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를 신앙 고백한 가정

1/15/2017

그리스도를 신앙 고백한 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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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가지는 붙어있기만 해도 결국 열매를 맺는다.

▶특별히 말은 안하더라도 우리는 사람을 고르는 경향이 누구나 다 있습니다. 각자 나름대로의 기준이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어떠한 사람을 선호하십니까? 제가 세 가지 유형의 사람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첫 번째입니다. 결단을 하면 그것을 말로 표현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가 연 초에 마음먹고 결단한 것들이 있잖아요. 예를 들어 다이어트를 하겠다거나 영어 회화공부를 하겠다고 결단했을 때 이것을 친구나 가족에게 말로 표현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두 번째 사람이 있습니다. 결단한 말과 함께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이 있습니다.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고 행동으로 실행합니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사람은 결단의 말은 물론 행동으로 실행도 하고 열매 또는 증거를 맺는 사람이 있습니다. 즉 첫 번째 사람은 말만하는 사람입니다. 두 번째 사람은 말을 하고 실제로 몸으로 움직여서 행동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나중에는 실제로 결과가 나타나는 사람이 있습니다. 여러분들께 여쭤보겠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떠한 사람을 선호하시겠습니까? 여기 권사님께 아들이 있습니다. 며느리를 맞아야 되잖아요? 어떤 사람을 며느리로 맞으면 좋으시겠어요? 여기 청년들은 앞으로 결혼을 해야 합니다. 어떤 배우자를 원하세요? 배우자를 골라야 할 때 어떤 여성을 배우자로 선호하시겠어요? 대부분 거의 세 번째 사람에게 마음이 갑니다. 세상이나 사회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직원을 뽑을 때도 그렇게 고르게 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러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5장에 ‘나는 포도나무고 너희는 가지다. 네가 내 안에 있고 내가 네 안에 있으면 과실을 많이 맺을 것이다.’ 그러니까 떠나지 않고 붙어있기만 해도 하나님이 열매의 과실을 주시겠다고 했습니다.

▶오늘 한 사람에 대해서 보겠습니다. 예수님에게 가지처럼 붙어있던 제자, 베드로입니다. 여기까지가 서론입니다. 제가 오늘 서론에서 누구에 대해서 말한다고 설교했습니까? 베드로입니다.

 

1.베드로는 부족한 면이 많은 자였다.

 

