버지가 믿음도 형편 없고 인격도 떨어지지만 하나님이 택하셔서 불러 주셨는데 축복을 받았구나. 그 축복이 나한테 전달되었구나. 하나님이 택하신 자는 반드시 승리한다는 것을 보고 체험하며 배운 것이다.

▶ 이삭에게 이복형이 있었다. 나이가 훨씬 많았던 이스마엘이다. 먼저 태어났으니 형이다. 이복형인 이스마엘 역시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 잘 살았다. 그런데 언약의 자손으로 누구를 택하셨는가? 하나님이 이삭을 선택하셨다. 창세기 15장에 말씀하고 계신다. 아브라함이 자식이 아직 없으니까 하나님 앞에 탄식조로 말한다. “아브람이 이르되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 하나이까 나는 자식이 없사오니 나의 상속자는 이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이니이다” 이 때 하나님이 말씀하셨다.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그 사람이 네 상속자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상속자가 되리라 하시고” 사라를 통해서 태어날 아이를 말씀하신 것이다. 창세기 17장에서도 또 반복하여 약속하셨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아니라 네 아내 사라가 네게 아들을 낳으리니 너는 그 이름을 이삭이라 하라 내가 그와 내 언약을 세우리니 그의 후손에게 영원한 언약이 되리라” 하나님이 직접 나타나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말씀하셨다. 결국 이삭이 태어나고 이삭을 향한 하나님의 말씀을 이삭이 듣고 자랐다. 이스마엘을 택하지 않으시고 하나님은 나를 택하셨다. 하나님이 선택하신 자는 하나님이 반드시 축복하시고 승리하게 하신다. 이것을 이삭이 알아버린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붙잡아야 될 언약이 있다. 저와 여러분들은 이미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들이 될 것을 선택 받았다. 예수 믿는 사람은 하나님이 선택하신 것이다. 에베소서 1장 4, 5절에 분명히 기록되어있다.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바울이 이것을 안 것이다. 그래서 로마서에 기록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그래서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고백할 수 있는 것이다. 무슨 일이 일어나도 문제가 아니다. 모든 것이 합쳐져서 최고의 것으로 하나님이 주시기 때문이다. 누구에게 인가? 하나님이 선택하신 자들이다. 이삭이 이것을 깨달은 것이다. 이 성경을 기록한 이유가 무엇인가? 여러분이 정말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했다고 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택하신 역사이다. 우리는 처음에 믿음이 없으니까 나이 먹고 그럭저럭 살다가 천국 가면 되지 라고 생각한다.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 서밋의 응답을 주시겠다고 하는 것이다. 예수를 믿고 교회 다니고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은 이 세상 살면서 하나님이 서밋의 축복을 주시겠다는 말이다. 이삭이 이것을 눈치챈 것이다. 여러분들도 눈치채기를 바란다.

 

2. 하나님의 언약을 붙잡은 나

▶ 두번째이다. 이삭은 무엇을 또 알고 있었는가? 하나님의 언약을 붙잡았다. 자신의 아버지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선택 받았다는 것을 알았다. 아버지를 자세히 보니까 늘 하나님 앞에 단을 쌓아서 예배를 드리는 것을 보았다. 아버지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때만 되면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구나. 구약의 예배는 피의 제사이다. 양을 잡아서 피를 흘리고 태우는 것이다. 양이 희생되었다고 해서 희생제사라고 말한다. 그래서 구약의 피제사는 신약의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피를 흘려 희생하실 것을 미리 알려주시는 것이다. 하나님이 보내실 메시야 구원자가 희생을 하시면서 우리가 살게 되겠다는 것이다. 우리를 대신해서 희생당하시는 것이다. 그리고 흑암권세, 사망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셨다. 이것은 무슨 뜻인가? 사망권세, 죽음의 세력을 가지고 지구의 인류를 농락하고 있는 존재가 사단마귀이다. 사단 마귀의 최고의 무기는 죽음, 사망이다. 그것을 깨뜨리고 다시 살아나셨다. 사단의 머리를 깬 것과 똑같다. 피제사를 지낸다는 말은 흑암권세를 깨뜨리고 오실 메시아를 기다린다고 하는 믿음이다. 이삭이 아버지 아브라함의 믿음을 그대로 본 받고 따라간 것이다. 그래서 이삭 역시 아버지가 했던 것처럼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단을 쌓으며 예배를 드린 것이다. 하나님의 완전하신 언약, 어린양 메시야 그리스도를 믿고 기다린 자에게는 하나님이 반드시 승리케 하시는 구나. 그래서 요한복음 3장 16절이 유명하게 된 것이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의 자녀는 절대 망하는 법이 없다. 여러분이 이것을 아셔야 한다. 반드시 하나님의 승리가 있을 줄을 믿는다.

▶ 이삭이 그것을 붙잡은 것이다. 이 말씀을 붙잡게 되면 반드시 이기게끔 되어 있구나. 그래서 우리가 예배 때 찬송만 하고 집에 가지 않고 말씀을 전하고 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왜 임마누엘 오스틴 교회는 예배가 이렇게 많은지 물어볼 수 있다. 하나님의 말씀이 여러분들에게 뿌리를 내려야 하기 때문이다. 각인 된 것이 응답을 받는다. 뿌릴 내린 것이 열매를 맺는다. 내게 체질이 된 그대로 미래의 운명이 결정된다. 정확하게 말하면 우리는 수 십년 동안 하나님 없이 살아왔다. 솔직히 말하면 오랫동안 복음과 관계없는 삶을 살았다. 그래서 뿌리내려야 하는 것이다. 모르면 오해를 하고 착각하게 된다. 그러니 금방 상처받고 시험에 든다. 교회는 만만하다. 그냥 오면 예배를 드릴 수 있다. 인터뷰나 입학 시험이 있는 것이 아니다. 오면 예배를 드릴 수 있다. 나갈 때 자기 마음대로 나갈 수 있다. 편안하다. 이것이 착각이다. 그래서 미국 분들은 이 교회 저 교회 왔다 갔다 하는 사람을 church hopper라고 한다. 나무라는 것이 아니라 이해가 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뿌리를 내리지 못하니까 은혜를 받지 못하는 것이다. 복음 하나를 통해서 모든 것을 소유하게 되는 것인데 누림이 없으니 작은 것 하나에 충격을 받아서 시험에 들게 된다. 싸우지 않고 승리할 수 밖에 없다는 자신의 신분을 모르는 것이다. 시간이 지나게 되면 눈치채게 된다. 이 문제가 도리어 내게 축복을 주시려고 하는 하나님의 숨겨진 사인이구나 라는 것을 알게 된다. 하나님이 다 바꾸신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도리어 기뻐하고 감사하게 된다. 이 다음 시간표에 하나님이 축복을 준비해 놓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언약을 듣지 마시고 붙잡으시기를 바란다. 세상 끝날까지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실 것이다. 하나님께서 합력하여 모든 것을 선으로 바꾸실 것이다. 이삭이 이것을 붙잡은 것이다. 

 

3. 하나님의 예비하신 응답을 믿는 나 (창 22:1—14, 요 15:7, 롬 8:32)

▶ 마지막 세번째이다. 어떠한 상황에도 하나님이 응답을 준비해 놓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삭에게는 일생에 잊지못할 끔찍한 체험 하나가 있다. 창세기 22장을 보게 되면 아버지 아브라함이 자신을 모리아로 끌고 가서 죽이려고 했다. 네 사랑하는 독자 아들 이삭을 바치라고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명령하셨다. 우리 같으면 말할 수 있다. 언제는 아들을 주어 놓고 지금 데리고 가십니까? 평상시에는 양을 잡아 제사를 지내라고 하시더니 지금은 내 아들을 잡아서 제사를 지내라고 하십니까? 내가 주위에 어떻게 전도하겠습니까? 내가 믿는 여호와 하나님은 사람을 잡아먹는 분이시라고 어떻게 전도할 수 있겠습니까? 이삭의 엄마 사라는 어떻게 받아드리겠습니까? 하나님이 그렇게 극악무도한 분이셨습니까? 라고 저 같으면 항변 했을 것이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어떻게 하였는가? 아무런 반응도 대꾸하지 않았다. 창세기 22장에 보시게 되면 이른 아침에 이삭을 데리고 나갔다. 이것은 아브라함의 믿음이 대단했다는 것을 나타낸다.