▶첫 번째입니다. 베드로를 보시면 사실상 부족한 부분이 너무 많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선입견을 가지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수제자다. 그리고 오늘 읽은 성경 본문처럼 위대한 신앙고백을 한 인물이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그리고 심지어 천주교에서는 이분을 초대교황으로 모실 정도입니다. 대단한 인물이죠. 그런데 예수님의 제자로 처음 출발할 때 따라가는 과정을 자세히 보면 놀랄만한 일들이 참 많습니다. 일단 이분은 갈릴리 동네의 어부 출신입니다. 예수님이 처음 그를 제자로 불렀을 때 그물을 버려두고 즉각 따랐던 어부였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예루살렘 수도가 아닌 갈릴리라는 시골 촌구석 분이었습니다. 요즘에도 한국 사람들은 서울에서 자라고 서울에서 학교를 나오고 서울에서 직장을 다니고 강남에 산다고 하면 일단 높게 봅니다. 인격이나 실력에 관계없이 덮어놓고 무시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강원도 산골에서 감자를 캐먹다 왔다고 하면 일단 그 사람을 무시하려고 합니다. 이 당시에도 갈릴리라고 하면 촌구석이라고 평가했습니다. 사실상 하나님 앞에서 직업의 귀천은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평가하는 객관적인 평가수준이 있습니다. 지금이나 그때나 어부라고 하면 창조적인 소수에 속하는 엘리트는 아니었습니다. 즉 지난주에 말씀드렸던 이사야와 같은 수준의 사람은 아니었던 것입니다. 거친 파도를 타고 가면서 물고기 떼를 찾아서 낚는 사람은 거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사도행전 4장에 보면 주위 사람들이 베드로의 학문적 배경을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베드로를 향해 ‘이 사람이 원래 학문이 없는 무식한자 아니냐?’ 라고 말합니다. 이러한 그의 출신이나 배경을 보면서 그가 대단한 인물이 아니었다는 것은 알 수 있습니다. 다 그렇다는 말은 아닙니다. 그러나 보통 배움이 짧은 사람들은 감정기복이 심합니다. 좋게 표현하면 자신의 안에 있는 것을 위장하지 않고 거침없이 순수하게 표현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나쁘게 표현하면 감정기복이 심한 사람이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그런 사람은 사람들이 반가워하지 않습니다. 베드로가 그런 면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또 성격도 급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로마 군인들에게 붙잡혀 가던 때가 있었습니다. 가롯 유다의 배신 때문에 예수님께서 붙잡혀 갑니다. 이때 옆에 따라가던 베드로가 갑자기 칼을 빼서 쳤는데 목을 친다고 친 것이 잘못 쳐서 귀를 쳤습니다. 말고 라는 사람의 귀가 떨어져 나갔습니다. 사실상 베드로는 예수님을 지키려고 한 일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떨어진 귀를 말고의 귀에 붙여주면서 베드로에게 호통을 치십니다. ‘칼을 어서 거두어라. 칼을 든 자는 칼로 망한다. 아버지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잔을 피하겠느냐. 네가 이것을 막으려 함이 내가 내 아버지께 구하여 열두 영 더되는 천사를 보내시게 할 수 없는 줄로 아느냐?’ 이러면서 베드로를 혼내는 것입니다. 소위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라고 하는 예수님의 수제자가 칼을 빼서 사람을 죽일 뻔 한 것입니다. 앞뒤 좌우를 생각하지 않고 부역을 동원한 사람이었습니다. 신중함이 없는 성급한 사람이 틀림없습니다. 이런 저런 면을 보니까 탁월하거나 출중한 인물은 아니었습니다.

2.그는 예수님을 따라다니면서 여러 번 질책을 받았다.

▶두 번째입니다. 이렇게 부족한 면이 많아서 그런지 예수님을 따라다니면서 많이 혼났습니다. 여러 번 질책을 당했습니다. 도대체 어떠한 일들이 벌어졌습니까? 지금까지 베드로의 수준이나 출신 배경을 보았습니다. 지난주의 이사야와 같은 대단한 인물이 아닌 그 반대되는 인물임을 보실 수 있습니다. 성경에 여러 번 기록이 되어있는데 그것을 한번 보겠습니다. 즉 베드로가 예수님께 혼난 부분을 살펴보자는 얘기죠.