▶ 이삭의 편에서 볼 때는 어떠했겠는가? 자기와 관계 없는 일 때문에 붙잡혀 갔다. 자기에게는 아무런 대책도 없이 죽어야만 하는 상황이다. 아시다시피 아브라함의 칼이 이삭의 목에 가까울 때 하나님이 멈추게 하셨다. 그리고는 바로 눈앞에 있는 나무가지에 있던 수양을 잡아서 제사를 지내라고 하셨다. 아브라함이 고백을 했다. 여호와 이레, 하나님이 예비하셨구나. 죽을 뻔했던 이삭은 생명을 살게 된 것이다. 하나님이 준비한 어린양 때문에 자신이 산 것이다. 죽음의 위기 속에서도 하나님이 준비한 응답이 따로 있구나 체험한 것이다. 그래서 기도하라고 하셨구나. 그래서 말씀 붙잡고 기도하라고 하셨구나.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요한복음 15장 7절에 예수님이 직접 하신 말씀이다. 그래서 구하고 두들기고 찾으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무엇이 필요한지 알고 계신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응답이 예비 되어있는 서밋인 것을 확신하라.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로마서 8장 32절의 약속이다. 이렇게 이삭은 중요한 내용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경쟁하지 않고, 싸우지 않고도 이긴 것이다. 기억하시고 돌아가시기 바란다. 나는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았다. 나는 하나님의 언약을 받았다. 나에게는 하나님의 응답이 준비되어있다. 많이 기도해서 응답 받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응답을 준비해 놨기 때문에 우리가 받을 수 있는 것이다. 당신은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았다. 당신은 하나님의 언약을 붙잡았다. 당신에게는 하나님의 응답이 준비되어있다.

 

♠ 결론

▶ 결론을 맺겠다. 이사야서 53장에 보시게 되면 이런 말이 나온다.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 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그가 폭력을 행사하지 아니하였고 그의 입에는 속임수가 없었도다…” 양이 털을 깎일 때 몸부림 치지 않는다. 누구를 말하는 것인가?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는 것이다. 십자가를 향하여 가는 예수님은 싸우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부활을 예비해 놓으셨다는 것을 알았다. 그분이 우리의 주인이 되신다. 그분이 그의 삶을 나를 통해서 살기 원하신다.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기다렸던 아브라함 역시 싸우지 않았다. 조카 롯과 재산 분쟁이 있었을 때도 선택권을 주면서 싸우지 않았다.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났던 신약의 바울도 싸우지 않았다. 바나바와 경론을 벌였지만 선교사에게 우선권을 바나바에게 넘겼다. 무조건 참고 인내 하자는 말이 아니다. 중요한 약속과 확실한 증거를 가지고 하나님의 시간표가 올 것을 알기 때문에 싸우지 않는 것이다. 결국에는 하나님이 나를 높일 것이다. 마지막에는 원수를 하나님께서 무릎 꿇게 할 것이다. 내가 잘나서 그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서밋의 자리에 올리실 것이다. 알기 때문에 경쟁하거나 다투지 않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람, 복음 가진 사람, 크리스천이라고 한다. 특히 인간관계의 승리를 통해서 아무도 따라올 수 없는 그런 축복을 여러분들이 받기를 바란다. 

▶ 기도합니다. 존귀하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을 돌립니다. 서밋의 응답을 예비하셨음을 믿습니다. 세상의 육신적인 싸움을 내려놓고 영적 싸움을 승리하게 하옵소서. 나는 하나님 앞에 택함 받은 자녀임을 알게 하시고, 언약은 반드시 이루어지며, 하나님이 문제를 허락하신 것은 답을 예비해 놓았기 때문 이라는 것을 알게 하옵소서. 이에 강단을 통해서 전달되어진 이 메세지가 성도들의 마음에 새겨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