▶마태복음 14장에 보시면 예수님께서 일으키신 오병이어에 관한 얘기가 나옵니다. 어마어마한 기적이죠. 수천 명이 먹었습니다. 그 기적이 있은 후 예수님께서 모든 무리들을 빨리 집으로 보냅니다. 그러면서 제자들은 배에 태워서 바다로 보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산에 올라가서 혼자 기도하십니다. 제자들이 탄 배가 바다 멀리 갔습니다. 이때 풍랑이 칩니다. 깜깜한 밤에 물에 빠져 죽지 않을까 제자들은 놀라며 당황해합니다. 이때 갑자기 저 멀리서 누군가가 물 위를 걸어오는 것입니다. 안 그래도 힘들어 죽겠는데 사람이 물위를 걸어오니까 유령인줄 알고 무서워하며 소리를 지릅니다. 이때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놀라지 말라. 나니까 평안하라.’ 이때 성질이 급한 베드로가 말합니다. ‘주여 만일 주님이시면 내게 명령하셔서 나로 하여금 물위를 걷게 해 주세요.’ 그러니까 예수님이 바로 오라 하십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서 실제로 물위를 걷게 됩니다. 계속적인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풍랑이 일었다고 했잖아요. 풍랑을 보고서 베드로가 두렵기 시작합니다. 불신앙이 들어온 것이겠죠. 그러니까 몇 발자국 걸어가다가 물에 빠져버립니다. 깜깜한 밤입니다. 구명조끼도 없습니다. 바람은 붑니다. 이렇게 되면 수영을 아무리 잘해도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베드로가 ‘살려주세요. 주님 구원해주세요.’ 라고 소리를 칩니다. 예수님께서 손을 내밀면서 베드로를 건져주십니다. 그때 예수님이 또 혼내십니다. ‘믿음이 적은자여 왜 의심하느냐?’ 의심 많고 두려워하며 믿음이 없음을 질책당합니다. 수제자라는 사람이 다른 동료제자들 앞에서 모멸감을 당한 것입니다. 우리는 설교를 통해서 듣고 성경을 읽으면서 사실을 보지만 베드로의 입장에서는 굉장히 힘듭니다. 사람을 따로 불러서 혼내는 것과 여러 사람 앞에서 혼내는 것은 다르거든요. 하긴 따로 불러서 혼내도 힘들긴 합니다. 그만큼 약하다는 것이겠죠.

▶마태복음 16장입니다. 예수님이 제자들과 가이사랴 빌립보 지역에 가십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질문하십니다. 인자가 과연 누구냐? 이런저런 헛소리를 하니까 그때 다시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묻습니다. 나서기 좋아하는 베드로가 역시 ‘주는 그리스도시오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라고 고백합니다. 예수님이 엄청 칭찬하십니다. 축복도 하십니다. 대단한 축복을 하신 것입니다.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들은 예수님께서 그때부터 중요한 메시지를 꺼내놓습니다. 내가 예루살렘에 갈 것이다. 그때에 세 가지 종류의 사람에게 세 가지의 일을 당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세 사람은 장로들, 대제사장들, 서기관들에게 내가 일을 당한다는 말입니다. 세 가지일이라는 것은 내가 고난을 당하고, 죽고, 3일 만에 부활할 것이라는 세 가지를 말합니다. 예수님의 본업, 본질, 복음의 내용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때 그 말씀을 들은 베드로가 예수님께 꾸짖듯 강요합니다. 한글성경에는 간청하다로 나와 있는데 영어성경에 보시면 꾸짖듯 강제적으로 요구하는 것입니다. 주여 그럴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죽으시는 일이 결코 있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 같으면 이해는 하잖아요. 죽으시면 안 됩니다. 그 뜻입니다. 우리 같으면 이렇게 반응하겠죠. 나도 그러고 싶은데 하나님의 뜻이니까 우리가 받아들여야 되지 않겠니? 라고 말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예수님은 다르게 반응했습니다.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그러면서 네가 나를 넘어지게 하는구나. 네가 나를 실패케 만드는 놈이구나. 너는 왜 사람의 일을 하나님의 일보다 더 귀하게 여기느냐? 많은 제자들 앞에서 수제자가 사탄이라고 호통당한 것입니다. 왜 하나님의 계획은 무시하고 사람의 계획인 인본주의를 쓰느냐 그 말입니다. 우리가 인본주의 쓰면 안 되지 않겠냐고 말하면 되잖아요. 그런데 면전 앞에서, 다른 동료 앞에서 사탄이라고 말합니다. 여러분 같으면 어떻겠습니까? 설교하다가 성도님 한분께 사탄아 이러면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겠어요? 사탄에 속지마세요도 아니고 너는 사탄이야 라고 말했단 말이에요. 그러면 일단 설교가 끝나면 항의하러 오겠죠. 김목사님 내가 건축하는데도 헌신하고 교회 청소하는데도 헌신하고 안하는 것 없는데 어떻게 그렇게 얘기합니까? 이해 못합니다. 일단 좀 쉬겠습니다. 그렇게 나올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그렇게 했다는 말이에요. 이것이 마태복음 16장에 나온 일입니다. 신앙고백을 멋들어지게 하고 나서 혼난 것입니다. 칭찬할 때는 언제고 축복할 때는 언제고 사탄이라고 저주까지 한 것입니다. 이해하시겠죠. 여러분께 적용해보세요.

▶그리고 마태복음 17장의 일이 일주일도 안 되서 일어났습니다. 사탄이라고 혼난지 일주일도 안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세 명의 제자들을 데리고 산에 올라가십니다. 갑자기 예수님이 변화되는 것입니다. 옷이 하얗게 바뀌면서 눈이 부시도록 광채가 나는 거예요. 세 명의 핵심 제자들이 완전히 놀랍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 좌우에 엘리야와 모세까지 대동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황홀한 장면을 본 베드로가 또 말합니다. 주여 여기 있는 것이 너무 좋습니다. 즉 기분 짱입니다! 그 뜻이겠죠. 그러니까 집을 세 채 지읍시다 라고 합니다. 집 하나는 예수님 사시고 두 번째 집에는 모세가 살고 세 번째 집에는 엘리야를 모시겠습니다 라고 말하는 겁니다. 마태복음 17장 장면이 누가복음 9장에 똑같이 나옵니다. 누가복음 9장 33절에 이런 말이 나옵니다. 베드로가 그 말을 하면서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 자신도 모르더라. 정신없이 헛소리 했다는 말입니다. 베드로의 이러한 헛소리에 예수님께서 기가 막혀서 대꾸도 안하시죠. 바로 영광이 사라져 버립니다. 그러면서 구름가운데 하나님의 음성이 들립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을지어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실제로 보여준 것입니다. 하나님이 영광을 보여준 것입니다. 하늘에서 오신 분입니다. 그런데 그런 분을 이 땅에서 모시자고 집을 짓자고 한단 말입니다. 정신이 나간 것이죠. 하도 어이가 없으니까 예수님께서 아무 말씀도 안하십니다.

▶예수님이 붙잡혀서 심문을 받으러 가잖아요. 베드로가 뒤를 몰래 따라갑니다. 사람들이 모여 있습니다. 그 군중의 한 사람이 베드로를 알아봅니다. ‘너 예수와 한패지?’ ‘아니라고.’ ‘맞잖아 내가 봤는데.’ 베드로가 부인합니다. ‘그런 일 없고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그렇게 얘기 하는 거예요. 세 번째 물어봅니다. ‘내가 맞는데, 내가 봤는데’ 라고 계집종이 말합니다. 이때 베드로가 예수님을 저주하면서 아니라고 부인합니다. 이쯤 되면 배신자의 아이콘이죠. 비겁하게 배신한 겁니다. 이때 닭이 세 번 꼬꼬댁 하며 웁니다. 베드로는 네가 닭 울기 전에 세 번 날 부인하리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생각나면서 웁니다. 사실상 그는 배신자입니다.

▶예수님이 붙잡혀 가셔서 비참하게 두들겨 맞고 침 뱉음을 당하고 결국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대장이 죽었으니까 제자들이 전부다 낙심해서 고향으로 흩어져갑니다. 베드로도 모든 것이 끝난 줄 알고 어부 일을 합니다. 여러분이 아시다시피 부활하신 예수님이 찾아오십니다. ‘네가 날 사랑하느냐?’ ‘사랑합니다.’ ‘날 사랑하는 것이 맞느냐?’ ‘사랑한다니까요.’ 또 물어봐요. ‘나를 사랑하느냐?’ 베드로가 ‘내가 사랑하는 것을 아시잖아요?’ 라고 말합니다. 사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면 미안하고 송구스럽고 얼굴도 못 들어야 할 텐데 예수님은 내 어린양을 먹이고 치라는 축복의 사명을 전해줍니다. 우리 같으면 ‘네 알겠습니다.’ 라고 하잖아요. ‘저는 주의 종이니 그렇게 하겠나이다.’ 라고 하면 좋잖아요? 그런데 그 상황에서 보니까 사도 요한이라는 제자가 자꾸 예수님 품에 안겨서 자꾸 알짱거린단 말이에요. 베드로가 ‘이 자는 앞으로 어떻게 되겠습니까?’ 라고 물어보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답하십니다. ‘내가 다시 올 때까지 그를 내게 머물게 할지라도 네가 무슨 상관이냐?’ 라고 말하십니다. 딴생각하지 말고 나만 따르라 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받는 그 제자가 신경에 쓰였던 것이죠. 용서를 구해야 될 그 순간에 내 양을 먹이라는 중요한 사명을 받은 거룩한 순간에 남의 일에 참견하는 것입니다. 오지랖이 얼마나 넓었으면 그랬겠습니까? 남일 참견하지 말고 너나 잘해 라고 예수님께 혼나는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에게 까지도 혼나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밀착동행하면서 엄청 혼난 것입니다. 군대로 말하면 고문관 같은 수준입니다. 학교로 말하면 왕따 그런 수준입니다. 지금 누가 그렇다는 얘기입니까? 베드로가 그렇다는 얘깁니다. 실제로 보면 그렇다는 얘깁니다. 중간과정을 보면 그렇다는 것입니다. 이해하시겠죠.

3.그러나 그는 결국 초대교회의 수장이 되었다.

 

▶세 번째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결국 초대교회의 수장이 되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의 명령을 따라서 감람산에서 40일 집중훈련을 받습니다. 그리고 마가의 다락방에서 10일 집중훈련을 받습니다. 성령의 충만을 받은 것입니다. 마가 다락방에서 초대교회가 탄생되었습니다. 너무나 뜨겁게 받으니까 방언이 터진 사람이 많이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보고서 대낮부터 낮술해서 술주정 하는구나 라고 보았습니다. 이때 베드로가 나섭니다. 전에는 혼자 툭툭 튀어나오기 좋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사도행전을 보시면 베드로가 사도들과 함께 일을 한다는 말이 나옵니다. 같이 팀워크를 이뤄서 팀사역을 하고 그렇게 설교한다는 것입니다. ‘술 취한 것이 아니다. 선지자 요엘의 말씀이 성취된 것이다.’ 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시편에 예언된 메시아의 주신 선물이다. 그 메시아는 네가 죽인 예수다. 이제 회개하고 예수 믿으면 구원받게 된다.’ 정확한 설교를 한 것입니다. 늘 헛소리만 하고 늘 혼나던 베드로가 정확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된 것입니다. 정확한 내용을 정확한 때에 명 설교를 한 것입니다. 놀라운 반전이죠.

▶그 뿐만이 아닙니다. 정시기도를 하러 성전에 갑니다. 성전 앞에 앉은뱅이가 앉아 있습니다. 그때 앉은뱅이에게 축복을 해줍니다. ‘내게 은과 금은 없지만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줄 테니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어라.’ 평생 장애인이었던 그 사람이 벌떡 일어나는 기적이 일어납니다. 대소동이 벌어졌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몰린 것입니다. 이때 기득권층인 대제사장과 바리새인, 서기관들이 보고서 밥그릇을 뺏길 것 같으니까 화가 났습니다. 그래서 이 사람들이 베드로를 법정에 소환했습니다. 민사재판보다 더 무서운 것이 형사재판입니다. 형사재판보다 더 무서운 것이 군사재판입니다. 명령불복종이면 총으로 쏴 죽여도 되니까요. 군사재판보다 더 무서운 것이 종교재판입니다. 종교재판은 죽일 때 권총으로 간단하게 죽이지 않습니다. 불에 태워죽입니다. 교수형을 했다가 몸을 다 각을 내버립니다. 뿐만 아니고 연좌제로 일가친척까지 싹 다 죽입니다. 그렇게 무서운 종교법정에 베드로가 끌려간 것입니다. ‘도대체 무슨 일을 벌였나?’ ‘나는 예수 이름으로 기도해줬을 뿐이다.’ 그러니까 ‘다시는 예수이름으로 말하지 마라.’ 베드로가 ‘분부대로 받잡겠습니다.’ 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준 적이 없다.’ 죽음을 각오한 신앙고백이었습니다. 신앙고백을 넘어선 선포입니다. 초대교회의 리더다운, 수장다운 믿음의 선포였습니다. 여종 앞에서 예수님을 부인하고 저주했던 그가, 비겁했던 그가 죽으면 죽으리라고 선언한 것입니다. 완전히 사람이 바뀐 것이죠.

▶또 한 가지 볼 것은 이방인 선교를 누가 했습니까? 라고 물으면 바울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사실상 로마 복음의 첫 단추는 베드로를 통해서 열렸습니다. 사도행전 10장에 보시면 베드로가 로마군대 백부장 고넬료의 집에 갔습니다. 복음을 전하고 온 가족에게 세례를 준 것입니다. 이때 잘 보시면 남 참견하기 좋아했던 그가 매우 신중하게 인도받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령의 인도를 받았습니다. 세 번의 환상을 확인하고 나서야 갔습니다. 옛날의 베드로가 아닙니다. 베드로가 변화된 줄로 믿습니다. 아시겠죠? 반전의 역사가 베드로에게 있었다는 말입니다. 성경에 나타나는 큰 실수 여섯 가지를 주보에 기록해 놓았습니다. 중요한 때에 실수한 것을 보면 세세하게 기록되지 않은 것들도 많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변화되었어요. 초대교회의 수장다운 리더가 되었습니다. 놀랍게 변화된 그것은 바로 하나님이 하신 것입니다. 믿습니까? 주님이 명령해서 40일을 훈련받았습니다. 예수님의 명령 때문에 약속한대로 열흘간 기도한 것입니다. 성령의 인도를 하나씩 받아간 것입니다.

 

 

♠결론

신앙고백 뒤에는 하나님의 용서하심과 권능이 따라온다.

▶베드로는 사실상 오늘 본문인 마태복음 16장 16절의 이 신앙고백 하나 한 것밖에 없습니다. 이해하시겠어요? 세상 사람들은 기독교신자를 비판하잖아요. 신자와 불신자가 물에 빠지면 신자는 입만 물에 동동 뜬다고 합니다. 말만 하니까요. 맞는 말입니다. 신자들은 말만합니다. 행동으로 옮기거나 열매를 맺지 못하는 사람들이 바로 크리스천입니다. 세상 사람들에게 욕먹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변화되는 능력을 말만하는 신자들에게 주십니다. 베드로는 바른 신앙고백 뒤에 제대로 한 것이 없었어요. 열매 맺은 것도 없었습니다. 계속 질책과 호통만 당했어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용서하시고 성령의 권능을 주셔서 베드로를 완전히 바꾸어 버리신 것입니다. 우리는 보통 결단의 말도 하고 행동도 하고 증거의 열매를 찾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말만하는 사람도 수용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우리보다 마음이 넓어서 베드로를 수용한 것입니까? 아닙니다. 예수님은 베드로를 변화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가 확신하고 가야합니다. 우리 하나님 아버지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부족한 우리를 변화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계십니다. 모든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넉넉한 마음을 가지고 계십니다. 정확한 방법을 가지고 계십니다. 믿습니까? 교회 안에는 말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딱 보면 눈에 띕니다. 말 많고 열매는 없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네가 수제자가 될 사람이구나 하며 배려, 칭찬, 격려, 이해, 해주시기 바랍니다. 문화를 만들어야 해요. 분별이 되잖아요. 아 저사람 꼴통이야 하는 사람이 있잖아요. 생각을 그렇게 하지만 입으로는 권면을 그렇게 해보세요. 옆 사람들에게 확인을 그렇게 해보세요. 저 사람은 수제자가 될 인물이야. 믿습니까?

▶예수님이 베드로의 마태복음 16장 16절의 신앙고백 뒤에 칭찬하시고 축복하신 것 기억하시죠? 세 가지 중요한 축복을 다시 한 번 말씀드리겠습니다. 반석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라. 베드로가 주님이 세우신 교회의 수장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셨어요.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할 것이다. 사망 지옥 권세가 계속 공격했지만 베드로는 그 모든 것을 이겼습니다. 네게 천국열쇠를 주리라. 베드로는 계속 응답받아 왔습니다. 베드로가 신앙고백을 했지만 이루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여러분들이 신앙고백을 하시면 하나님이 성취시키십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베드로의 가족이 있습니까? 베드로는 초대교황이기 때문에 결혼을 하지 않았습니다. 숫총각으로 돌아가셨죠. 할렐루야. 사실은 베드로는 결혼을 했습니다. 베드로의 장모가 열병이 들어서 예수님이 치유해줬다고 했어요. 죄송합니다만 우리 교회 근처에 천주교 성당이 있습니다. 끝까지 우겨요. 베드로는 결혼을 안했다. 숫총각이다. 그래서 우리도 장가 안 간다. 베드로는 결혼했습니다. 아내가 있어요. 장모님을 두었어요. 오늘 설교제목은 그리스도를 신앙 고백한 베드로가 아니고 가정입니다. 이렇게 반전이라고 불릴 만큼 베드로가 변화되었는데 가정에 영향이 갔을까요? 안 갔을까요? 반드시 전달되게끔 되어있습니다. 여러분이 신앙고백을 그때 그때 바르게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지금 하나님이 여러분을 초청하고 있어요. 여러분이 진짜 마태복음 16장 16절의 신앙고백을 하는 사람이라면 행동이 부족하고 증거와 열매가 없어도 모든 것을 변화시키고 채우시는 하나님이 지금 여러분을 부르고 계십니다. 물에 빠진 베드로에게 손을 내밀어 구원하시던 예수님이 지금 여러분에게 손을 내밀고 있습니다. 눈을 감고 실제로 기도합시다. 그리스도를 고백하지만 나는 부족한 사람입니다. 내 힘으로 행동과 열매를 얻지 못합니다. 나에게 참된 행동과 풍성한 열매를 주실 주님이 필요합니다. 나는 주님의 동행하심이 필요합니다. 나는 포도나무인 주님에게 가지처럼 붙어있고 싶습니다. 이렇게 고백이 되는 사람이 있으면 눈을 감고 오른손을 심장이 뛰는 왼편 가슴에 올려놓기 바랍니다. 눈을 감는다는 말은 하나님 앞에 선다는 말입니다. 눈을 감으시고 주님을 바라보기 바랍니다. 능력의 그리스도, 응답의 그리스도를 원합니다 라는 분이 계시면 오른손을 왼편 가슴에 올려놓고 기도하시면 됩니다. 의심 많고 사람일 생각하며 헛소리하는 저를 주님은 아십니다. 분에 못 이겨 성급했던 저를 주님은 아십니다. 머리로는 하나님을 알지만 돈 때문에 일 때문에 주님을 배신한 적 많음을 고백합니다. 내 주위의 친구들, 가족들의 잘못된 것을 보면 그를 위해서 기도해주라는 사인인데 참견하고 정죄하고 그랬던 적을 고백합니다. 주님과 집중적으로 인도받기 원합니다. 사람의 위로나 세상의 실력으로 받을 수 없는 성령의 능력을 주시옵소서. 말로만 아니고 행동과 열매를 얻게 하옵소서. 놀라운 반전의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내가 할 일은 오직 하나입니다. 모든 문제, 사건, 갈등, 위기 앞에서 그리스도를 고백하겠습니다. 주님께서 나를 이끌어 주옵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The end)